아빠랑 수액 맞기

환절기의 마지막 몸부림

by autumn dew

2월은 그 달이 품고 있는 일자의 수만큼, 다른 달에 비해 시간을 빨리 삼켜버리는 달이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2월은 짧은데도 불구하고 돌이켜보면 매년 쉬운 달이 아니었다. 올해도 2월 중 한 주는 연휴가 삼켜버렸고, 그렇게 마지막 남은 한 주도 오롯이 출장지에서 보내야 했다. 이렇게나 허무하게 시간이 가버렸단 사실에 또 한 번 허무해졌다. 생각해 보면 하루도 허투루 보낸 날은 없었는데 그럼에도 어떻게 이렇게나 시간이 훅 가버렸단 말인지. 그렇게 2월의 마지막 주마저 출장지에서 하염없이 소요하고 있는 동안 어느 저녁, 친한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평범한 안부를 물으려다 출장지에 있다는 나의 이야기에 걱정 어린 인사를 건넨 그녀와, 마지막까지 서로의 건강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덧붙였다. '언니, 그래도 이제 곧 봄이야.'


봄이 온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또한 환절기라는 의미. 그러나 주로 뜨거운 여름에서 서늘한 가을로 넘어가거나 서늘한 가을에서 매서운 겨울로 넘어가는 사이를 환절기로 여겨왔고,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때는 그저 날이 따뜻해지고 만물이 생동하는 때이니 조심하여야 할 환절기라 여기지 않았던 것 같았다.



때아닌 폭설이 내리던 날. 아니나 다를까, 출장지에 있는 동안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숙박비의 한계로 가뜩이나 허름한 숙소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침을 삼키기가 힘들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잘 넘어가나 했는데. 같이 출장을 떠난 선배에게 걱정을 끼칠 순 없으니, 대수롭지 않은 두통인 양 포장하여 점심을 먹고 약국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이젠 아픈 것보다 아픈 나를 걱정할 사람들도 걱정이다. 그러니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더 빨리 나아야 한다. 불편한 몸보다 불편한 마음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그렇게 약국에서 사 온 약으로 며칠을 버텼지만 증상이 악화되는 것만 막을 뿐, 큰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 겨우 마지막 날까지 티 내지 않고 용케 버텼다. 그래도 다행히 이번 출장지는 본가 근처였던 데다 나름의 연휴이기도 했으니 금요일 업무를 마치고 바로 본가로 향했다. 집에 와보니, 명절 때부터 시원찮았던 부모님의 건강도 환절기의 풍파를 제대로 맞은 듯했다. 설 연휴 때 봤던 모습 그대로 아빠는 여전히 코맹맹이였다. 토요일 아침 일찍 수액을 맞으러 갈 예정이라는 아빠를 따라 결국 나도 수액을 맞으러 가기로 했다. 위 아 골골 패밀리.




토요일 아침이 되어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아빠와 병원에 갔고, 나란히 앉아 간호사선생님의 부름을 기다렸다. 진료를 받고 나온 뒤, 계산을 하고 수액을 맞으러 가야 했는데 아빠가 나를 밀치고 내 몫의 병원비까지 계산을 했다. 괜스레 보호를 받기만 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 그리곤 아빠와 회복실에 나란히 누워 수액을 맞았다. 닮은 꼴 둘이 한 방에 누워 수액을 맞고 있는 모양새가 슬프기보다는 조금 우스웠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하나도 서글프지 않았다.



희한하게도 매년 2월은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학생일 때도 새 학기를 앞두고 마음이 복잡 미묘했는데, 직장생활도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어 2월은 늘 신학기 준비로 엉덩이를 붙일 새가 없이 바빴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학생들과 만나지 않는 업무를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봄을 앞두고 있는 시점은 늘 몸도 마음도 시원찮았다. 그럼에도 이런 알 수 없는 책임감과 중압감에 대한 보상은커녕 13월의 월급은 개뿔, 13월의 날강도 같은 연말정산도 2월에 있었다. 그렇다 보니 2월은 늘 근무일수와 그 부담감에 비해 월급마저 부족하게 느껴지는 달이었다.




2월의 마지막을 병실에 누워있다 왔다. 무사히 맞고 집으로 돌아가나 했는데 링거를 제거하고 일어나는 순간, 몸에선 갑자기 새로운 약이 들어 와 당황했는지 어지러움과 구토가 밀려왔다. 마지막까지 병원에서 난리통을 피웠고, 겨우 진정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이제는 좀 나아지겠지. 어쩌면 그래서 2월이 짧은 걸지도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빨리 봄을 맞으라고. 더 기운이 빠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일찍. 날짜만 3월로 바뀌어도 기분의 체감온도가 조금은 달라질지 모르니.


환절기의 마지막 몸부림을 있는 힘껏 몸부림쳐 이겨내고, 봄의 시간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한 번 이렇게 앓고 나면 또 당분간 이번에 얻은 면역으로 버틸 수 있지 않으려나. 한 번 앓고 나면 당분간의 면역이 최고조에 달한 다는 것은 지난 코로나 시국 때 체득한 경험이다. 혹독한 겨울의 시험대를 견뎌냈으니 조금은 더 건강하게 봄을 맞을 수 있기를.


모든 시름과 걱정, 염려들을 2월에 두고.

3월, 아니 봄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