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utumnlim Jun 24. 2022

오늘은 6월의 마지막 금요일!

일상 음미력 향상 수행 01

느지막이 일어나 앉았다가 남편의 “오늘은 금요일이야!”하는 말에 설렜다.

직장도 다니지 않는 우리가 금요일에 설레는 이유는 근처 아파트 단지에 서는 금요장 때문이다.


어제 늦게 잔 탓에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늘려 조금 풀어주고 멍청하게 늘어난 츄리닝을 주섬주섬 꺼내 입는다. 시간을 한 번 슬쩍 보고 에코백에 책과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무거운데 왜 들고 가냐는 남편의 말에 오랜만에 카페 가서 책 좀 읽자 하며 에둘러댄다. 무거운 가방은 오늘은 기필코 글을 한 편 쓰겠다는 다짐이다. 고생을 좀 해야 그 고생이 아까워서라도 하게 되어 있다. 물론 고생은 남편이 하지만… 미안. 죄 없는 남편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내 손을 가볍게 금요장을 향해 걸어간다.


어제 무섭게 내렸던 비의 잔상들이 땅에도 하늘에도 진하고 흐린 무채색으로 남아 있다. 장터에 들어서니 비릿한 생선 냄새, 기름 냄새, 땀냄새가 몸 깊숙한 곳까지 쑤욱 들어온다. 비가 온 다음이면 냄새들이 더 진하게 난다.


 저번 주에 허탕 친 타코야끼와 와플 푸드트럭이 오늘은 과연 있을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며 푸드트럭이 줄지어 있는 길로 돌아선다. 저기 타코야끼를 들고 있는 짱구 그림이 살짝 보인다. 예쓰! 타코야끼 아주머니께 ‘저번 주에 안 오셔서 너무 서운했어요.’ 너스레를 떨며 10알짜리를 주문한다. 나풀나풀 춤추는 가쓰오부시는 언제 봐도 귀엽다. ‘감사합니다!’ 신나는 목소리로 힘차게 인사하며 타코야끼를 받아 든 남편의 얼굴을 보니 타코야끼처럼 동글동글 귀엽다.


이제 내 차례다. 내가 좋아하는 와플 트럭을 찾아본다. 어라, 이번 주에도 없나. 싶었는데 이번엔 남편이 찾았다. 얼른 달려가서 나도 괜히 너스레를 떨어본다. ‘저번 주에 안 오셔서 서운했어요!’ 와플 청년이 저번 주에는 행사에 다녀왔다고 웃으며 '뭐로 드릴까요?' 묻는다.


하, 가장 어려운 순간이다.

설탕에 살짝 졸아 물컹 보다는 단단하고 사각보다는 축축한 느낌의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클래식 중에 클래식, 사과잼 와플을 먹을까. 아니면 향기롭고 고고한 단맛에 부스터를 달아 달콤함을 극상으로 끌어낸,..(침 고인다) 아무리 설탕에 졸여도 그 단 맛이 경박스럽지 않은, 우아하고 부드러운 복숭아잼 와플을 먹을까.


어릴 때에 비해 와플에 초코 시럽이나 초코 잼을 넣는 걸 선호하지 않게 되었다. 너무 경박한 단맛 같달까. 향기 없는 강렬한 단맛으로 혀를 마비시켜 일정 시간 꼼짝 못 하게 하는 느낌이라 죄스럽다. 자고로 착한 음식이라면 먹을 때 그 맛과 향, 식감으로 내 입 안을 충만케 하는 것은 당연지사고, 꿀꺽 삼키면 제 임무를 다 했음을 알고 그 후에 들어올 음식을 위해 너무 길게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삼켜진 후에도 혀끝에 매달려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것은 착한 음식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다음 음식 음미에 차질이 생긴다. 이래서 엄마가 밥 먹기 전에 과자나 초콜릿을 먹지 말라고 했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이가 들었나 보다.


"우유 커스터드 와플 주세요"

뭐... 복잡했던 고민의 과정이 무안하게 사과잼도 복숭아잼도 아닌 우유 커스터드 와플을 선택한 이유는 새로운 것을 도전해 보기 위해서… 로 단순하다. 뜨거운 타코야끼와 뜨뜻한 와플을 들고 근처 밴치에 가서 앉는다. 사진 몇 장 찍어 두고(누가 음식 먹기 전에 사진 찍는 것이 마치 죽기 전 영정사진을 찍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럴듯해서 사진 찍을 때 종종 생각난다.) 와플을 조심스레 반으로 가른다.


