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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Jun 07. 2022

나는야…

자기소개

글을 쓰고 싶어 글쓰기 모임을 신청했다. 그렇다고 쓰고 싶은 주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상 독자는 오직 나 또는 나를 모르는 불특정인이었으면 좋겠다. 그저 인적이 드문 옛 골목에 그럴듯한 낙서로 나를 몰래 남겨 두고 싶은 마음이다. 까마득하게 잊고 살다가 그 골목길에 우연히 다시 들어섰을 때 아 맞아 그랬지. 하며 그때 나의 어설픈 젊음과 진지한 천진난만함에 킥킥거리고 싶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그리워서 뭐라도 쓴다.


7시 즈음 눈이 떠져서 일어난다. 침실은 아침마다 햇살이 내 눈 커플의 두께를 비웃듯 각막을 찔러대서 안 일어나고 배길 수 없는 구조다. 그래도 어떻게든 더 누워있겠다고 이불을 정수리 끝까지 끌어올려 한 시간 정도 버티다가 몸에 좀이 쑤셔 8시에 침대 밖을 나온다. 남편은 더 늦게까지 자는 편이다. 잠귀가 밝고 예민한 편이라 내가 조금만 뒤척이면 깨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누워있기를 참 잘한다. 그러다가 다시 잠들기도 하고 말이다. 따뜻하게 자는 걸 좋아해서 이불 두 개를 덮고 통통한 볼이 발그래해져서 자는 모습이 나는 그렇게 귀엽다. 화장실에 갔다가 양치를 하고 찻물을 끓인다. 차를 두 컵 우려 내 식혀 두고 거실 작은 탁자에 앉는다.


지금 우리가 임시 거처로 지내고 있는 이 집은 시어머니께서 예전에 사셨던, 지금은 화초 키우는 집으로 쓰시는 작은 빌라다. 그래서 눈을 두는 어디든 화초가 있다. 물 한 번 주려고 하면 2L 페트병 3개를 끊임없이 돌려가며 족히 30분은 넘게 줘야 할 정도로 많다. 봄이 되니 꽃이 폈다. 당연하지만 매번 감격스럽다. 창문을 여니 베란다에 고여있던 꽃향기가 밀려들어온다. 진한 향기에 취해 신선이라도 된 기분으로 곧은 자세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9시면 남편이 먹어야 하는 약이 있다. 아까 살짝 식혀 둔 차 한 잔과 약을 침실로 가져다주고 나는 다시 탁자로 돌아온다. 보통 10시까지는 글자와의 시간을 진하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나는 엉덩이만 컸지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느끼기엔 내 집중력이나 인내력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그래서 어떻게든 비비고 앉아 있어 보려고 갖가지 방법으로 노력한다. 예를 들면, 나는 (자의로) 책을 한 번에 한 권을 끝까지 읽어내 본 적이 많이 없다. 부족한 집중력과 인내력 대신 욕심인지 호기심인지가 더 많아 한 번에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세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 지금도 내 탁자에는 세 권의 책이 펼쳐져 있다. 이러다 보면 재미있는 책은 끝까지 다 읽기도 하지만 흥미가 떨어져서 책갈피가 끼워져 있는 그대로 방치되는 책도 많다. 이런 나의 깃털처럼 가벼운 독서 습관을 보완하기 위해 묵직한 독서모임 같은 것에 참여한다. 그러면 기한 내에 강제로 끝까지 읽어야 하기 때문에 좋다. 일주일에 한 권은 무조건 진득하게 읽게 되고(독후감을 써야 하니까!), 다른 책들은 오고 가며 훌훌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글 쓰기를 좋아하고 꽤나 잘 썼었지만 점점 써야 하는 것만 쓰며 살다 보니 이 지경이 됐다. 혼자서는 야심 차게 앉아 타자를 두드리다가도 여기저기 재밌는 것들이 눈에 보이면 홀라당 마음을 빼았겨서 길게 쓰지 못한다. 누가 글을 쓰라고 머리를 한 대 쥐어 박고 지키고 서 있어야 겨우겨우 뭐라도 쓸 것 같은 나를 보며 사라진 주체성이 안타깝다가도 이렇게라도 써보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주체성 충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인이라서 전생을 믿진 않지만 우스갯소리로 혹시 나는 전생에 엄한 집안에서 엉덩이가 가벼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풍류를 즐겼던 참하지 못한 선비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책 읽기, 글쓰기, 마시기 같은 것들이다. 21살 즈음 처음 취미를 가져보고자 작은 미러리스 카메라를 하나 샀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으려니 관찰을 해야 했다. 내 주위에 찍을만한 것들이 있는지. 그러다 보니 종종 뛰어다니던 발걸음이 느려졌고 땅만 보던 시야가 위아래 양옆 뒤까지 넓어졌다. 이게 여유라는 거구나 처음 깨달았던 때였다. 시간과 돈이 너무 많아 여유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내 마음과 몸의 방향을 순간에 지긋이 인 치고 아름답다 걸어두는 것이 여유였다.


