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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에깃들어 Nov 18. 2018

8. 나는 눈이 되었다.

30일 글쓰기

원래는 비가 될 운명이었으나, 갑자기 불어온 찬바람에 얼 어부터 올해의 첫눈이 되었다. 적어도 내가 떨어지는 12월의 서울에서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해가 일찍 지기 시작한 오후의 찬바람을 타고 서서히 날았다. 산도 있고, 강도 있고, 많은 건물과 그 사이 길들이 조밀한 도시였다. 저 아래 먼저 길바닥에 떨어진 눈들은 지나가는 차 창에 튕긴 후, 아스팔트 위에서 제일 먼저 녹아 사라졌다. 강물 위로 내린 눈은 깨끗한 물이 되었고, 다리 난간에 걸린 눈은 바람에 날리기까진 아슬아슬 매달려 있었다. 차창에 내린 눈은 와이퍼에 쓸려 한쪽 귀퉁이에 걸렸고, 엔진룸 위에 내린 눈은 제일 먼저 눈물이 되었다. 최악은 염화칼슘이었다지. 닿자마자 소금물이 되어버린. 나는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쓸려가고 있었다. 가능한 오래 아름답게 눈으로 남고 싶었다. 그래 산으로 가자. 훠이훠이. 바람에 날려 남산 위를 지났다. 그런데, 그냥 지나 버렸다. 바로 이어진 도심 하늘. 남산 공원을 걷던 연인들이 반갑게 손짓을 했다. "안녕. 난 눈이라고 해. 손등 위로 내릴게 기다려". 하지만 바람은 도심으로 이어졌다. 남산 순환로를 거쳐 남대문을 지나 덕수궁 위를 날다가 다시 선회를 했다. 빌딩 사이로 부는 바람에 휩쓸리고 난 뒤부터는 정신이 없었다. 이리저리 부딪히고, 휘몰아쳐 내렸다. 그러다가 어느 건물의 창문에 들러붙게 되었다. 한쪽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해서 창문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꾸불꾸불 몸을 녹이며 창안을 쳐다보았다. 추억처럼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시계를 보다가 하늘 보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두워져 가는 창밖의 노란 불빛을 머금고 잠시 마지막으로 반짝였고, 그는 창에 손을 대어 나를 잠시 쳐다보았다. 나는 결국 눈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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