너무 꾹 눌러 크림이 삐져나오지 않도록 섬세하게 손가락의 압력을 조절하며 슬그머니 갈라 한쪽은 남편에게 준다. 타코야끼는 속을 알 수 없는 놈들이라 겉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하루 종일 입천장 까지는 맛을 씁쓸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이미 다수의 경험이 있기에 나무 꼬챙이로 동그랗게 부풀어 있는 타코야끼들의 배를 갈라둔다.


타코야끼가 한 김 빠져 내 입천장에 안전한 온도가 될 때까지 우리는 뽀얀 크림을 가득 머금고 있는 아기 궁둥이 같이 귀염진 와플에 집중한다. 너무 세게 베어 물어 크림이 양 옆으로 찍- 튀어나가지 않도록 섬세하게 치악력을 조절하며 슬쩍 베어 문다. 손과 입가에 최대한 크림이 묻지 않게, 와플 빵과 크림의 비율이 마지막 한 입까지 적절하도록 치밀한 계산을 하며…(이럴 때만 치밀한 내가 참으로 대견하다…?) 다 먹고 나면 타코야끼가 안전한 온도가 되어 있다.



아침부터 고칼로리로 배를 채우니 우중충한 날씨 따위 뭐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아파트 단지를 반 바퀴 돌아 카페로 들어갔다. 선물 받은 기프티콘으로 계산을 할 작정이다. 작정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먹고 싶은 것과 기프티콘으로 받은 것은 달라서 가격 조정을 잘해야 하기 때문이다.


받은 것은 음료 두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인데, 우리는 가장 저렴한 아메리카노 두 잔만 마시고 싶다. 머리를 굴려본다. 일단 남편은 새로운 음료에 도전해 보겠다며 이름도 길고 멋진 복숭아 어쩌고를 시켰다. 나는 카페인이 필요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이미 고칼로리로 배를 채운 뒤라 케이크는 포장하기로 한다. 아뿔싸, 그래도 기프티콘 가격보다 1600원 적게 주문해서 다른 것을 더 주문하거나 1600원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 왔다. 내가 비싼 음료가 아닌 저렴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10년 전 이과생이었던 머리를 깨워 굴린다. 카운터 앞에 작은 과자나 견과류 같은 것들이 있다. 괜히 지금 먹지도 않을 케이크를 하나 더 사거나 비싼 음료를 주문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스낵류로 1600원을 채워보려고 한다. 1500원짜리 캐러멜 과자를 하나 샀다. 평소 내 돈으로 사 먹지 않는 과자인데 이렇게 기프티콘 돈이 남았을 때 한 두 번 사 먹어 본 적 있다. 추가 결제 없이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는 뿌듯함에 우쭐대며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남편에게 갔다.


아침에 무겁게 노트북을 들고 나오며 다짐했듯 음료가 나오자마자 노트북을 열었다. 얼토당토않은 글이라도 무조건 한 편은 쓰고 가겠다고 다시 한번 더 다짐한다. 아무렇게나 써두고 다듬지 않았던 글을 다듬고, 지금 이 글을 이어 쓴다.


남편은 먼저 집에 갔다. 나는 카페에 남아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혼자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 참 오랜만이다.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그리고 결혼 후부터는 혼자인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나는 함께의 행복과 혼자의 행복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뭔가 스스로 기특하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나도 집에 갈 것이다. 남편은 낮잠을 자고 있을 것 같다. 저녁에는 시부모님과 함께 갈비를 먹으러 갈 것이다.


6월 마지막 금요일을 함께 누리고 음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참 감사하다. '6월 마지막 금요일'이라고 굳이 이름을 붙인 이유는, 매주 당연하게 돌아오는 금요일로 오늘 하루를 휙 넘겨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마감 세일'이라는 말처럼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아련함과 괜스레 붙잡고 싶은 느낌을 이번 금요일에 붙여 장식했다. 날이 눅눅해 어깨에 솜이불 하나 얹어 놓은 것 같아 나도 살짝 자고 싶지만 카페인의 힘을 빌려 잘 이겨내고 있다. 집에 가서 아껴두고 있는 김서령 작가의 책을 한 챕터 읽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음미력은 얼마나 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