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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Jun 25. 2023

가끔은 일기예보가 틀렸으면 좋겠어

앞으로의 日記예보

"1년 내내 요즘 같은 날씨면 좋겠다"

매일 밤, 동생과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여름이 시작되었고, 아직 장마가 지나기 전이라 그런지 낮에는 더워도 밤에는 선선하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방의 창문을 열어두면, 기분 좋은 바람이 들어오는 것이 조금 소란스럽긴 해도 잠자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다.


퇴근을 하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뒤, 항상 7시 30분쯤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러 집 앞 공원을 나선다. 대단한 운동은 아니고, 한 시간 동안의 빠른 걷기.


공원은 넓고 둥그런 광장 아니라, 기찻길을 따라 형성돼 있는 2km 남짓한 포물선에 가까운 공원인데 나 혼자만의 루트로 한 시간을 빡빡하게 채워 걷는다. (뛰는 사람이 아닌 이상,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앞사람들은 무조건 앞질러야 한다.) 도중에선 절대 쉬지 않는 것이 나름의 칙이라 공원의 양 극단에 도착하면, 그제야 잠시 스트레칭을 하고 살짝 쉬었다가 다시 반대쪽을 향해 걸어간다. 시계의 분침은 빠르게 한 바퀴를 채우고, 집에 돌아올 때 온몸은 땀에 절어있다.



하루 중 그 한 시간만큼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회사에선 사무실을 홀로 쓰고 있긴 하지만, 언제, 어디서, 누가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홀로 손님을 맞아야 하기 때문에 누구든 들어오기만 하면 마중 나가듯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눠야 한다.


회사 말고 그럼, 집은.

박재정의 '집'이라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집에 가고 싶죠.
가끔은 그곳도 정말 좋은지 잘 모르겠죠.


모두에게 집은 때론 그런 곳이 아닐까.

가장 편한 곳이지만 가끔 아무 말 없이 혼자 있고 싶어도, 그 혼자 있고 싶은 이유를 굳이 가족에게 설명해야 하는.


그렇다고 또 혼자 사는 사람이라고 다 좋기만 한 것은 아닐 테다. 사회초년생 시절, 집과 멀어진 곳에서 근무하며 홀로 지냈다. 행동으로 드러나는 감정표현에 솔직할 수 있고 그 자유로움이 좋다가도, 아플 때 서러운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 휴지나 샴푸가 떨어져도 누구 하나 새것을 가져다줄 사람이 없다는 것, 핸드폰을 찾지 못해도 전화 한 통 걸어봐 줄 사람이 없다는 것 서글프기도 했다. 홀로여도 홀로이고 싶지 않아서 그때에도 나는 퇴근 후에 저녁을 먹고, 한 시간 정도 정처 없이 그 작은 소도시를 구석구석 걸어 다녔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이렇게 외로움보다 자유로움에 온전할 수 있는 그 한 시간을 좋아했다. 그래서 지금도 퇴근하고 몸이 너무 피곤하지만 않으면, 무조건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비나 눈이 내리지 않으면 길을 나섰다.


지난 화요일 저녁엔 날씨가 너무 좋았다. 에어컨 바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건강한 느낌의 바람. 그런데 일기예보엔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계속 비가 온다고 나와있었다. 아니- 이렇게 시원한 날씨에 걸을 수가 없다니, 무 아깝잖아. 비가 오면 중간에 돌아온다 생각하고, 한 손에 3단 우산을 쥔 채 길을 나서기로 했다. 일기예보도 가끔은 틀릴 수 있으니까.


우리 집은 기찻길 공원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는데, 처음에 나설 때엔 비가 올지도 모르니 양 극단까지 가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중간에서 좀 더 자주 오가야겠다 생각했다. 가다가 비가 쏟아지면 집에 돌아오기까지 너무 멀어지니까. 그러나 상쾌한 바람에 길을 걸으니, 그런 생각은 자연스레 잊혔고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 비가 오면 공원에 우거진 나무들이 조금은 비를 막아주겠지.


