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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에깃들어 Nov 19. 2018

9. 나는 리모컨이 되었다.

30일 글쓰기


9. 나는 리모컨이 되었다.


오늘 주제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진화를 하게 되었다. 일단 머리가 생겼다. 코어텍스-M4의 꽤 똑똑한 머리. 버튼을 누르면 반응도 하고, 눈도 반짝이고, 기억할 줄도 안다. 부모님 세대에는 38KHz 파장으로 뚜뚜뚜 혼자 전달하는 것만 가능했지만, 최근 파란 이빨 기술로 인해서 우리 세대에는 무려 양방향으로 연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4 GHz 대역의 높은 주파수를 쓰다 보니, 시끄런 Wi-Fi랑도 싸우고, 머리가 지끈거리긴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공기를 통해서 뭔가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물론 문제는 좀 있다. 연결할 짝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내가 주로 먼저 연결을 요청하긴 하지만, 상대도 나를 쳐다봐야 한다. 그리고 네고를 통해서 이런저런 조건을 다 맞추어야 연결이 성사가 된다. 중간에 요청하는 것들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잘못된 내용을 전달하면 가치없이 차이고 만다. 다시 연결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 제대로 상황이 꼬이면 죽기 전까지는 재결합이 불가능하다. (아 죽는 것은 간단하다. 바닥에 떨어져 배를 열고, 배터리를 튕겨내기만 하면 된다. 수백 미리 초 이내에 전압강하로 즉사한다. 1.8v cut off.) 물론 다시 사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사지만 멀쩡하면 주로 다시 배터리가 채워졌다. v3.3까지 빠방 하게 배를 채우면, 버튼 뒤에 불빛도 반짝이고, 이어폰 연결에 노래도 틀어주고, 팔팔 날아다닌다. 물로 가끔 너무 멀리 날아가서 소파에 처박히기도 하지만, Android FIND ME프로파일은 나를 깨워 버저를 울렸다. 1K에서 2K 사이의 고음 삐리리~. 늘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주로 잠을 잔다. 피도 흐르지 않고, 머리도 깨지 않는다. 그저 심장만 뛰며 내가 여기 있어요 라며 뻐끔뻐금 신호를 보낸다. 그런 느슨한 연결은 주로 오래간다. 알카라인 AA두개로 18개월을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곧 출시되는 블루투스 구글 리모컨이다. 만삭의 어미는 산고를 겪고 있고, 나는 뱃속에서 숨 쉴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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