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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Feb 19. 2023

아쉬웠으면 좋겠어

쓸쓸하지만 따뜻한 감정의 근원

사람들이 아끼는 감정들은 비슷비슷하다.
행복, 편안함, 기쁨과 같은 주로 따뜻한 색의 감정들. 물론 나 또한 그런 감정들을 선호한다. 따뜻한 색을 품은 감정들이 자주 찾아오고, 그 감정들을 충분히 내가 느 수 있길 소망한다. 그러나 내가 30대가 되어, 새로이 관심을 갖게 된 감정 중 하나는 '아쉬움'이다. 따뜻한 색의 감정들보단 갈색, 회색과 같은 쓸쓸한 느낌의 색을 띠고 있는 감정.


아쉬움에도 좋은 아쉬움과 나쁜 아쉬움이 있을 테다. 나쁜 아쉬움이란, '아- 그때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지 말고 받아쳤어야 했는데', '그때 등짝을 한 대 때려줄걸'과 같은 주로 분노와 관계된 아쉬움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다행히 이런 나쁜 아쉬움보단 좋은 아쉬움이 잦은 사람이었다.

하지 못한 일, 충분히 잘해주지 못한 사람.
나이제약, 체력제약, 장소제약, 시간제약 등. 시간이 지날수록 제약이 자꾸만 늘어가서일까. 수록 내 고유의 힘으로 뿜어낼 수 있는 자원들이 제한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자주 아쉬워졌다.

그러나 이 감정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알았다.
아쉬움이란 건 애초에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다는 걸.



10대와 20대를 함께 보냈던 아주 오래된 친구와, 20대 후반에 절연한 경험이 있다. 관계를 중요시하는 내 삶에서 누군가를 그렇게 모질게 내쳤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미 소진 돼버린 마음은 일말의 아쉬움 한 톨도 남기지 않았다. 그녀를 잃는 과정에서 힘듦은 있었지만 슬픔은 없었다.

아직도 핸드폰 갤러리엔 그녀와 찍은 사진이 몇 장 남아있다. 신기한 건, 사진을 봐도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쉽지도, 화가 나지도, 슬프지도 않다. 과거에서 지금으로 이어지는 선의 일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멈춰버린 어느 한 지점을 보는 느낌. 그래서 오히려 그 사실이 더욱 슬펐다. 그녀를 잃은 것보다 그 시간들이 이렇게 무던하기 그지없는, 아쉬움 하나 남지 않은 관계로 끝나버렸다는 게.



마이 페이보릿 무비  하나, '김종욱 찾기'.

주로 적극적이기보단 조용하고 다소 답답(?)한 여주인공들을 좋아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들 또한 아쉬움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기에 본능적으로 끌린 듯하다. 봉지 속 과자를 끝까지 먹지 않고, 책의 줄거리도 끝까지 다 읽지 않는, 첫사랑 김종욱연락할 수 있었으면서모른 척, 운명이라는 핑 뒤에 숨은 그녀. 물론 끝을 마주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그 아련한 마음을 아쉬움이라는 감정으로 잘 간직할 수 있던 그녀는 아쉬움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끝장'을 본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재밌게 봤다 생각한 영화나 드라마도, 결말은 가물가물하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의 애틋한 장면들을 더 좋아했던 것 같기도 같다.




멜로망스 김민석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 '아쉬웠으면 좋겠어'


우리의 깊어지는 이 새벽이 너무나 아쉬워.
어떻게 막을 수도 없는걸.
그래도 이렇게 아쉬워하는 게,
우리가 나눈 사랑의 증표라면
평생 아쉬웠으면 좋겠어.


그렇게, 나도, 평생 아쉬웠으면 좋겠다.
내가 아끼는 모든 이들과의 만남이.
내가 애정하는 사소한 일들이.

나에게 아쉬움의 색은 이제 함이 담긴 낮은 채도의 색이 아닌 따뜻한 갈색, 회색으로 칠해지고 있다.



충분히 채워지지 말아라.
또 채기 위해, 만족하기 위해,

다시 만나고 다시 행할 테니.

사실 오늘의 이 글도 아쉽다.
항상 써둔 글을 다시 읽으면 이상하고, 어설펐다.
그러나 그 아쉬움이 내가 히 여기는 일을 꾸준히 끼고 가꾸도록 만들지 않으려나.



애정하는 모든 것들이 평생 아쉬웠으면 좋겠다.
나를 채우기 위해서 쓰고 있는 글들도 계속 아쉬워라. 아쉬워서 결코 채워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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