다행히 으로 돌아올 때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고, 결국 늘 걷던 그 코스 그대로 한 시간을  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잠들기 전까지도 비는 오지 않았아침에 눈을 떠보벽부터 비가 시작된 듯했다.


결국 그날의 일기예보는 살짝 어긋난 것으로 마무리. 그래도 그 '어긋날 가능성' 덕분에 반신반의하며 집을 나섰고, 덕분에 기분 좋게 돌아와 시원하게 잠들 수 있었다.


이렇게 예측되는 걱정과 두려움들이 가끔은 어긋났으면 좋겠다. 그런 어긋남들이 쌓여, 어느 한 곳에도 편중되지 않고 그렇게 될 거라는 가능성과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중 어느 쪽이든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후기가 많지 않은 재미없을 법한 여행지로 떠나는 일. 어느 날 문득 보고 싶은 희미했던 인연들을 만나고 돌아와 다시 그 관계를 소생시키는 일. 가끔은 쓸데없어 보이지만 격하게 끌리는 물건을 사고, 오지랖일까 하는 고민을 뒤로한 채 누군가에게 격려의 선물을 건네는 일. 다시 말해,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하는 게 맞다'라고, 확률보다는 그저 마음의 편이 되어주는 일에 인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고 항상 나에게 행운이 따른 것은 아니다. 지난해 어느 여름날, 그날도 나는 일기예보가 어긋날 것이라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공원 초입부터 사람들이 영 보이지 않는 것이 그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는데, 얼마 걷지 않아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좀 잠잠해지면 집으로 돌아갈 심산으로 공원의 정자에 앉아있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는 기세에 '돌아가는데 비 좀 맞아봤자 얼마나 맞겠'하고 일어 집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머리카락 한올부터 발끝의 끝 푹 젖어버렸고 결국 물에 빠진 생쥐 꼴 되어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날, 비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던 정자에서


일기예보의 불신에 대한 복수였나. 이 나이에, 집을 목전에 두고 이렇게 비를 맞다니. 어린 시절 철없던 때를 제외하고 이다지도 홀딱 젖어본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낭만적이긴 개뿔. 몰골부터 정신까지 볼썽사나운 일이었지만, 돌이켜보니 나 혼자만의 썩 나쁘지 않은 추억.





어느 쪽이든 그 선택에 대한 결과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능력이 나에게는 있으니, 그렇게 앞으로도 적인 확률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산을 한 손에 들고나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나는 다시 그 길을 나설 의향이 있으니.


해가 지 뜨거운 열가 한 풀 꺾과 동시에, 바람이 불어오는 길을 걷다 보면 근래 기저에 깔려있던 나의 기운 없던 기한 풀 꺾이는 듯했다. 기상청을 욕하지 않을 테니, 가끔은 이렇게 일기예보가 틀렸으면 좋겠다. 단순히 심증만으로 행한, 나를 위해 홀로 내디딘 걸음들이 용기 내길 잘한 일이라고 확인받을 수 있을 테니.

나는 할까 말까 고민하다, 또 하고 말 테니까.


기상청보다 더 확실히 예보할 수 있는 것은 그런 불확실함 속에서 그 용기 무모하지 않았음을 확인받은 일, 앞으로의 걸음을 내딛는데 보태지고 지 않으려 또 어딘 가에 나의 일기로 기록 것이란 것이다. 


그렇게 용기는 결정이 되고, 결정은 결심의 형태로 기록될 것이다. 그 와중에 그렇게 모 글들이 앞으로의 나에게, 또 때론 다른 누군가에게 괜찮은 예보로 남았으면 하는 것은 내 욕심일 거고.




아- 여담으로, 올해 여름이 역대급으로 더울 것이라는 예보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대프리카에 사는 나로서는 정말이지 그 예보야말로 제발 틀렸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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