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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Jan 14. 2024

하차벨이 켜진다

시절인연과의 이별

스물 다섯 여름, 집을 떠나 타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고향인 대구에 비해 작고 조용한 소도시였던 그곳의 삶이 조금 답답했다. 갑갑한 만큼 그곳에 있는 동안 최대한의 자원과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걸음으로 조금이나마 퇴근 후의 삶을 즐기고자 부단히 애쓰며 지냈다. 그러다 이제 막 여유를 갖고 일상이 안정이 됐다 싶을 즈음, 나는 나의 고향인 대구로 발령을 받았다. 그곳에서 맞은 세 번째 여름을 뒤로하고.


모두들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니, 마냥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내가 그곳에 묻혀 둔, 숨겨 둔 정이 많았다는 것을. 떠날 무렵에 알게 되었다. 3년의 시간은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사실 무서웠다. 눈앞에 다가온 이별이, 그리고 새로운 곳이.


그곳에서의 마지막 근무일이 아직도 떠오른다.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끝나지 않는 배웅을 건네는 동안 감정을 애써 추슬러야 했다. 괜찮은 척, 씩씩한 척, 무던한 척. 그렇게 인사를 끝내고, 가장 엄마처럼 의지했던 선배가 나를 터미널로 데려다주겠다 했다. 그리고 터미널에 도착해, 그녀는 매표소 창구로 갔다. 마지막 가는 버스표 끊어주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 표를 건네던 그녀와, 남들이 보든지 말든지 그 작고 남루한 버스 터미널 안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다시 못 볼 사이도 아닌데,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건지. 아마 그곳에 근무하던 시간 동안, 단 둘이서 여직원으로 지냈던 시간이 많았기에 그간 서로에게 크게 의지하고 있었음이라. 대구로 가는 버스에서 내내 숨죽여 울었다. 3년간 어떤 설움이 있었든, 그날의 눈물로 모든 것이 씻겨 내려갈 정도로.



그랬던 그녀가 재작년, 내가 근무하던 곳으로 발령을 받아 왔다. 다시 함께 근무할 수 없을 거란 예상과 달리 이렇게라도 잠시나마 같이 근무할 수 있게 되어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초년생 시절 내가 받았던 응원과 위로처럼 나도 선배가 이곳에 있는 동안 보은하고 싶었다. 최대한 많은 추억을 쌓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은 길지 않았고, 다시금 그녀는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나는 또 걱정이 됐다. 헤어짐의 순간이.


헤어짐을 앞두고 있던 선배의 마지막 근무일,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헤어져야 하는 순간,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사뭇 진지한 통화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있던 선배의 나머지 한 손에 준비한 선물을 후다닥 건네며,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싱거운 이별에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집으로 가는 길에 안도했다. 슬프지 않아서 다행라고. 아련한 사이일수록 정신없이 헤어져야 다는 걸 깨달았다.



외할머니가 요양원에 입소하시던 날, 할머니도 걱정이 되었지만 나는 당신의 엄마를 떠나보내야 하는 엄마가 걱정이었다. 요양원에 도착한 뒤 입소에 관한 한참의 안내가 끝나고, 할머니는 본인이 머무를 방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셔야 했다. 사실 당시 할머니의 체력이 좋지 않아 슬픔에까지 에너지를 쏟을 기력이 없으셨던 것도 있었겠지만, 할머니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그 어떤 감정표현도 없이 묵묵히 방으로 올라가셨다. 할머니께 감사했다. 엄마와 힘들게 헤어주지 않아 주심에. 돌이켜보니, 그날 엄마가 할머니를 보낸 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엄마를 보내준 것이었다. 그 초연함으로.




가끔 특이한 꿈을 꾸면, 눈을 뜸과 동시에 꿈 해몽을 검색해 본다. 얼마 전, 우산을 잃어버리는 꿈을 꿨는데 해몽을 찾아보니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던 사람과 이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꿈은 꿈일 뿐이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생각했건만, 공교롭게도 이번 주 나의 존경하올 부서장님이 곧 보직을 내려놓고 떠나게 되심이 예고됐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직장생활을 하며 처음 뵌, 그리고 앞으론 없을 것 같은 유일무이한 인자한 부서장님이셨기에 언젠가 헤어질 거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닥쳐오니 마음이 허전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시절인연'이라는 표현만큼,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을 잘 설명하는 단어가 없다고 했다. 영원한 동료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었고, 그 와중에 짧게나마 가치관이 맞는 사람과 함께 일하며 희로애락을 나눌 수 있었음에 감사하자고 덧붙였다. 인연에 초연할 수 있는, 만남과 헤어짐에 무던할 수 있는 지혜를 그는 이미 갖고 있는 듯 보였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졌다.



언젠가부터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나'라는 인생을 운행하는 버스기사와 승객들의 만남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만나야만 할 시점에 맞춰 정류장에 도착했기에 그가 탑승을 했고, 그가 내려야 하는 지점에 도착했기에 그가 내려야만 했던 필연적인 관계들. 인생이라는 기나 긴 여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버스에 오르내릴까. 내리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과 제발 좀 내려줬으면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종점을 향해가는 길에 잠시 만난 나의 많은, 그리고 앞으로도 수많을 승객들. 운행하는 동안은 불편함이 없게 모시려고 했는데, 다들 무탈한 여정 중이신. 혹 무탈한 여정이셨을.


한 번 내렸다고 해서 다시 만날 일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도 없을 테고, 조금 더 오래 함께일 거라 믿었던 승객도 뒤돌아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른 사이 내려 텅 빈자리만 남겨져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러나 시절인연의 하차벨이 켜졌어도 내 인생에서 잠시나마 그와 함께 나의 귀한 시간 보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니 초연함으로 다시 출발하려 한다. 뒤돌아볼 새가 없다. 정신없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헤어지고 이번 정류장을 떠난다. 그저 안전하게 모시겠다는 마음과 함께, 다음 손님에 대한 기대를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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