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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아이 May 07. 2024

나는 읽었고 공간이 남았다

행간을 걷다





꽁꽁 언 시체라도 상관없었다. 너와 나처럼 잘못된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세상엔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가지고 있던 속내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졌을 때 현실에선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창피하다. 남에게 보이는 모습이 어떨지 걱정하는 것이 1차적이라면 이런 속내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기 때문에 아무도 보지 않을 일기장에서조차 적나라한 말을 쓰기가 꺼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솔은 [행간을 걷다]의 주인공 남자를 이용해 찌질한 내면을 토해내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는 이 이야기를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모티브로 쓴 소설이 아닐까 예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뇌졸중 발병 이후 갑자기 가능하게 된 프랑스어 구사능력이라던지 랭보의 시 구절이 인용된다던지 카론(저승의 뱃사공)의 거룻배 위에서 모처럼 편안한 잠을 잤다고 말하는 대목이 랭보의 시집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두 개로 분열된 자아를 '우리'라 지칭하며 나와 너(결국은 하나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주인공 남자의 삶은 충분히 지옥으로 보였다. 부모와 재산과 학교 졸업장이 없는 열두 살짜리 소년의 삶, 아내의 불륜을 지켜보아야 하는 삶이 그러했고 과거로부터 도망친 삶, 선의가 악의가 되는 삶이 그러했다.

그렇다면 작가가 말하는 행간은 삶=지옥이었을까.







 너와 내게 날개가 생겨난다면 뼈가 녹아내릴 때까지 허공을 가로지르다가 운명의 끝에 도달했을 때 지상의 소멸점을 향해 전속력으로 낙하하면서 젖은 육체를 잘게 찢어 사방으로 흩뿌릴 것이다. 회환이나 환멸은 없다. 살점 한 조각 붙어 있지 않은 영혼이 윤회의 사슬을 끊고 돌 속에 영원히 갇히길 간절히 소망할 따름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카로스의 날개가 떠오르는 문장이다. 남자의 소망은 욕심처럼 보이다가도 처연하게 느껴진다. 뒷맛이 씁쓸한 소망이다. 돌 속에 영원히 갇히고 싶단 말은 속박의 말일까 자유의 말일까. 남자의 과거를 알게 되면 윤회의 사슬을 끊고 싶다는 말이 지옥에 가고 싶지 않다는 의미인 만큼 욕심으로 보이지만 남자가 지녔던 의도와 흐름과 비운에 탄식하다 보면 욕심만은 아닌 측은지심으로 지켜보게 된다. 남자에게 죽음은 결코 지옥이 아닌, 오히려 삶으로부터 죽음으로 이동하길 갈망하는 행간의 혼란 속에서의 소망이었을까. 


 지금의 삶에서 죽음을 바라보며 간절히 소망한다면 나는 어떤 소망을 간절히 원할까 생각해 본다......

라고 적고 하염없이 깜빡이는 커서를 수분째 바라보고 있다. 죽음은 언제나 통제영역 밖의 일이지만 통제감을 행사하고 싶은 '대상'이 된다. 죽음의 입장은 죽은 이후에나 알 수 있을 거란 상상만으로 존재하기에 결국 모든 것이 허상이기에 모든 상상은 무의미로 돌아간다. 이런 생각을 무한반복 하다 보면 결국은 진부하고 뻔하게 지금에 충실할 수밖에 별도리 있나. 하며 끌끌 대게 된다. 뭔가 입맛이 쓰지만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갑자기 여름을 폭격 맞았다가 만끽한 3일 동안의 쌀쌀함과 내리치는 비는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충실하게끔 만들어주는 마법 같지만 사실인 진실이 내재되어있다. 여름과 내외하는 나는 곧 지나가고야 말 순간의 날씨가 이토록 아쉽고 고마울 수가 없다.







 문장, 문단, 서사의 차원까지 모조리 양자의 비밀을 품은 이 소설은 "진리는 문자에 담기지 않고 여백에 담기"며 "그 안에서 쉴 새 없이 진실이 요동"친다는 책의 의미를 현시한다. 다시 말해 문자보다는 여백이, 여백보다는 그 안에 담긴 운동성이 진리에 더 가깝겠다는 것이다.


 다 읽은 후에도 의미는 뚜렷하지 않다. 결말에서 물음표를 던져버리고 떠난 작가에게 정답을 내놓아달라 닦달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어떻게든 이 소설의 마침표를 찍고 싶은 마음에 뒤에 실린 전청림의 작품해설을 허겁지겁 읽었으나 양자역학 운운하는 해설에 오히려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는 결말을 낳았다. 그렇게 읽고 또 읽다가 느낌으로 감각한 결말에 어울릴 문장을 점찍은 것이 위의 문장이다.

처음 읽었을 때 이 문장이 해석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의 분위기, 줄 그은 문장들, 끄적여놓은 내 글씨들을 보고 또 보면서 이것보다 명쾌한 해설을 하긴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문자에 담기지 않고 여백에 담기는 이 소설은 소설의 독자수보다도 큰 운동성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꽁꽁 언 시체라도 상관없었다. 너와 나처럼 잘못된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세상엔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마지막에 와서야 이 말이 남자의 유언이었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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