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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Aug 20. 2023

'합리적 의심'에 대한 의심

어떤 의심에 대한 반성문

며칠 전, 학교 우편물과 차량을 관리하는 후배로부터 사내 메신저로 톡이 왔다. 내가 속한 부서에서 사용 중인 공용차량 앞으로 교통법규위반 사실확인 요청서가 왔다는 내용이었다. 원칙상 경우, 운전자가 위반 사실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후배는 나에게 누가 운전을 했는지 알아보고 연락을 달라 했다. 그러곤 우편물의 내용을 전달받았는데, 건네받은 고지서조금 특이했다. 위반 시간은 퇴근시간 이후였고, 장소는 여기서 편도 거리만으로 2시간이 넘게 걸리는 부산의 해운대.


고지서에는 우리 차량 뒷모습이 찍힌 사진이 첨부돼 있었고, 저화질에다가 아주 작은 흑백이미지였던 탓에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공용차량의 뒤태와 얼핏 비슷해 보이긴 했다. 뒤따르던 차가 안전운전 미준수로 블랙박스 속 영상을 제보한 듯했다. 고지서에는 해당 에 대해 직접 설명하거나 출석하라는 통보도 덧붙여 있었는데 인정하게 되면 범칙금이 부과되는 구조였다.


운전자를 찾아내고자 복무시스템을 뒤졌지만, 대장 상에 그날 그 시간에 차를 가지고 나간 사람은 없었다. 아니- 어떤 간 큰 자가 공용차량몰래 전해, 부산 해운대까지 갔단 말인가. 하필 고지서를 받은 날, 출장자가 았던 데다가 확인해야 할 문제의 차량마저 출장을 나가고 없었던 탓에 운전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 와중에 나는 이곳에서 총체적인 인사 복무 관리를 맡고 있기에, 운전자가 누구였는지 찾는 것과 동시에 근무 시간 외에 공용차량을 허락 없이, 그것도 부산까지 몰았다는 자를 앞으로 어찌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징계위를 열어야 하나. 범칙금이 나와도 어차피 본인이 물 텐데, 무섭게 타이르고 조용히 덮어주어야 하나.



주차장의 CCTV는 2주 안의 영상만 보관된다고 하니, 한 달 전에 발생한 의문의 운전자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히 학교 정문에 차단기가 설치 돼있기 때문에 경비실의 차단기 기록을 확인하기로 했다. 사진이 찍힌 시간에 부산에 가 있었다면, 그 시간으로부터 한두 시간 전에 나간 기록이 남아있으리라. 그러나 경비실에서 확인받은 내용은 좀 애매했다. 출차는 별도 인식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출차기록은 남지 않고 입차기록만 남는데 해당일 오후 출장에서 돌아왔던 입차 기록과, 이튿날 오후 또 다른 출장을 다녀오고 입차한 기록 외엔 없다는 것이었다. 모두 근무시간 이내.


가능한 시나리오는 출장에서 돌아온 차를 가지고 저녁에 부산갔다가 다음날 바로 다음 출장지를 갔다거나, 부산을 다녀온 뒤 외부에 주차를 했다가 출장지로 바로 떠났다가 입차했거나. 출차 기록 시스템이 조금 시원찮아 보이긴 했는데, 이렇게 남겨진 기록만으로는 차량 운행에 대한 사실도, 전자를 특정하기 힘들었다. 상황을 확인한 후배가 경찰서에 직접 연락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의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초조해졌다. 아, 용의자(?)를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가. 찾으면 또 어떻게 해야 하나.


후배 경찰서에 차량이 그곳까지 간 기록이 없다고 전화를 했고, 경찰서에서다시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참 후의 시간이 흘러 경찰서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답변은 어이없게도, 번호판 인식 오류. 이런 일은 또 처음일세. 안도와 허무가 동시에 찾아왔다. 개인용 차량이라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겠지만 여러 명이 운행하는 공용차량에 이런 일이 생기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왜 하필 또 고지서 상에 찍힌 차량의 뒤태가 우리 차와 비슷했던 건지. 결과적으로 허탈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안도가 더 컸다. 후배에게는 우리 만의 아찔한 추억(?)으로 간직하자고 마무리했다.


