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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Jan 08. 2023

안녕(安寧)한 여정Ⅰ

여정의 시작

목적지에 도착해 첫 일정을 앞둔 순간에는, 누구나 설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의 여행에서 첫 코스는 항상 성당의 주일미사였다. 보통 한국에서 토요일에 출발하는데, 우리나라가 시차가 빠른 편이라 도착해도 여전히 현지는 토요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첫날은 피곤하니 쉬고, 공식적인 여행은 일요일부터 시작. 미사에 갔다가 여행을 시작하면 딱이었다.


그래서 떠나기 전, 항상 숙소나 첫 관광지와 가까운 성당 중 적당한 미사시간대가 있는 미리 찾아다. 첫 일정으로 미사참례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앞으로의 일정을 무탈하게 소화하길 바라는 마음.



엄마 봉헌금을 낼 땐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깨끗한 지폐를 내야 한다 했는데, 한국에선 쉽지 않은 그 일이 여행을 가게 되면 쉽게 가능해진다. 환전을 할 때 은행에서 가장 빳빳한 새 지폐를 주니까.

그리고 일종의 징크스일까. 성당을 다녀오지 않고 혹시나 여행하다 힘든 일이 생기면 '성당을 안 다녀와서 그러나'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만약 같은 일이 생기더라도 성당을 다녀왔다면 '성당을 다녀왔으니 이 정도일 수도'라고 안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독실한 신자인 것은 아니다. 평소에도 말 중 하루, 주일미사 참례를 위해 성당에 가는데 다른 사교활동 없이  미사만 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는(솔직히 묵상하는 시간으로 따지면 5분 정도 아닐까) 반성과 감사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전부. 


신선했던 야외에서의 미사, 라트비아 리가


가톨릭 신자라 좋은 점은 국내든 해외든 어느 성당을 가도 미사 진행 방식과 순서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무슨 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지금이 어디쯤에 이르렀는지는 느낌상 안다. 그래서 낯선 성당에서의 미사가 두렵지는 않다. 오히려 흥미진진할 뿐. 덕분에 여행 중 현지인들과 섞여, 조금은 자연스러운 척할 수 있는 시간이 그 한 시간의 미사다.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아는, 미사 중 자리가 가까운 신자들과 '평화의 인사'를 주고받는 시간이 있다. 우리나라는 보통 '평화를 빕니다'하고 서로 가볍게 목례를 주고받지만, 해외에선 대개 악수를 주고받는다. 한국어로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를 건넸고,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내 평화를 빌어줬다. 악수를 하게 되 서로의 얼굴 자동적으로 무장해제된다. 마주 잡은 손에 무언가 전해지는 게지.

그들과 멋쩍은 악수를 주고받는 그 시간이 은근 긴장되면서도 좋았다. 말뿐일지라도, 낯선 곳에 찾아온 낯선 이를 위해 눈을 맞추고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그 시간이 더없이 소중했다. 그렇게 미사를 마치고 떠나면 여행이 순조롭게 풀릴 것만 같았고, 다행스럽게도 모든 여정들은 잘 마무리되곤 했다.


반팔입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봤던 11월의 대만, 가오슝


20대 초반에 떠났던 유럽여행 중 파리에서의 미사가 해외에서의 첫 미사였다. 내 앞 자리의 남자아이와 주고받은 평화의 인사, 악수가 기억난다. 낯선 동양인과의 인사 어색해하는 듯 보였는데 아이는 이내 손을 내밀어 주었고 맞잡은 손을 살짝 흔들기까지 했다. 미사를 마친 뒤엔, 근처 유명한 마카롱 가게를 찾느라 헤매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갑자기 어딜 찾는 중이냐며 미사시간에 날 봤다고 먼저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그녀 덕분에 마카롱 가게도 무사히 찾아갔다, 아주 감사하고도, 평화롭게.

10년 전 나 홀로 싱가폴 여행의 첫 일정도 미사였는데,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신부님이 날 보며 "Have a nice trip!"이라고 아주 큰 소리로 외쳐줬다. 마치 내 여행에 주문을 걸어주는 것 마냥.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에서 좋아하는 가사.


두 손을 모아 기도했죠.
끝없는 용기와 지혜를 달라고.


나는 이 가사야말로 매주 나의 기도를 한 줄로 대변한다 생각한다. 특히 여행 중엔 더더욱. 끝없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했던, 불안한 설렘 속 평화를 빌어줬던 그들.


부디 안녕(安寧)하기를.

이방인으로 주고받은 첫 여정의 인사는 따스하게도 '평화의 인사'였고, 그 덕분에 나는 다행히 안녕하였다. 이제와 그날의 고마움, 그 순간의 소중함들을 기록한다. 나의 평화의 인사도 그들에게 다다랐기를 바라며.


미사 중에 신부님은 분명하게 말씀-
평화의 인사를 '하십시오'도 아니고,
'받으십시오'도  아닌,
'나누십시오'라고.

내가 받았으니, 그들도 받았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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