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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에깃들어 Nov 14. 2018

4. 나는 공기가 되었다.

30일 글쓰기

투명인간과 견줄 만하지 않은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참 설레는 일이었다. 처음엔 그랬다. 날씨의 기분을 따라 마음껏 휩쓸려 다녔다. 태양의 시선이 내겐 머물지 않아 눈이 부실일도 없었고, 슬픈 비가 와도 쉽게 젖어들지 않아서 늘 자유로웠다. 가고 싶은 곳을 찾아 필요한 만큼 머물다 떠나면 그만이었다. 세찬 바람이 되어 빌딩 사이로 빠르게 지나가며, 바쁜 사람들의 옷자락을 들추는 재미가 있었고, 겨울 부둣가 앞에서 눈을 감고 두 팔 벌린 사람들의 가슴에 파고드는 것도 낭만도 있었다. 모든 것이 내키는 대로였고, 나는 한없이 “자유”로웠다. 물론, 가끔은 집이 그리웠고, 그래서 창문이 열린 틈을 타서 조용히 집안으로 스며들기도 했다. 집안에는 재미난 것들이 많았다. 청소기에서 뒹굴기도 하고, 가습기에 몸을 적시다가, 공기청정기에서 몸을 씻고, 그리고 헤어드라이어에서 몸을 말리곤 했다. 보이지 않는다는 건 참으로 신나는 일이었다. 물론 지독한 외로움이 곧 들이닥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날려 보내는 건 주로 먼지다. 불어와서 싫어하는 건 바람이고, 무서워하는 건 태풍이다. 난 떳떳한 그저 공기이다. PM 2.5 10 이하의 청정한 공기. 적당히 부유하며 이 모든 세상을 감싸는 공기. 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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