잠깐 멈춰 하늘이 예쁘다 꽃 향이 싱그럽다 감상한다고 해서 해야 할 일들을 못하거나 늦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사진을 찍어 찰나를 아름답게 남겼고, 책을 읽으며 찰나를 길게 늘어뜨려 그 충만한 아름다움을 즐겼다. 그러다 흥이 오르면 노래하듯 글을 썼다. 노래방에서 노래 부를 땐 잘 부르는 것 같아도 녹음한 것을 들어보면 형편없는 것처럼, 내 글도 그렇지만 나는 그 형편없는 내 글이 좋았다.


오늘도 나는 글쓰기 모임의 마감을 지키기 위해 뭐라도 쓰려고 거실 탁자에 노트북을 켜고 앉았다. 다들 카톡방에서 글감에 대해 이야기하시는데, 나는 아직 글감이라고 할 것을 정하지 못해서 그냥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행위를 하고 있을 뿐이다. 탁자를 베란다 창문 쪽으로 당겨 놓고 창문을 열었다. 새소리도 들리고 차 소리도 들리고, 이젠 꽃이 많이 져서 꽃 향기는 희미하다. 한 문단 정도 쓰고 남편과 강원도에서 온 쑥떡을 구워 먹었다. 그리고 어제 산 포켓몬 게임을 좀 했다. 평생 게임을 해본 적이 없는데, 남편은 게임을 좋아하고 잘한다. 그래서 나도 한 번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어설픈 버튼 누르기 실력이라 게임 자체가 재밌진 않지만 이 포켓몬 귀엽다, 잘하네 하는 남편이랑 함께한다는 것이 즐겁다. 또 한 문단 정도 쓰고 얼마 전 대전에 놀러 가서 찍은 영상들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렸다. 내 유튜브의 정체성은 안드로메다행이다.


꼭 모두가 일관성 있고 상품성 있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합리화 일진 몰라도 나는 그냥 이렇게 사는 것이 즐겁다. 오늘 저녁에는 다례 수업에 갈 것이다. 무엇 때문에 비싼 돈 내고 시간을 내서 다례를 배우냐고 하면 대외적으로 할 대답을 몇 가지 준비해두긴 했지만, 나는 그냥 그 찻집의 분위기에서 예를 갖춰 절을 하고 차를 우리고 따르고 마시는 것이 즐겁다. 쓸데없어 보이는 것을 사랑하고 정성스럽게 다룰 때 오는 묘한 쾌감이 있달까. 책 읽기도, 글쓰기도, 다례도 그래서 좋아한다.


그런 책을 누가 읽어, 이런 글을 누가 써, 누가 그렇게까지 차를 마셔, 에서 ‘누가’를 담당하는 나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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