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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Jan 29. 2023

기우(杞憂)위기

멀리, 미리보기를 지양할 것

5년 전, 'TV는 사랑을 싣고'에 버금가는 느낌으로 고등학생 시절의 은사님을 찾아냈다.


담임선생님도 아니었던 그를, 나는 무척이나 동경했다. 평범한 외모의, 이제 막 중년을 향해가는 나이의 국어 선생님. 선생님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건, 학교 수업시간에 들려오던 구청 재활용품 수거차의 음악소리였다. 선생님은 댁에서 쓰레기 처리 담당이기에, 그 음악소리가 들려오면 마치 당장이라도 뛰어나가야 할 것만 같다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따뜻한 선생님이셨기에, 가정에서도 얼마나 다정한 분이실까 생각하면서- 그 어린 나이에 나중에 커서 결혼을 한다면, 선생님 같은 남편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1학년 때는 국어, 2학년 때는 문법 담당이셨는데 나는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어서 선생님이 맡으신 과목은 열과 성을 다해 공부했다. 그리고 가끔은 선생님께 편지(문법을 엄청 신경 쓰며 썼던 기억이 난다)도 써드렸는데 갑작스레 전달된 편지에 선생님은 급한 대로 A4용지에라도 답장을 쓰신 뒤 곱게 접어, 쉬는 시간 내 자리에 툭 두고 가시곤 했다.

(이런 남편감을 찾으려니 없는 게야)

그런 선생님의 연락처를 5년 전, 우여곡절 끝에 찾아냈다. 연락이 닿은 선생님과의 만남이 성사되었고 거의 10년 만에 뵙는 것이라 나이가 많이 든 모습이시면 어쩌나 했는데 걱정과 달리 여전하신 모습과 입담에, 반가움과 동시에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한편, 선생님은 학생 때 조용하고 수줍음 많은 내 모습을 기억하셨다가 사회생활로 얼룩진(?) 리액션 가득한 내 모습에 적잖이 놀라신 듯했다. 그래서였는지 나에게 본인의 직장 내 고충을 편하게 말씀하셨던 것 같기도.



그리고 그날, 가장 기억에 남았던 선생님의 말씀.

"다들 이렇게나 알아서 잘 크는데,
어른들은 왜 그렇게 걱정하고 보챘을까.
이렇게나 자기들 인생에 열심인데.
지금 생각해 보니,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어."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모든 것이 기우(杞憂)였다는 그 말이.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 말은 묘한 위로가 됐다.

선생님은 뿐만 아니라 선생님을 찾아왔던 제자들 모두 바르게 잘 자라, 사회에서 제 몫을 다 하고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보단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를 보는 분이니 제대로 보셨을 테다.

누군가는 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제자들만이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을 테니, 그렇게 말씀하신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 잘 컸어요'하고 선보이러 오지 않았다 해서, 누구 하나 자기 인생에 책임감을 갖지 않은 인생이 있었으랴. 각자 1인분의 몫을 해내기 위해, 남들 모르게 혼자만의 치열한 시간을 살아 것만은 당연할 테니.



선생님의 많은 제자들이 증명해 왔듯, 앞으로도 우리의 모든 걱정이 기우였으면 좋겠다.


되는대로 '그냥', 가만히 지켜보면 될 것을 -

'잘'하려, 욕심내 생긴 기우.



그때 이후로 선생님을 뵈러 가지는 못해도 스승의 날엔 문자를 보내드리곤 했다. 어른이 되어 마주한 선생님은 나와 같은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학교 일이 조금 힘들어 보이시기도 했다. 내성이 떨어져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고 하시 모습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마냥 잘 버티고 잘 자라야 한다 성장을 재촉하던 그때의 어른들도 한편으론 이런 마음을 숨기고 사느라 힘드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도 그러하니까.






올해엔 문자 말고, 선생님을 만나 직접 안부를 여쭙고 싶다. 렇게 지금의 나의 걱정들이 기우임을 또 확인받고 싶다.

그리고 간의 걱정들을 이겨내고 각자 1인분의 삶을 잘 살아내 만났으니, 이 시간이 증명하듯 앞으로도 대부분의 걱정은 기우이지 않겠냐 동의를 구하고도 싶다.



졸업을 해도 어른이 되진 못한 듯하다.

그래도 자라면 응당, 배운 것을 활용해야 의미가 있으니-


"걱정에 쏟아붓는 에너지의 양을 줄이록 의식하고 하겠습니-아!" 하고, 다짐하듯 이곳에 기록해 본다.(자신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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