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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Dec 25. 2022

수동태로 살아보기

책임감 이완법

대구에선 근래에 보기 드문 함박눈이었다.
앞 유리에 쌓인 눈들이 3초에 한 번씩 와이퍼에 밀려나갔고, 드물게 예쁜 회색하늘을 바라보며 동생에게 이대로 출근하지 않고 떠나고 싶다 말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도 3초에 한 번씩 일렁이던 아침.

좀 있음 그칠 것 같던 눈이, 사무실에 도착할 무렵엔 꽤나 쌓이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함박눈. 마치 성수기를 맞이한 내 업무 같기도 했다. 닿는 순간 스르륵 녹아버렸으면 좋겠는데, 처음 해보는 업무라 공부하며 쳐내야 하니 녹기는커녕 쌓여가고 있었다.

그다지 즐겁지 않은 연말.



최근엔, 시간에 떠밀려 일하다 실수를 하기도 했는데 (변명 같지만 입사이래 처음 하는 업무다) 수습 후에 두 가지 감정이 밀려왔다. 이 연차에 이 실수가 말이 되나 하는 자괴감, 그리고 주변의 시선에 대한 걱정. 다들 기본값 세팅이 필요 없는, 경험치 있는 중고에 대한 기대있을 텐데. 에휴- 가뜩이나 일도 버거운데, 눈치까지 봐야 하는 중고의 이중고(二重苦).




내가 신입시절을 보낸 곳은 날씨가 추워서 다들 '강원남도'아니냐 했던 경북 북부의 어느 소도시였는데 어느 겨울, 아침에 눈뜨자마자 밤새 펑펑 내린 눈이 온 세상을 뒤덮은 날이 있었다.

그날 아침 출근하며 생각했다. 학교에 쌓인 이 많은 눈들을 어떻게 치우려나.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 마치 다들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출근과 동시에 학교의 직원 모두가 나와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조용했던 학교엔 오직 눈 치우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날 나는 학교에서 가장 어린 막내이고, 도움은커녕 걸리적거릴 거라는 다소 츤데레스러운 이유로 사무실을 지킬 것을 통보받았다. 마음이 불편하던 차에 사무실에 같이 남아있던 선배가 사람들에게 나눠 줄 커피를 타자고 말했다. 종이컵 몇 십 개를 펼쳐놓고 열심히 커피믹스를 따라 붓고 전기포트로 쉴 새 없이 물을 끓여댔다. 한창 걸리적거리고 싶은(?) 신입으로서, 배달은 내가 하겠다했다. 뜨거운 커피 쟁반에 담아 미끄러워진 길을 피해 살금살금 커피를 날랐다.

학교 안을 메꾸던 삽질소리가 멈춰졌고, 사람들은 잠시 허리를 펴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눈은 어느새 많이 치워져 있었다. 눈 치우다 마시니까 커피맛이 더 좋다며, 고맙다는 그들의 말이 왠지 모르게 듣기 좋았다. 이윽고 나도 그들 틈에 껴서 웃었다. 왜 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을 수밖에 없었던 건 확실하다. 분명 즐거웠다, 나는 그날.






며칠 전 오전 내내 내리는 함박눈을 보다, 그해 겨울날이 떠올랐다. 두껍고 하얀 세상에 조금씩 길이 나기 시작했던 그날이.

그리고 나도 모르게 갑자기 떠오른 생각.


일은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게 아닐까


일은 어떻게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주체의 존재도 중요하겠지만, 그 에너지와 맞물려 때마침 아침 일찍부터 그쳐준 눈, 자연스레 사람들을 모이게 한 선의 가득한 분위기로 인해 해결되었단 말도 틀린 것은 아니리라.

최선을 다했다 자부했는데 돌이켜보면 그 일이 오롯이 내 힘으로 해낸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봄에서 겨울, 날씨와 계절이 변하듯 그냥 슬그머니 일이 해결돼 왔던 건 아닐까. 나는 그저 거기에 잠시 편승 사람이었을 뿐.

'내가 일을 한다.'는 능동태에서 '일은 된다, 나 또는 누군가로 인해 또는 단지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라는 수동태로 시선을 바꿔보기로, 좀 더 나를 현상의 뒤편에 놓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잠시나마 마음이 좀 가벼워진 것도 같았다.



매일 마음을 되새기고 출근하지만, 막상 눈덩이처럼 쌓여있는 일 덩어리들을 바라보며 저걸 언제 다 치울까 고민한다. 그러나 여태껏 경험해 왔기에 안다. 언제나 일은 썩 나쁘지 않은 방향으로 해결되어 왔단 걸.

막막함이라는 막연함 앞에 수동적인 자세로 숨어 잠시 스스로를 다독여보기로 한다. 시간이 지나 작아져버린 눈덩이처럼, 일 덩어리의 크기도 그저 시간만 지나면 자연스레 줄어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중에 어떤 일은, 어쩌면 내가 해내야 할 몫이 아주 미약한 수준인 것도 있을 테다. 살금살금 종종걸음으로 뜨거운 커피를 나르는 정도의 수고로움 정도일지도. 단지 커피가 맛이 없으면 어쩌나, 가다가 넘어지면 어쩌나 정도의 걱정이 부풀려 크게 보이는 것뿐.






영어시간에 배운 대로 'I will do it.'이란 문장을 수동태로 바꾸면, 'It will be done.'이 된다. 'by me'는 생략도 가능하다고 웠다.

원리대로 했는데 두 문장은 확실히 미나 느낌 다르다. 언어란 참 신비하기도 하지. 영어 시간에 왜 서양사람들은 수동태란 걸 만들어서 뭘 그렇게 당하고, 되고, 되어진다(?) 하는지 처음엔 법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는데, 오늘은 이로 인해 제법 그럴싸한 위로를 얻은 것 같다.


수동적인 문장을 되새기며, 잔뜩 수축된 앞날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능동적으로 이완.



온전히 네 몫이 아니란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일은 마무리될 테니까.

It will be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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