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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Jun 04. 2023

따끔하고도 따뜻한 말

괜찮은 어른의 말 한마디

몇 년 전, 지금이 삼재인가 싶을 정도로 직장생활이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당시 나는 나의 윗선들과 갈등이 있었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내 직장생활에 있어서 가장 뾰족했던 때라고나 할까.


매일같이 싸웠다. 이렇게 연장자이상사인 사람에게 할 말 다하고 살아도 되나 싶었지만, 어떤 날은 나를 위해서 또 어떤 날은 나보다 힘이 없는 부서원을 위해서 그의 방에 들어가 몇십 분씩 입씨름을 해야만 했다. 아무리 윗사람이라 한들 조금의 결도 맞지 않는, 그의 마음에 들고 싶단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단지 그들이 나의 반박에 대한 반박으로 여태껏 내가 열심히 해온 직장생활을 무시하려 들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인정을 바라지 않습니다만, 제가 해온 일과 지금 하는 일을 무시하지는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는 멘트를 몇 번이나 내뱉었는지.


집에 돌아와선 죄책감에 시달렸다. 성격에 맞지 않는 말싸움을 하고 돌아오면, 치기 어린 나이도 아니면서 어른들에게 버릇없이 굴었다는 죄책감과 풀리지 않는 억울함이 나를 짓눌렀다.


한창 업무의 성수기였던 때라 더 날이 서 있었다. 당연히 담당자만 아는 그 무게를 모르던 그들은 바빠 허덕이고 있는 나를 불러 쓸데없는 일들(그들에겐 쓸데 있는 일이었을진 모르겠으나)을 계속 요구했다. 여느 때처럼 입씨름을 하고 지쳐있던 무렵, 나의 첫 발령지에서 만난 직장 선배와 때마침 사내 메신저로 대화를 나눴던 듯하다. 직장생활의 첫 사수이자 오피스마더(?)와도 같은 그녀는 나의 상황을 멀리서도 잘 알고 있었다. 같은 업무를 하고 있었기에, 업무를 하다가도 힘든 상황을 토로한 적이 많았다. 원격 고충상담원 같았다고나 할까.


평소와 다름없이 앓는 소리를 늘어놓던 나는 그녀에게 '이러다 여기서 쌈닭이 될 것 같아요.'고 톡을 보냈다. 쌈닭의 한숨 가득한 울음소리에 돌아온 그녀의 답장.


"그런 때일수록 맡은 일은 더 확실하게 해.
쌈닭도 알만 잘 낳으면 함부로 못해."


내 직장생활 명언집이 있다면 가장 처음에 수록될 문장이 아닐까. 그녀는 상사를 같이 욕해주기보다는 나를 다그쳤다.


집에 돌아가는 내내 마음에 되새겼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지금 하는 일을 더욱 흐트러짐 없이 해내야 한다고. 그로 인해 결국은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라고. 미안하지만, 나는 그때 당시 나를 안타깝게 여긴 주변인들의 어느 위로보다 그녀의 따끔하고도 따뜻한 그 말이 훨씬 좋았다.


억울하고 부당하다는 이유로 여기가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일을 대충 하고 싶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는데, 그랬다간 '인정을 바라지 않습니다만, 제가 해온 일과 지금 하는 일을 무시하는 말아달라'는 나의 말을 내가 무시하는 꼴이 될 뻔했다.



지난해 여름, 학내 발령을 받아 다른 건물에서 외딴섬처럼 완전히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의지할 만한 사람 없이, 홀로 일을 개척해 나가야만 했다. 몇 달 내내 모르는 일을 물어가며 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나를 짓눌렀다. '처음이니까 모를 수 있지, 그럴 수 있지'하는 생각들몇 달을 넘어가니 이내 지쳐가기 시작했다. 아직도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은데, 이것 말고도 알아야 할 게 산더미라니. 더군다나 다른 동료들에게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하는 자리였기에, 압박감이 더했다.


그러던 와중에 나와 함께 근무하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전보가신 아버지 같은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잊지 않고 감사하게도, 틈틈이 나의 생사를 확인해 주던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잘 지내냐며, 새로운 곳에서 잘 버텨내고 있는지 안부 물었다.


항상 같이 근무할 때에도 이곳보다 더 힘든 근무지와 이 일보다 더 힘든 업무를 언급하며 나의 응석을 받아주기보다는 지금을 다행으로 여기라는 쓴소리를 자주 내뱉었던 그이기에, 그날도 평범한 위로를 건넬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모르는 것 투성이에 실수도 가끔 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이렇게 살아도 되겠냐는 나의 한탄 한참동안 던 그가 조용히 입을 뗐다.


"네가 성장하고 있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어린아이마냥 징징대던 나의 소에 이어, 차분한 목소리로 별다른 미사여구 없이 돌아온 그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을 듣고서부터, 언젠가 이 시간들이 앞으로의 내 직장생활에 크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당황스러우면서, 따끔하고도 따뜻한 그 말이 좋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사함과 스스로에 대한 기특함 나를 감싸게 했던 그 말이.



백 마디의 어쭙잖은 공감과 위로보다, 그들처럼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에 정확히 침투할 수 있는 따끔하고도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괜찮은 어른으로 자라고 싶다. 그리고 살아온 삶을 통해 그 말을 증명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언젠가 나도 그런 어른이 되어, 황하는 누군가 하여금 가장 적절한 때에 적절한 힘을  수 있게 하는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러기엔  나에겐 그 경지에 도달할 경험치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테. 그러나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그런 지혜를 말로 번역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 보고 배울 교보재가 가까이에 있다.






이제와 문득 그들의 한 마디가 떠오른 이유는, 지금 나에게 다시금 필요한 한 마디이기 때문이다. 업무상 바쁜 시기도, 누군가 대단한 빌런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간 누적된 것들로 인해 지금이 업무적으로, 관계적으로 위태로운 시기란 것을 스스로 감지했다.


그러나 늘 그래왔듯 힘들어도 죽을 만큼 힘들지 않고, 외로워도 몸서리치게 외롭지 않으려면 다시 그들의 따끔하고도 따뜻한 말을 되새겨야 한다. 이보다 더한 때의 처방전이니, 지금 이 정도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알 잘 낳는 쌈닭 성장하는 리를 이어나가야지. 그래야지만 메아리처럼 나를 향한 따끔하고도 따뜻한 말을 건네받을 수 있을 테니까. 



일단, 내일도 출근해 보기로 한다.

그렇게, 무사히 지나면 내일도 어제가 될 것이다.


힘들게 힘들다는 말을 꺼냈던 적이 있다.
내 말을 들어준 사람은 나에게
"그 시기를 지나가고 있네"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고마웠다.
함부로 공감해주지 않아서 고마웠고
섣불리 위로해주지 않아서 고마웠다.

- 태재, '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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