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울증이라는 거 뒤에 숨었었어요. 회사를 휴직할 때도 부모님께 휴직이유를 말하면서 우울증이래 하고 그 핑계를 댄 거죠.. 근데 지금도 그런 거 같아요. 병명코드를 물어봤을 때, 아직 확실하게 말할 순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하고 말해주신 병명에 저는 계속 갇혀서 지냈어요.
저는 천만 원을 모아본 적이 없어요. 통장에 100만 원도 없죠. 근데 이런 게 혹시 그 병명 때문이 아닌가 하면서 제가 짜깁기를 해서 생각하더라고요.
그건 정말 연관이 될 수도 있어요
(...)
그리고 우울증 뒤에 숨으면 좀 어때요? 진단서 가짜로 발급받아서 회사 그만둔 것도 아니고요.
정말 우울해서 회사 그만두시는 분들도 정말로 많아요. 그리고 실제로 그때 우울하셨어요
(진료 4회 차, 정답 같던 위로의 말)
2024년 1월 17일 아무래도 이제 다시 정신과를 가야겠다는 생각에 야간진료를 잡았다. 이번에 예약한 정신과는 삼성역에 위치한 곳이라 현재 파견 나가고 있는 회사와 나름 가까워서 만족스러웠다. 전에 다니던 정신과를 다시 가려다가 약을 모아서 먹었던 것을 알고 있어서 가기가 좀 그랬다.
이번에 정신과를 가게 된 이유는 자기 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으로 찾아갔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는 1) 자기 전, 2) 하루가 바빠서 집에 늦게 들어와서 혼자 쉴 시간이 부족할 때, 3) 해야 할 일을 하기 귀찮고 싫을 때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처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습관처럼 내게 남아 있는 것이었다. 죽고 싶지 않아도 자해하고 싶지 않아도 습관처럼 생각한다. 마치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나오는 말처럼.
습관처럼 하는 생각을 멈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조언을 구해야 했다. 그리고 현재 내 상태를 알아야 했다.
첫 방문하고 나서 벌써 4회 차 진료이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약은 계속해서 맞춰나가고 있으며 병명코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병명코드를 알아야 경기도정신건강센터에서 지원하는 청년마인드케어를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병명코드가 알고 싶었고 의사는 확실한 병명은 아니지만 지금 굳이 말을 해야 한다면 '상세불명의 양극성장애'라고 말했다.
상담을 해보니 기분장애에 속하지만 단순히 우울증으로만 볼 수 없으며 만성이 된 것 같고 양극성장애라고 말하기엔 기분이 극적으로 좋아서 뜨거나 급격히 가라앉진 않고 어딘가에 걸쳐져 있는 거 같아 상세불명의 상태인 거 같다고 한다. 감정기복이 예민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말을 들어서 나는 계속 그 단어에 갇혀있었다.
갇혀있었다는 건 내가 기분이 갑자기 좋을 때, '어? 혹시 내가 그거 때문에?'
내가 돈을 물 쓰듯이 쓸 때, '내가 지금까지 천만 원도 모으지 못하고 이렇게 돈을 물 쓰듯이 쓰는 게 혹시?'
이렇게 내 행동들이 알고 보니 그것 때문이었던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갇혔었다.
의사는 그랬다. 병명코드에 갇히지 말라고.
정신과에서 병명코드는 처음 왔을 때와 나중이 달라질 수 있으며 한 번의 상담으로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앞서 내가 말했던 행동들이 상세불명의 양극성장애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아직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이번에는 뒤에 숨지 말고 잘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기분을 조절하는 약을 먹고 있으니까 앞으로 평온한 날들이 가득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