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빵은 그만~!
밥돌이 남편과 빵순이 아내가 만나서 결혼을 했다. 언제나 본인을 스탠다드 코리안 가이라고 말하는 남편과, 학창 시절부터 서양사람 소리를 듣고 자랐던 아내(지금은 코리안 가이 덕분에 많이 한인화 되었다).
아내의 주말 아침은 빵과 커피, 샐러드, 과일 등이었다. 아내는 독립하기 전 본가에서 살 때도 아침은 주로 그렇게 먹었다. 차리는 주체가 엄마라는 점이 달랐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는 양이 1인에서 2인으로 늘 뿐 메뉴의 재선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메뉴를 선정하고 식사를 차리는 일의 담당은 아내이므로 주는 대로 먹어야 할 것이다. 불만이 있는 사람은 본인이 차려먹도록!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침에 밥과 반찬, 국을 차려먹기란 얼마나 거추장스러운가.
결혼 후 몇 개월이 지나자 남편이 말했다.
- 나는 사실 빵을 좋아하지 않아... 아침부터 빵...
아내는 충격을 받고 되물었다.
- 그럼 원래 아침엔 뭘 먹었어?
- 그냥 밥이랑 집에 있는 반찬 아무거나 먹었지.
- 그럼 그 반찬은 누가 해?
- 엄마가 해둔거지...
- 그럼 나보고 (아침부터) 밥이랑 반찬을 차려달라는 거야? 반찬은 누가 해? 먹고 싶은 사람이 해!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 아내가 다다닥 말했다. 빵이랑 커피가 얼마나 간편한데. 속도 안 부대끼고.
- 그러니까 내가 주는 대로 먹잖아... 그런데 아침에 빵을 먹는 건 원래 익숙하지 않았어.
해결책이 없는 이야기를 왜 하는 거지? 우리는 맞벌이 부부다. 아내는 한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반찬을 가끔 하긴 하지만 남편을 위해서일 뿐이다. 하지만 냉장고에 상시 반찬이 있게 할 수 있는 능력은 못된다. 그러니까 (스스로 요리하지 않을거라면) 주는 대로 먹엇!
생각해 보면 아침뿐만 아니라 점심도, 저녁도, 남편이 메뉴 고민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지 의문이다. 틈만 나면 배달을 외치고, 대충 냉장고에서 꺼내먹으면 되지,라고 말하는 남편. 그냥 대충 밥이랑 반찬을 꺼내먹자고? 반찬은 어디서 나냐고 물으면 잠깐 멈칫하고선 사 먹자고 한다. 사 먹는 것도 하루이틀이겠지, 매일 같이 반찬 사다 놓고 먹으면 차라리 배달이 더 저렴할 지경이다. 그리고 반찬가게는 왠지 간이 세고 자극적이다. 파는 거니까 어쩔 수 없다.
식사를 담당하는 사람이 남편이든 아내든 간에, 밥상 차리는 일이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인지 상대방은 도통 이해해 주지를 않는다. 한 가정에서 식사를 담당하는 사람은 '요리'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낭비하지 않고 식재료를 소비할 수 있을지 계획을 짠 후 적당량으로 식재료를 구매하는 것부터, 식재료의 유통기한, 식구들의 입맛과 기분, 그리고 영양까지 신경 써야 한다. 지금이야 두 사람이니 어떻게든 '대충' 먹고, 배달도 아주 자주 시켜먹고, 영양 같은 건 뒷전인데다가 식재료가 남아서 썩혀버리기도 하지만 나중에 아이가 있어도, 그때도 배달시켜 먹고 반찬 사 먹자고 할 건가? 어쩌다 한번 반찬을 하거나 친정집에서 반찬을 받아와도, 집에서 저녁만 먹다 보니 상해서 버리는 일도 많다. 특히 엄마한테 받아온 반찬이 상하면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 한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점심과 저녁은 그런대로 반찬이 필요 없는 메인 메뉴를 하나 해서 먹지만 '밥과 반찬을' 그것도 '아침에' 나에게 요구하는 건 무리야!
살림 좀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해하겠지만 한식이 제일 어렵다. 덮밥류나 메인요리를 먹는 것이 아니라면 반찬은 김치를 포함해 적어도 세 가지는 되어야 하고, 찌개나 국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벌써 해야 하는 일이 몇 개야, 밥 안쳐야지, 반찬 두 개는 해야지, 찌개(혹은 국) 끓여야지... 설거지도 몇 배로 늘어난다. 반찬은 해놓고 먹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편은 자긴 찌개나 국은 필요 없다고 하는데, 반찬도 그저 그런데 찌개나 국도 없으면 그냥 김치랑 밥 먹는 것과 뭐가 다를까.(김치와 밥만이라도 괜찮다면야…) 가끔 아내는 본인이 한식보다 양식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다행이다. 국수보다는 파스타가, 찌개보다는 스프가 훨씬 쉬우면서 간편하다. 요리 초보인 아내에겐 양식은 단순한 재료들로 재료들이 어우러진 맛을 내는 느낌이라면, 한식은 여러 가지 재료들로 복합적이고 깊은 맛을 내는 느낌이다. 양식은 굽기와 튀기기 같은 비교적 기본적이고 간단한 프로세스이지만, 한식은 무치기, 볶기 등의 복잡한 프로세스를 요한다. 그렇다 보니 어설퍼도 양식은 그런저런 맛이 나는 반면, 어설픈 한식은 '깊은 맛'이 없다.
그래도 오늘은 남편을 위해 한식을 해본다. 물론 아침은 아니고 저녁으로. 맨밥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는 들기름을 넣고 곤드레나물밥을 하고, 구이용 부채살을 잔뜩 넣은 호화판 미역국을 끓였다. 반찬은 엄마가 주신 김치와 마늘장아찌.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사실 아내도 한식을 한 날이면 뿌듯하다. 영양도 챙기고, 남편도 더 맛있게 먹어주는 것 같고, 맛있기도 하고. 그렇지만 역시 요리 초보인 아내에게 주말 아침 한식은 힘에 부친 일이다.
그러니 주말엔 아침만이라도 간단하게 빵을 먹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