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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Jun 11. 2023

경계의 위기를 경계할 것

개와 늑대의 시간

얼마 전, 어이없게도 집 앞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져 무릎을  쳤다. 다행히 병원에 가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하필 입고 있던 치마가 바람에 날리면서 쌩무릎 그대로 바닥에 긁혀버렸다. 어릴 때야 체육 수업에 뛰어다닐 일도 많고 천방지축이니 무릎을 다치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이 나이에 이렇게 무릎 다치니.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이미 어릴 때 수없이 경험해서 알고 있었지만, 무릎은 가벼운 찰과상이라 해도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앉은 채로 이를 악 물고 따가운 소독 하고 처치 뒤 일어서면, 다리가 펴지는 만큼 무릎은 쪼그라들어서 다시 통증이 밀려왔다. 걸을 때에도 한 걸음씩 무릎이 움직일 때마다 상처부위도 계속 움직이다 보니, 욱신거려서 도무지 자연스러운 자세로 걸을 수가 없.


무릎은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에서 이들을 연결하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듯한 경계의 위치지만, 반대로 그것은 그만큼 유약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경계를 다치는 일이란 예측한 것 이상으로 상당히 불편한 일이었다.




나는 이유 없이 기분이 다운되고 좀 우울하다 싶을 때, 언젠가부터 습관적으로 달력을 보게 됐다.

PMS(월경전증후군) 증상의 일환으로 우울감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나는 그 영향을 적잖게 받는 편이다. 그래서 달력을 보고 '아- 지금쯤이면 내 기분이 이럴 수 있겠구나', 확인고 나면 괜스레 안도 했다. 이유 없는 우울감에 그럴싸한 이유가 생기 때문이다. 달마다 찾아오는 어느 경계선에서 겪는 우울. 그렇게 원인을 찾고 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최근 들어,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안 좋은 날들이 지속되곤 했다. 콕하고 집어낼 만한 사건도, 긴장 속에 맞이해야 할 별다른 계획도 없는데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습관대로 달력을 확인해 봤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러다 이번에 무릎을 다치고 나서 느꼈다. 어쩌면 PMS처럼 지금 내가 어떤 경계에 서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하고.



경계에선 자꾸만 생각이 많아진다.

무엇이 맞는 것일까.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저 너머엔 무엇이 날 기다리고 있는 걸까.



공교롭게도, 지금 근무하는 곳에서 나는 경계에 서 있다. 파견근무라는 것이 그렇다. 이쪽에 속하라 하면 이쪽, 저쪽에 속하라 하면 저쪽이 된다. 테이블 사이 어느 모서리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 사실 업무적으로도, 여러 가지 변화를 앞두고 있긴 했다. 업무의 성수기가 끝나고 비로소 찾아온 평온한 시기였는데, 갑작스레 새로운 변화들이 예고됐다. 차라리 바쁠 때라면 정신이 없어서 크게 고민할 겨를이 없을 텐데, 오히려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그 빈틈에 쓸데없는 생각들이 잔뜩 들어선 듯했다. 그렇다고 한들 이러한 변화를 앞두고 내게 이렇다 할 결정권이 주어진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 것도 아닌데.



경계의 위기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감정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음인지다. 러나 한편으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달력을 확인했을 때처럼 조금안도감이 찾아왔다. 지금우울감은 어찌 보면 위치상, 시점상 당연한 일이고 러다 사라 감정처럼 스쳐 지나갈 것이라고.


이제 기분이 괜스레 다운될 때, 달력을 봐도 답이 나오지 않으면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지금 혹시 어느 경계선에 서 있어서 이러는 건 아닐까 하고. 모호함이 주는 당연한 위축이라 생각하면 조금 기분이 아질 것 같아서.



어느덧, 무릎의 상처는 약간의 흉터를 남기긴 했지만 다행히 잘 아물었다. 가끔 기분 탓 갑작스레 얼음을 댄 듯 시큰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매일 밤마다 꼼꼼하게 해 주었던 처치 덕분인지 단순한 시간의 힘 덕분인지 무사히 회복되었다. 동안 하지 못했던 근 후 저녁운동도 재개했다. 의 회복은 다리 전체 아니, 일상의 회복이기도 했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한 해가 지는 시간, 그 경계의 시간에 사람들은 무수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황혼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이는 저기 멀리서 다가오는 그림자가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렇게 경계의 시간은 저 너머의 시간 다정한 시간 슬프고 위험한 시간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그러나 언젠가 이 경계를 지나 명확해지는 시간은 찾아온다.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경계를 인지한 순간 그 시간에 한계가 있다는 것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방황의 시간도 짧게 느껴지지 않으려나.






내가 좋아하는 밴드 DAY6의 노래 중에 '행복했던 날들이었다'라는 노래가 있다. 신나는 밴드 음악 보컬이 매력적인 노래인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 노래를 듣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어느 가사가 귀에 훅 들어왔다.


'이제는 노을은 밤의 시작일 뿐이야'


결국 노을은 진다. 찾아올 것이 설령 어두운 밤뿐일지언정. 경계를 지나 애매했던 것들이 분명해지는 시간 찾아온다.


그러나 그 시간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노래 가사와 분위기처럼 다른 밤을 앞둔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감에 젖어 노을을 보내줄 수 있다면, 이 경계를 지나 찾아올 밤도 어쩌면 들뜬 기분으로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또 익숙한 밤을 지나면, 또다시 낯선 해가 떠오르 새로운 경계가 찾아올 것이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경계들은 나를 찾아와 생각에 빠지게 하겠지.


어쩌겠는가.

다만, 피할 수 없음을 그리고 끝이 있음을 알았으니 그저 알아차리고, 안도하고, 보내줄 수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때, 지금, 그뿐이다.


지나갈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늘 힘들어한다.
아직은 지나가기 전이니까.
- 무과수, '안녕한 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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