어쩌면 사소한 해프닝일 수 있는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이번 고지서 사건의 용의자로 사실 내 머릿속에선 의심했던 인물, 아무개 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지서를 받은 날, 아무개 씨도 출장 중이었기 사자에게 바로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더욱 의심을 키웠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내가 그 사람을 의심하게 된 것에, 평소 아무개 씨 태도가 한 몫했던 것도 있었다. 그러나 본인 확인도 없이, 해운대 밤바다 근처도 가지 않았을 사람을 '몇 시에 출발해 어떤 경로로 갔기에, 그 빠른 시간에 그곳에 도달했을까'하고, 나 홀로 명탐정 코난이 되어 의심하고 마음속으로는 이미 원망까지 했던 것도 같다. '그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라고 맹신하며. 나는 심지어 아무개 씨에게 사실관계를 묻게 된다면, 다녀와놓고서도 그 사실을 인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법륜 스님의 <지금 이대로가 좋다>라는 책에 이런 일화가 있다. 인도에 성지순례를 간 법륜스님에게 어떤 인도 여인이 다가와, 스님의 옷을 계속 잡아당. 1루피를 줬는데도 받지 않 여인은 계속 스님을 잡아당기며 품에 안고 있는 아이를 가리. 아이를 먹일 돈이 필요하다는 . 이어 스님은 여인을  길거리의 구멍가게에 도착했고 여인은 분유통을 가리. 주인에게 얼마냐 물으니, 60루피.


인도로 떠나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인도 사람들이 돈을 달라고 하면 1루피 이상을 주지 말라고 단단히 교육을 받았던 스님은, 여인이 바라는 60루피가 마치 전 재산을 다 내놓으라는 소리 같아 그녀를 뿌치고 숙소로 돌아와 버다. 그러곤 숙소에 와서 생각해 보니, 애가 배가 고프다는데 그것 하나 사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60루피가 한국 돈으로 얼마인지 아봤더니.


60루피는 한국 돈으로 겨우 2,400원. 배고픈 아이에게 먹이려는 분유 한 통을 외면했다는 생각에 스님은 다시 골목으로 나갔지만, 이미 아기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자괴감에 빠진 스님은, 이 일을 깊이 참회하며 앞으로 아픈 아이를 위해 몇 만 배로 갚으리라는 결심을 했고, 인도에 아카데미를 세운 뒤 지원활동을 시작셨다 한다.



법륜스님은 스로의 비합리적 의심에 대한 책감과 그 대가를 더 큰 선()으로 르고 계 게 아닐까. 렇게 단편적인 일화에 그치지 않고 아가 스님은 큰 업적을 세우고 계시지만, 나는 스님과 같은 성인이나 현자가 되지는 못하기에. 스님이 책 속의 일화로 남겨 두셨듯이, 나도 이곳에 이렇게 남겨둔다. 어차피 상대방에게 속마음을 들킨 것도 아닌데, 뭘 이리 기록까지 하나 싶다가도. 곱씹을수록,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보려 했단 사실이 꽤나 스로에겐 실망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부끄럽기도 했고. 무슨 퍼즐 맞추기를 하는 양.


의심은 대개 부정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러니 더더욱, 의심에 근거가 생기기 전까지는 절대 멀리 내다보지 않으려 한다. 의심은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이니.


전하지 못하고 받을 일도 없을 마음의 사과를 홀로 건네본다. 리고 의심을 해야 할 것은 이 일로 나름 중립 기어를 박고 살고 있었다 생각했던 나의 마이었음을 깨닫고, 이젠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끌어당겨 제대로 중심지키겠다고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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