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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Jan 15. 2023

안녕(安寧)한 여정Ⅱ

여정의 끝

그때마다 건넬 수 있는 게 그것들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밖에 건넬 수 없었던 것은 상황에 따라 나만 건넬 수 있는 것이 되기도 했다.



유럽 배낭여행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은 파리다. 일주일이나 있었으니.

한 숙소에서 오래 머무르다 보니, 매일같이 오가는 길이 비슷했다. 그리고 하루의 마무리는 늘 그 빵집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목에 있던 어느 빵집. 왜 파리에 가서 빵을 먹어보라 하는지 그제야 알았다. 그곳의 크로와상은 매일같이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빵집은 아버지와 딸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아저씨는 빵을 굽는 제빵사였고 아가씨는 빵 포장과 계산을 담당하고 있었다.


갈 때마다 어제 사간 빵이 너무 맛있었다고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느덧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이 되었고 오늘이 이곳에 오는 마지막 날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다른 빵을 덤으로 더 넣어주기 시작했다. 파리의 빵맛을 알게 해 준 이 가게에 받기만 하다니- 나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급하게 가방을 열어, 줄 만한 것이 없나 뒤적거렸다. 그러나 가방에 들어있는 거라곤 핸드폰, 카메라, 물티슈 등 여행필수품이 전부였으니 줄 만한 게 있었을까.


여행을 갈 땐 한국에서 쓰던 지갑과 별개로, 다른 지갑을 하나 더 챙겨 현지 화폐와 카드를 따로 넣어 다녔다. 뒤적거리다 보니 가방 바닥에, 도착한 뒤에 한 번도 열지 않았던 한국에서 쓰던 지갑이 보였. 급한 대로 지갑을 열어 천 원짜리 한 장과 동전을 몇 개 꺼내 그녀에게 건다. 그리고 덧붙이길, 얼추 1유로 정도 될 거라. 기념으로 주고 싶다며.


어차피 이 돈으로는 나나 그대나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없을 테니, 그냥 어느 한국인이 전한 감사의 표시로 가져달라고 했다. 그녀는 특이한 인물이 그려진 처음 보는 동양의 지폐와 동전을 신기해하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처럼 한국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때였다면 좀 더 반응이 좋았으려나. 그리고  컬렉션이 다양했더라면. 사실 지갑에 얼마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하지만, 당시 휴학생 신분이었기에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을  아마 다양한 모습(?)의 화폐를 건네기엔 역부족이었을 테.



그러나 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그것은 나만 건넬 수 있는 선물 것도 같았다. 급하게 전한 감사의 선물이었지만, 반응  나쁘지 않았다. 는 이도, 받는 이도 부담 없는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대체불가능한 선물. 그날 이후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지갑에 천 원 지폐와 동전을 몇 개씩을 더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여정이든 그 여정에 고마웠던 이에게 여행용 지갑이 아닌, 진짜 내 지갑을 열기로 했다. (누가 보면 뭐- 대단한 금액인 줄)


그렇게 시작된 나의 안녕선물.

그러나 아쉽게도 그때처럼 길게 떠났던 여행이 없었으니 파리의 빵집처럼 여정 중 오랜 시간을 마주 이는 드물었고, 그러다 보니 이후 선물의 주 타깃은 머물렀던 호텔 직원들이 되었다. 매일 여정을 오가며 인사를 주고받은 호텔 데스크 직원에게 체크아웃하는 날, 그 고마움의 의미로 한국 지폐와 동전을 건네곤 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머물렀던 호텔은 아주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느낌의 호텔이었다. 예약할 때 봤던 호텔의 설명에는 건물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았기에, 번거롭지만 짐을 직접 들고 옮겨야 한다고 돼있었다.


살짝 걱정을 하고 갔는데 체크인을 도와주던 직원이 동생과 나의 짐을 한 번에 번쩍 들어 계단을 올라 옮겨줬다. 그리고 몬트리올 지도를 펼치면서, 지금 이곳엔 재즈축제가 하고 있으니 가보면 좋고- 또 이곳은 무엇이 유명하고-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너무 상세하게 설명을 해줘서 기억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리곤 자신의 이름은 패트릭이라며, 언제든지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었다. 친절한 데다 심지어 잘생겨서(배우 샘 클라플린을 닮았었다) 그랬지 아직까지 이름이 안 잊히네. 호호호.


머물렀던 몬트리올의 호텔, 조식시간


그는 우리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아침에 우리를 만나면 오늘은 어디를 가냐 물었고, 오후 늦게 만나다녀온 곳은 괜찮았는지 물었다. 교대로 근무를 하는 듯했는데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날, 오늘도 즐거웠냐며 환하게 우리를 맞았다. 지금 근무 중인걸 보니, 체크아웃 예정인 다음 날 아침에는 다른 근무자가 있을 듯했다. 안녕선물은 반드시 그날 밤에 전달돼야 했고, 짐을 정리하면서 어떤 선물들을 줄까 고민하다가 여행에서 쓰려고 가져왔다가 남은 마스크팩과 휴족시간 등 여러 가지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한국에서 가져온 것들이라며, 여러 가지를 내밀었는데 무엇을 들고 갔었는지 세하기억나지는 않는다. 단지 기억에 남는 건, 휴족시간 사용법을 설명하면서 '메이드인 코리아' 주고 싶었는데 이것만은 '메이드인 재팬'이라고 말했던 기억 밖엔. 그래도 고맙다고 말하 그와, 앞으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그렇게 작별인사를 주고다.




여정의 마무리.

캐리어 안엔 늘 그곳의 물건들로 가득하다.

가져왔던 것들은 내려놓고 가야 이곳의 것들을 가져갈 공간이 생긴다.


짧지만 안녕하였던 그 시간들이 기억으로 남아 앞으로의 나를 살게 할 테니, 헤어질 때엔 나도 그들기억에 남고 싶어졌다. 그렇게 그들에게 남고자 애쓰고 나면, 오히려 나에게 그들이 더 오래 남기도 했다. 지금 이 글처럼.


조금 특별한 안녕을 건네고 싶었여정의 끝. 동안 여행을 다니지 않았으니, 그간의 유행에 발맞춰 앞으로의 여행엔 어떤 한국스러운(?) 안녕선물을 준비할지 틈틈이 생각해 봐야지.






2023년의 첫 출근날, 발신인을 알 수 없는 택배가 사무실에 도착했다. 어느 여행작가가 찍은 사진으로 제작된 캘린더. 항상 내게 응원을 아끼지 않는 선배가 보낸 깜짝 새해선물이었다. 참 다정하기도.


한 해의 시작에 받은 특별한 선물. 이건 헤어짐의 안녕이 아닌, 시작의 안녕선물이라고 면 되려나.



감탄사를 연신 내뱉으며 캘린더를 넘겼다.

그리고 리스트를 만들기로 했다.


이제, 다시, 어느 곳을 가고 싶은지.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걸 두고,

어떤 걸 갖고 오고 싶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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