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utumn dew Jan 01. 2023

한 해의 문장

Title of 2023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되는, 나의 연말연시 혼자만의 의식은 한 해의 문장을 정하는 일이다.

12월이 되면, 이듬해의 문장을 뭘로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한 줄은 나의 그 해 다이어리 맨 앞 장을 장식하고, 한 해 동안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므로 쉽게 정해져선 안 된다.



20대에는 제대로 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성숙과 지혜로움에 목이 말랐었고, 사회에서 인정하는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어른이라 인정할 수 없었다. 열심히 살았던 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지만, 어른스럽게 살아냈다곤 자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매년 정해졌던 한 해의 문장들은 주로 성숙, 지혜로움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또한 30대 들어서자 아무리 갈망해도 채워지지 않는 기대, 바람이란 것을 알았고 이내 지치기 시작했다.

30대부터는 정답보다 해답을 찾기로 했다.
그럴싸한 해설지가 곁들여진 해답을. 이상향을 정하고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주어진 선택이 답이길 바라며 나를 납득시킬만한 해설지를 써 내려가기로 했다.



그러다 2년 전부터는 화려한 미사여구가 없는 담백한 문장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2021년의 문장은 'Be natural', 자연스럽게 살자였고 억지 인연에 집착하지 않고 싫은 것은 싫은 대로 두기로 했다. 글을 자주 써야겠다 생각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기자고. 나를 성숙으로 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좀 더 친절해지기로 했던.

2022년의 문장은 'Be light', 빛나자는 의미가 아닌 가벼워지자는 의미였다. 자연스러워지려는 것도 어떤 때엔 노력이 필요해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이 주는 압박 자체에서 벗어나 가볍게 살고 싶었다. 물리적인 무게까지 고려했던 건 아니었는데, 지난해엔 운동도 하며 몸도 마음도 몇 g씩 덜어내는 법을 자연스레 체득했다.


그리고 2023년.
natural, light에 이어 정한 2023년의 단어는 clear. 'Be clear', 고로 명확하게 살자.


항상 올해의 문장은 지난해의 아쉬움에서 시작한다. 새로운 일을 맡고 반년 간 모르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 흐릿한 세상에 꾸역꾸역 선명도를 올리는 작업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일을 하는 직장인으로서 좀 확실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절반.

그리고 남은 절반.

어느 순간, 20대만큼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난처한 질문들을 한동안 피해왔다. 언제부턴가 치열했던 20대에 비해 긴장감이 없는 30대를 보내고 있단 걸 알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30대가 되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또 되고 싶은지 알아내고 싶다. 자신에 대한 명도를 높이고픈 마음이 그 절반.




올 7월이면 입사한 지 만으로 10년을 채운다.
친애하는 선배가 직장생활 10주년을 기념으로 무얼 할지 생각해 보았냐 물었다. 혼자만의 의식 같은 것을 계획했냐는 질문에 갑자기 멍해졌다. 10년간 직장생활을 해낸 기특한 나 자신을 위한 리츄얼이라. 어떤 이벤트를 원하는지, 애정 어린 눈빛으로 스스로에게 정중히 물어볼 참이다.


전기장판을 좋아한다는 친구의 토끼, 인형같다


얼마 전부터 토끼를 키우게 된 친구로부터, 토끼 사진이 잔뜩 도착했다. 귀엽기도 하면서, 자세히 보니 정말 귀가 쫑긋 솟아올라있다. 그래, 올해 토끼의 해라 했지. 나에게 귀를 좀 더 기울여주고 열어주자.


Be clear.

그 누구보다 내 세상에서,

흐릿해선 안 되는 인물은 나니까.

그러나 '명확하게 살자'는 말을 올해의 문장으로 정하며 깨달은 사실 하나는, 스스로를 지켜내 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미 나에게 오래전부터 명확했단 것이다.






당신에게도 올해의 문장이 있.
한 해동안 품고 갈, 자신만을 위한 한 문장이.


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마음이 습관적으로 품는 생각을 닮아갈 것이다. 즉, 영혼은 사상의 색채로 염색되기 때문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에서
작가의 이전글 수동태로 살아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