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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에깃들어 Nov 13. 2018

3. 나는 불이 되었다.

30일 글쓰기

불에 타지 않는 건 불뿐이었다. 그래서 불이 되었다. 살기 위해 스스로 타올랐고, 지치면 주변을 태웠다. 식성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주로 마르고 연약한 것들을 집어삼켰다. 비슷한 온도를 가진 이들과 친했고, 그렇지 않을 땐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더운 날엔 불씨로 숨었다가 가을바람을 맞으면 화기를 더했다. 비가 오면 고요한 촛불로 흔들리다가, 슬며시 분위기에 녹아내렸다. 겨울날엔 인기가 많았지만 원망도 많았다. 큰 불이 되려다가 잿더미로 사라지느니 작은 화로에 온기로 남는 게 좋았다. 도란도란 적당한 거리가 좋았다. 꿈속에선 성냥팔이 소녀의 얼굴을 비추기도 하고 오줌싸개들의 장난감이 되기도 했다. 시한부 담뱃불이 되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했지만, 가끔은 진짜 꽃이 되기도 했다. 불꽃. 하늘로 튀어올랐다. 펑펑펑. 밤하늘을 수놓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동자에 비쳤다. 불이 된 후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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