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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Jun 18. 2023

밤의 유랑

매일 방황하며 연료를 모아둡니다

분명 책에는 '걸어서 여행하기 좋은 도시'라고 쓰여 있었다. 특히나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곳은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곳이었다.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곳의 사람들은 걸음을 내딛으며 발장구를 세게 치거나, 자전거 위에 앉아 페달을 밟으면 점점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고 이윽고 모두 하늘을 걷고 있었다. 책에서 말한 걸어서 여행하기 좋은 도시란, 하늘 위를 걷는다는 의미였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고 나에게 자전거는 없었다. 그저 열심히 발을 굴고, 그러자 몸이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다. 비로소 하늘 위를 걷게 되었고, 이내 황홀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발아래는 해질 무렵의 분홍빛 하늘이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관람차가 돌아가듯 어느덧 한 바퀴를 돌아 땅에 곧 발이 닿을 듯했다. 때마침  사람 정도 아래에서 내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 내려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을 피해 다시 하늘을 걸으려고 발을 구르고 있는 동안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지만 저기 음악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봐야 할 것 같다, 땅 아래의 그들을 따돌리고 다시 발을 굴렸다. 이내 음악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청명하기 그지없는 알람소리.

눈이 떠졌고 하늘은커녕 침대 위, 아침이었다.

유랑을 위해 핑계삼은 음악소리는 알고 보니 알람소리였다. 유쾌한 듯 허무하고 기묘한 꿈.

어쩐지- 우리나라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책에서 봤다는 나라와 도시 이름이 분명하지 않았다.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도. 래도 이러나저러나 결과적으로는 간만의 숙면에, 몰입감 높은 꿈이었다.


그 꿈을 꿨던  저녁, 나는 사실 장례식장에 다녀왔었다. 그리고 일주일 전에도 한 번.

만남보다 이별이 익숙한 나이로 진입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매번 예상하고 들어서지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들의 슬픔은 고작 짐작만으로 위로하기엔 벅찬 일이었다. 이렇게 남은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을 떠난 이들은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걸까. 많은 생각을 품고 돌아온 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몽환적인 음악소리를 빙자한 알람소리와 함께 꿈에서 깼다. 갑작스러운 현실 회귀에 당황해하며.


혹 깨어나기 힘든 이런 몰입감 가득한 꿈을 계속 꾸는 것이 죽음일까. 죽음이란 이런 꿈속을 영원히 유영하는 것일까. 한참을 걷기도 또 날기도 하는 꿈의 산책. 그 밤, 나는 밤새 열심히 꿈속을 유랑하다 돌아왔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며, 불현듯 머릿속에 영정으로 마주했던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떠오른 김에 그들의 유랑을 응원하며 기도했다. 여정을 끝내지도, 돌아오지 않을 것도 알지만 부지런히 먼저 그곳을 살펴보다가 언젠가 그곳에서 다시 만날 사랑하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답을 얻지 못한다. 다녀'온' 사람이 없으니.

한창 궁금증이 많았던 어린 나이에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이 모여 산다는 아카이브 별 이야기를 들었다. 아카이브 별은, 죽음에서 돌아'온' 엄마가 자신이 없는 세상을 살아갈 아들을 위해 그려 준 동화책 속의 별이었다. 소설 속 동화책처럼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다면, 그래서 언젠가 그곳에서 다시 재회하기만 한다면, 죽음은 두렵지 않을 것도 같았다.



주말엔 결혼식을 다녀왔다. 경조사라는 말 그대로, 단기간에 경사와 조사가 함께 있는 때였다. 짧은 시간 동안 영원한 헤어짐과 영원을 약속하는 이들이 교차하며 괜스레 마음이 복잡했다. 단지, 어느 곳에서든 그들이 앞으로 주어진 여정에서 방황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얼마 전부터 책 읽는 습관을 키우려고, 휴대폰으로 매일 밤 10시에 알람을 설정해 뒀다.

실용적이고 유용한 정보들이 많다는 것을 핑계 오래 기억되지 못할 것들만 난무하는 핸드폰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나오고 싶어서.

매일 밤  화면에 갇혀있다 갑자기 현실로 돌아오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씁쓸한 몰입.


어느 책에서 실력은 알아야 할 것들을 알수록 커지고, 행복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을 모를수록 커진다고 했다. (최인철, '아주 보통의 행복' 中) 난 실력자보다 행복자(?)가 되고 싶다. 그러니 최대한 쓸데없는 것들을 르기 위해선 그 작은 화면 속에 오래 머물러될 일이 아니었다.




나의 부서장님은 학교에서 꼽히는 다독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으시는데, 언젠가 한 번은 그런 말씀을 하셨다.


아무 의미 없이 금방 잊힐 것들을 읽는 것 같지만 언젠가 그간 수없이 읽어온 책들이 양손깍지 끼듯 결합되어 '이것이 진리였구나'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고. 그래서 지금 당장 쓸모가 없고, 와닿지 않는 이야기더라도 언제 어느 순간 그 힘이 발휘될지 모니 지금부터 차곡차곡 그 연료를 모아두라고.


매일 밤, 그 언제가 될지 모르는 때를 위해 무용한 듯 다정한 것들을 모아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렇게 만나고 떠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여정의 의미와 결승선도 트랙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내 인생의 레이스까지, 생각과 바람만 난무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깍지 끼듯 결합되어 언젠가 그 방황의 여정을 끝낼 수 있길 바란다.



오늘도 어김없이, 곧 있으면 알람소리가 울린다.

좁은 세상의 꿈을 깨고 다른 곳으로 떠나야겠다. 많은 것을 알기보단, 모르기 위한 곳으로.


또 다른 형태의 밤의 유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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