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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렉싱턴 Jan 26. 2016

공연히 엮이고 싶지 않은데요

문유석,<개인주의자 선언>

채널예스에 나온 인터뷰를 읽고 책이 나온 걸 알았습니다. 꽤 읽고 싶어 졌습니다. 언제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저자의 페이스북을  팔로우하고 있더군요. 왠지 낯익은 느낌은 그것 때문이었나 봅니다.


굳이 헬조선이니, 수저 계급론이니 떠도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한국 사회는 꽤 팍팍한 사회입니다. 좁은 땅에 오천만 명 넘는 사람들이 극심한 경쟁 속에 살아갑니다. 경쟁이 심한 것만이 아닙니다. 각자의 삶을 꼼꼼히 서로 비교하고, 평가하고, 평가받습니다. 모두가 동일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너는 왜 이렇게 살지 않니?”라는 질문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군대 빨리 다녀와야지. 별 계획 없으면 빨리 다녀와.”

“취업 준비 잘 돼가니? 스펙은 다 만들었니? 취업하려면 일단 토익 점수부터 만들어.”

“결혼자금은 모았어? 빨리 결혼해서 애 낳아야 나중에 은퇴하면 편하지. 학자금은 어쩌려고?”

“차 샀네? 근데 왜 이거 샀어? 디자인은 예쁜데, 아기 생각하면 좀 큰 차 사지.”

“애기 영어유치원 안 보내? 지금부터 준비 안 하면 뒤처질 텐데.”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쉬워요. 매뉴얼이 있거든요. 몇 살에 무엇을 해야 할지 전부 나와 있습니다. 남들이 미리 해 놓은 대로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꽤 괜찮고 편한 일입니다. 빠르고 효율적이기도 하고요. 대학은 어느 정도 가서, 몇 살에 이러한 일을 하고, 재테크는 이렇게, 결혼은 이 정도 사람 만나, 결혼식은 어디서 어느 정도 규모로, 집은 어디서. 단지 거기서 벗어나려면 꽤 큰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네!” 등의 코멘트를 받거나 그게 아니면 “너 금수저냐?” 같은 비아냥거림을 듣게 마련입니다.


근데 삶이란 매뉴얼대로 되지 않기에 슬퍼지게 마련입니다. 또 애초에 매뉴얼대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묘한 두려움을 안기기도 합니다. 여기 이대로 따라가도 되는 거야? 같은 것 말이죠. 슬며시 두려움이 생긴 사람들은 ‘매뉴얼대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겐 각각 다른 꿈과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해낸 한국인에겐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목적지에 닿는 법’이 단 하나의 진리처럼, 매뉴얼처럼 인식되어 왔나 봅니다. 이제야 조금씩 ‘다른 매뉴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요. 그리고 남이 정해준 삶이 아니라 내가 내 생각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도, 힘겹지만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말하기엔 쉽지만 한국에선 참 어려웠던 말이 아니었나 싶네요.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삶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찰되고, 어김없이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코멘트를 받습니다. 저는 제 삶을 관찰당하고  평가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조금 멀리 돌아가더라도 제가 만들어낸 삶의 궤적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집단주의가 강한 사회에서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다른 사람과 엮이지 않을 수 있을까? 작은 위로라도 받고 싶어서(그리고 혹시라도 해답이 있을까 봐) 펼쳐 든 게 이 책입니다. 저는 해답을 얻었을까요? 글쎄요,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개인주의자로 살고자 한다면, 개인주의자가 살 만한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공동체 연대’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책 279쪽)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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