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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Jan 22. 2023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Dear my (                  )

달의 시간으로도 해가 바뀌었다.
3년 전 설날, 자식들과 손들로부터 새배를 듬뿍 받 한 해의 덕담을 건네던 외할아버지는 설날 연휴가 끝나기 전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숨이 고 어지러워져 급하게 찾아간 응급실. 두 발로 걸어 들어간 그는, 그곳을 다시 걸어 나오지 못했다.

기억이란 것이 단순한 '장면'을 넘어 '의미'로 다가오는 성장의 시간 속에서,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죽음은 없었다. 어찌 보면 여태 운이 좋았던 게지. 서른을 넘긴 나이 처음으로 목전에서 마주한, 어떤 '의미'로 다가온 죽음. 제 만난 이를 마음만 먹으면 내일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건 내 착각이자 오만이었다.




회전목마가 돌아가듯 한 해가 돌아간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홀로 회전목마를 탈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안도하며 즐거워했던 순간은 한 바퀴를 돌아다시 그 자리에 있는 부모님과 눈을 마주치며 손을 흔드는 순간이었을 테다.

이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찾아온 자리에 할아버지는 없다. 그렇게 영원할 것 같았던 관계들이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원해지거나, 끊어내 버리기도.


한 번씩 '인맥 다이어트'라며, 핸드폰 속 오랜 시간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이들의 연락처를 삭제하기도 한다. 이제 그들은 그 자리에 없다. 그러나 그들이 사라진 빈자리가 크게 아쉽거나 서운하지 않다. 간과 서로의 마음이 귀결시킨 그만큼 분(分)의 인연이었으리라.

그리고 확실한 건,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 자리에 있어준 그리고 있어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줄면 줄었지, 새로이 늘어나지도 그리고 늘리고 싶지도 않아 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중한 사람들은 줄어가고 대신 그만큼 더 귀해진다.


어린 동생과 나, 엄마 아빠와 눈이 마주치던 순간


영화 '먼 훗날 우리'에서 남자주인공 젠칭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 아들 전(前) 연인이었던 샤오샤오에게 남긴 편지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 아쉽게도 아들과는 헤어졌지만 마지막까지 그녀를 가족이라 여겼 아버지의 편지.


샤오샤오, 이제 곧 춘절이구나.
방금 찐빵을 두 통 쪘단다.
찐빵을 꺼낼 때, 뜨거운 김이 올라왔지.

올해도 네 몫을 남겨놓으마.

내가 늘 말한 대로, 밥은 집에서 먹는 게 최고지. 밖에서 사 먹는 건 시원찮잖니.
...
인연이란 게 끝까지 잘 되면 좋겠지만,
서로를 실망시키지 않는 게 쉽지 않지.
...
너희 둘이 함께하지 못해도 넌 언제나 우리 가족이란다.
샤오샤오, 밥 잘 챙겨 먹고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오렴.


앞을 잘 못 보기 시작한 노년의 아버지는 고향에 젠칭의 새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샤오샤오로 오해한다. 리고  손이 샤오샤오의 손이 아님알게 된 순간, 치듯 지나반가움에 대한 반증으로 샤오샤오아들의 인을 넘어 가족이었음을 는다. 그리고 그녀에게 우린 여전히 가족니,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라고 편지를 남긴.


이 장면을 보고 그냥 눈물을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인상을 찌푸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돌아올 때까지 항상 그 자리에 서서 나를 기다려줬던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눈이 어두워진 아버지가 고개를 푹 숙여 편지를 쓰는 장면


이제 나의 몇 안 되는 귀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심코 가볍게 건네는 새해 인사가 아닌 진심을 다해 한 해의 무탈을 바라는 인사를 건네고 싶다. 그리고 지금껏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도. 나 또한 당신의 회전목마 앞, 늘 있던 그 자리에 있을 테니 언제든 갑게 얼굴을 마주하자는 말도 덧붙여.


바라건대 이제 막 제대로 시작된 올해에도 서로 그 자리에 있고, 있어 주기를. 그리하여 제든 한 바퀴를 돌아왔을 때, 당연한 듯 눈을 마주치고 서로 도하며 다정한 인사를 건넬 수 있. 






젠칭의 아버지가 샤오샤오의 몫으로 남겨둔 찐빵처럼, 나도 올 한 해 당신에게 내어줄 시간의 일부를  남겨둘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장 따뜻한 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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