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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Jan 21. 2024

그러니까, 그단스크

2023, Summer, Gdansk, Poland

시작은 Pinterest의 이미지 한 장이었다. 알록달록한 블록 장난감처럼 건물이 옹기종기 붙어있던 어느 도시의 전경 사진. 나는 언젠가 꼭 그곳을 가겠노라 다짐했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



사람들이 내게 왜 폴란드를 가기로 했냐 물었을 때, '그단스크'에 가보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단순히 그곳에 가고 싶어 폴란드행을 택했다고. 그단스크에서 꼭 봐야 할 뚜렷한 목적지도, 만나야 할 사람도 없었다. 나는 그저 그단스크에 가보고 아니, 가 있고 싶었을 뿐이다.


바르샤바에서 그단스크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그곳에 닿고 싶어 비행기를 탔다. 경비에서 차이가 좀 있었지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시간을 돈 주고 사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일찍 그단스크로 가야 하니까.



그단스크에 도착해 공항에서 중앙역까지 기차를 탔고 역에서 한참을 헤맸다. 겨우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휴식 후 길을 나섰다. 황홀한 도시의 전경 속에서 수많은 사람, 수많은 목소리, 수많은 생각이 강물과 함께 흘렀고 스쳤다.


김영하 작가의 책,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 생각났다. EBS 여행프로그램의 PD가 김영하 작가에게 프로그램 출연을 권하며, 어디로 여행하고 싶냐 물었을 때 그는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시칠리아를 답했다고 했다. 큰 고민 없이,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대답처럼 자연스레.


나에게 그단스크도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폴란드를, 그리고 그단스크를 가려하냐 물었을 때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저 그단스크란 답만이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된 답이었을 뿐. 그리고 그곳에 당도해 알았다. 그래. 그러니까, 이러니까 그단스크에 오려고 했던 거지. 그러나 여전히 잘 설명할 자신은 없다.



그단스크에서 3일을 머물렀다. 매일 저녁 일정을 다 끝내고도 산책을 나갔다. 대낮에도 돌아다녔던 곳을 또 보러 갔다. 해의 위치에 따라 그곳의 모습도 시시각각 변하는 듯했고, 조금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일기장에는 언젠가, 꼭, 다시, 또 오겠노라고 써두었다. 다시금 오래'될' 대답을 준비하며.




언젠가 툭 튀어나올 준비된 대답과 그 대답의 실현. 사실 폴란드에 머무르는 동안, 그해 여름의 끝에 새로운 곳으로 발령이 날지도 모른다는 연락을 받았었다. 대구에서 인천이라니. 집과의 거리나, 일의 무게나 쉬운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였는지, 그곳의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졌다. 최대한의 풍경을 머릿속에 담으려 애썼고, 그때마다 수많은 사유가 따라다녔다.  정말로 한참의 시간이 지나 다시금 이곳에 온다면, 그 순간 내 모습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때가 되어, 이때를 반추했을 때 활짝 웃고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아쉽다 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원래 근무하던 곳에 이동 없이 조금 더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반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 정말로 발령을 받아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그단스크에서 품은 생각이 스친다. 언젠가, 다시금 그단스크에 가게 됐을 때 '왜 여길 다시 왔냐'는 질문에 아주 오래될 대답이 지금부터 준비될 것만 같다. 웃으며 답할 수 있길, 그리고 그땐 이 글이 설명이 되길 바란다.



그단스크에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 귀국 편도 바르샤바를 경유해 인천으로 가는 비행 편을 끊어뒀었다. 그리고 그단스크를 떠나던 그날 아침. 공항에서 짐을 부치면서, 알면서도 승무원에게 확인차 물었다.


"Can I find my luggage in Incheon?"

그녀는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Of course!"



내 짐은 이제 인천으로 간다.

짐도, 오래 준비될 대답도 그곳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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