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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Jun 24. 2022

당신의 음미력은 얼마나 되나요?

없던 오늘(유병욱) /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김서령)

책 속 문장들을 수집하길 즐긴다. 수집하는 이유는 이후 쓸모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소유욕이나 약간의 저장 강박 때문이다. 책을 써주는 천재들이 참 고맙다. 그들의 작품들을 고작 몇만 원에 판매해주고 심지어 빌려 읽을 수도 있으니 얼마나 감지덕지한가. 남편이 책을 읽으며 뭘 그렇게 쓰냐고 물어서 문장수집을 한다고 했다. 문장을 수집하기도 하냐며 신기해하더니 ‘그럼 나는 포켓몬을 수집할게!’하고 익살스럽게 외치며 게임기를 집어 든다. 뭐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수집한다는 것은 꽤나 부자가 된 듯 두둑한 기분이다.


가령 ‘위무하다 : 위로하고 어루어만져 달래다’

같은,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라던가,

‘현학적인지 않으며 생생한 보통 사람의 말’

같은 굉장히 현학적인 문장 같은 것들이 끈적하게 다가온다.


나에게 문장 수집과 글쓰기는 누구에게 뭔가를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듯 아름다운 글을 읽고 감탄하며, 예쁜 조약돌처럼 단어가 예뻐서 모으고 이리저리 나열해 보며 좋아하는, 그런 언더그라운드의 탐닉자 정도다.


장기하의 신곡 ‘부럽지가 않어’를 거의 외울 정도로 들었다. 나는 전혀 부럽지가 않어, 라고 말하며 세상 해탈한 사람처럼 말하지만 그가 뮤직비디오를 통해 말했듯, 시선은 누군가에게 정확히 고정되어 있고, 아무도 묻지 않았음에도 부럽지가 않어! 라고 굳이 이야기하는 그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삐져나오는 부러움의 절규가 들린다.


그렇다. 사실 나는 겁나게 부럽다. 아무리 예쁜 문장이어도 남의 문장을 수집하는 수집가로만 머물기보단 나도 나의 문장을 예쁘게 만들어 내보이는 예술가이고 싶은 그런 마음이 내 안에 가득하다. 내가 빚어내는 글들은 끊임없이 초연한 척하는데 그것은 그만큼 내가 초연하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바로 윗 문단에서 내 글쓰기의 목적이 누구에게 뭔가를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공개적인 곳에 열심히 글을 짜내며 심사숙고하여 발행해대는 것은 '누구라도 내가 뭘 전달하려는지 관심 가져줘!' 하는 절규일 것이고, 더 솔직하게는 '내 문장도 어여뻤으면 좋겠어'하는 웅얼거림이다. 


<없던 오늘_유병욱>에서 ‘음미력’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사전적으로 음미는 맛을 감상하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에선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 우물우물 씹고 꿀꺽 삼켜대는 것과 다르게 내 입에 들어오는 그 음식을 코로 눈으로 귀로 혀로 집중해 감상하며 그 느낌을 인식하고 더 나아가 표현하는 것이 음미라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이런 음미에 ‘힘’을 뜻하는 '력'을 붙였다. ‘음미하는 힘’, ‘음미할 수 있는 힘’이다.


책에서 “음미는, 지금 내게 없거나, 곧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들 앞에서 자주 시작된다. ‘지금 이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구나’에서 시작된다.”라고 했다.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 사회는 당연하지 않은 당연한 것들을 음미하고자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코로나 이전에 여러 번 이별을 겪으며 음미를 시작했고, 서서히 음미력을 키우고 있었다.


나는 미얀마에 세 번 다녀왔다. 그리고 또 미얀마에 가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 총 네 번의 미얀마행은 연결된 일정이 아니었다. 매번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뒤숭숭한 마음으로 그간 일궈놓은 일상을 정리해야 했다. 한국에 돌아와 미얀마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면, 그곳에서는 당연했던 것들이 한국에선 당연하지 못했다.

이십 대 초반의 나는 꽤나 업무 중심적이고 목표 중심적인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떠나온 미얀마에서의 일상을 돌아보면 아쉬운 것은 늘 ‘일을 더 열심히 할 걸’ 같은 게 아니었다. ‘그 사람들에게 더 친절할걸.’ ‘더 자주 산책할걸.’ ‘더 기록해둘걸’ ‘그 순간에 좀 더 머물러 있을걸’ 같은, 일상 음미력 부족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엄마가 내 입에 깨소금 국수 한 오라기를 넣어준다. 부드럽다. 고소하다! 나는 눈을 뜨지도 않고 그 맑고 히수무레하고 수수하고 슴슴하고 조용하고 의젓하고 살뜰한 것을 씹는다. 그리고 꿀컥 삼킨다.”


시인 백석의 <국수>에서 따온 말이라는 김서령 작가의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50p에 나온 문단이다. 어린 시절 잠결에 먹었던 국수 한 입을 저렇게까지 음미할 수 있다니. 그녀의 음미력은 100이면 100 이리라. 경지에 오른 사람을 보면 질투보단 동경이 더 앞선다. 질투도 내가 겨뤄볼 만하다는 판단이 의식/무의식 속에 있을 때 스멀스멀 기지개를 켜는 법이다.

이 책은 문장 수집이 아니라 문단 수집을, 아니 책 전체를 수집을 하고 싶은 책이다. 한 문장 한 문장 너무 어여쁘고 섬세하고 강력해서 빨리빨리 쉽게 읽어 넘기고 싶지 않다. 줄어드는 페이지들이 아까워 심장이 동동 뛴다.


유병욱 씨는 음미력도 훈련과 노력을 통해 키워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탁월한 음미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있겠지만, 제 아무리 날카로웠던 것도 갈고닦지 않으면 무뎌지는 것이 힘의 원리다. 날카롭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갈아내야 한다. 별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을 꼭꼭 씹어 음미하며 꾹꾹 기록하는 지금 이런 시간도 내겐 음미력을 기르기 위한 수련의 시간이다.


책을 읽을수록 어여쁜 문장들이 쌓여간다. 그러다 우연히 한 권 통째로 수집하고 싶은 책을 만나면 그렇게 설레고 기쁠 수가 없다. 길어지는 백수 생활과 잦은 병원 방문으로 통장은 비어 가지만 쌓인 문장들을 보면 꽤나 부자가 된 기분이다. 이 또한 내가 삶을, 글을 음미하는 방법 중 하나임을 깨닫는다. 아, 기분이 좋다. 어쩌면 나는 초연한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초연해져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름다움에 소심한 질투보단 음미력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 삶을 음미하고 문장으로 기록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책을 읽고 작가의 문장을 수집하듯, 삶을 살고 나의 문장을 수집해 글로 기록하는 것에 더 힘써봐야겠다. 음미력 향상을 위한 의도적인 수련을 시작한다. 


(이 글 다음에 발행한 글이 오늘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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