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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에깃들어 Nov 25. 2018

15. 나는 사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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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나는 사랑이 되었다.

누구냐고 묻는 물음에 사랑이라고 답했다. 미친놈이라며 지나가는 취객이 있었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았고, 나는 주로 밤과 노래와 교회와 모텔과 글과 시속에 울려퍼졌다. 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취하기도 했고, 울기도했다. 너무 달달해서 느끼할 지경이다가고 짠물에 녹아 매달리기도 했고, 웃다가 지쳐서 배꼽이 달아나다가도 애써 침착하며 주변을 돌보곤 했다. 동명이인이 많은 까닭에, 쉴새없이 불러대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곤했지만, 그 부름이 정작 내가 아닌 경우도 많았다. “미움아, 너를 부르자나, 질투야, 너 말하는 거 같은데? 어? 나보고 소리를 지르라고? 난 그런거 못해, 사랑이라고...폭력과는 거리가 멀어.”

나에겐 가장 큰 숙제가 무엇이냐면, 내가 누군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하긴, 이건 인간일 적에도 고민하던 것이지만... 만약 내가 불혹을 넘겨 장수했더라면, 알 수도 있었을까? 좀 더 익은 후에 떨어졌더라면? 오늘은 일요일, 부질없는 옛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교회를 다녀왔더니 귀가 따갑다. 그 놈의 사랑. 제발 그만 불러대라고. 나는 고막이 선천적으로 약하다. 자꾸 불러대면 죽는다고.  

나는 주로 바람을 타고 난다. 봄 바람. 해변에서는 조금 더 관능적이다. 여름의 일탈. 가을엔 주로 아래로 아래로 그들의 시선을 따라 내린다. 그리고 쌓인다. 이젠 겨울. 사랑도 온도에 민감하다. 따뜻한 아랫목을 찾아 해멘다. 전기장판 정도는 돼야 딱 달라붙을 수 있다. 이쯤 되면, 나는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다. 내가 사랑인지 사랑이 너인지. “친구를 위해 죽으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 “그중에 제일은...”, “가장 큰 계명”,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눈물의 씨앗”,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 “사랑이 죽었다”...

사랑도 가끔은 취한다. 아니 어쩌면 맨날일수도. 이 감정은 원래 취기와 비슷하다, 이기적 유전자를 억누르는 힘, 아름다운 선율, 조화, 조정. 오늘도 바람에 취기가 스치운다.

* 난 그저 많은 사랑 중의 하나의 사랑이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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