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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Jul 03. 2022

장마가 오니 생각나는, 뎅기열•치쿤구니야 걸렸던 이야기

요 며칠 대단한 비가 쏟아지고 있다.


6월 말에 시작해서 7월 말쯤 끝난다고 하는 장마는 매년 겪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니, 이맘때 비가 많이 내리는 것은 익숙하지만 그 장마와 함께 오는 찌뿌둥함은 익숙해지지 않고 늘 괴롭다. 나는 장마가 아니더라도 비가 이틀 이상 오거나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면 그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내가 그런 날씨에 예민한 몸뚱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계기는 미얀마에서였다.


2019년 6월 말, 나는 ‘치쿤구니야’라는 열병에 걸렸다.

이름도 세상 끔찍한 이 ‘치쿤구니야’는 뎅기열과 같이 모기에 물려 걸리는 병이다. 토요일 점심에 친구와 점심을 먹는데 몸이 찌뿌둥한 것이, 몸살에 걸릴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와 누워 있는데 점점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2015년도에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뎅기열도 앓았던 나는 직감했다.


‘이건… 모기병이다.’


모기병이라 함은 모기에 물려 걸리는 병을 내가 부르는 말이다. 망할 모기 새끼들은 내 피를 좋아했다. 매일 미얀마 피만 먹던 모기들이 한국 피를 먹으니 별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망할 모기들은 나를 아주 끔찍하게 좋아했다. 당시 나는 치쿤구니야 열병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뎅기열과는 비슷하지만 뎅기열은 아닌듯한 느낌에 뎅기열은 아니지만 모기 병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맞았다.


참고로 뎅기열과 치쿤구니야의 차이는, 뎅기열은 걸렸을 때 정말 죽을 것 같다.


사실 거의 기억이 안 날정도로 열이 너무 많이 나고 근육통이 심해서 정신이 왔다 갔다 한다. 음식을 먹으려고 해도 다른 어른들 말로는 입덧하는 것 같이 구역질이 나고 역겨운 느낌이라 먹기가 어렵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며칠 인사불성으로 있다가 좀 괜찮아져서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그대로 풀썩 쓰러졌던 것이다. 이 끔찍한 바이러스는 내 몸에 있는 적혈구들을 파괴한다고 한다. 그래서 급 빈혈로 풀썩 쓰러졌고, 이후 빈혈 약을 계속 먹어야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그리고 몸이 퉁퉁 부으면서 발진이 생기고 기침이 시작된다. 내 기관지가 이러다가 다 헐어버리는 것 아닌가 싶게 기침을 해댄다.


그래도 죽을 만큼의 아픔을 통과한 자에게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지 제 때 치료만 잘해준다면 후유증은 크게 없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당시 건강했던 20대 초반의 나에겐 체력과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서 생기는 2차 병 외에 심각한 후유증은 없었다. (어린아이들이나 노인들, 기저질환이 있는 분들은 장애가 생기거나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치쿤구니야 열병은 다르다. 뎅기열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치쿤구니야는 죽을 만큼 아프진 않다.  그래서 내가 제정신으로 모든 아픈 시간을 겪고 기억할 수 있었다. 처음엔 심한 몸살처럼 끙끙 앓는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안 좋다. 관절이 아프기 시작한다. 사람의 몸에는 이렇게 많은 관절이 있구나, 그리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관절을 하나 이상은 반드시 써야 하는구나를 깨닫게 된다. 산 송장처럼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물 뚜껑도 열 수가 없다. 손가락 관절이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는 것도 굉장한 결심을 가지고 비명을 삼켜가며 최단 루트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다녀와야 한다. 열병 종류이니 열과 기침, 근육통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관절이 너무나도 아프다.


현지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그래도 걸어서 들어오는 걸 보면 뎅기는 아니라고 했다. (바로 옆에 실려가는 여자를 보며 저 여자는 뎅기열이라고 했다.) 난 이미 뎅기도 겪어봐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뎅기인지 아닌지 확인해봐야 한다며 피검사를 했고, 당연히 뎅기가 아니었다. 사실 이런 모기병은 약이 없다. 그냥 내 면역력을 높여서 이겨내는 수밖에.


잘 알고 있기에 진통제와 비타민만 잔뜩 받아 집에 왔다. 미얀마는 치료 약보다 비타민 같은 약을 상당히 많이 끼워 판다. 외국인인 나에게 약값으로 장사하나 싶은 정도다. 당시에 동남아에 치쿤구니야가 유행이라고 했다. 치쿤구니야는 태국이름이고, 미얀마어로는 ‘싱똥꿰’라고 하는데, ‘싱’은 코끼리라는 뜻이고 ‘똥꿰’는 뎅기열병을 뜻한다. 즉, 코끼리 뎅기열이라는 뜻인데, 이게 왜 코끼리 뎅기열 이냐 하면, 염증 때문에 온 몸이 부어서 코끼리처럼 된다고 해서 그렇다고 한다.


나는 온몸이 붓고 피부는 새까매졌다. 까매진 것은 염증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피부 발진에 의해? 모세혈관들이 터져서 그렇다는 말도 있었다. 현지 의사들도 치쿤구니야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한 일주일이 지나니 그래도 살만해졌다. 몸이 약해졌는지 추위를 좀 타게 되고 잔뜩 붓고 새까매지긴 했지만 산책을 나갈 수 있을 정도로 꽤 괜찮아졌다. 근육통과 관절통도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렇게 점점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통증이 거의 없어지고 있구나 싶었던 때, 갑자기 내 관절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도 힘들 정도로 관절통이 다시 심해졌다.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면 정말 눈물이 찔끔 나고 집에 아래층에 살던 언니가 올라오면 물 병뚜껑 좀 따서 헐겁게 끼워놔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나는 다시 아파졌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난 아직 20대 중반인데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너무나 커졌다. 현지 병원에 다시 가서 물으니 내가 외국인이어서 면역 시스템이 현지인들과 달라 현지 풍토병에 약한 것 같다는… 뭐 그런 소리를 하며 비장하게 약을 처방해 줬다. 그걸 먹고 다음 날 일어나니 기적처럼 몸이 거의 안 아팠다.


‘오! 안 아프네!’하는 기쁨보다는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호전되지? 이거 무슨 약이지?’하는 두려움이 더 클 정도로 약의 효과는 뛰어났다. 한국 의사와 상담을 받아보기 위해 sos international hospital에 전화를 해 물어보니 한국 의사들은 이런 동남아 질병을 잘 모르고, 상담해주시는 의사 본인도 이 일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하하… 치쿤구니야는 뎅기열과도 달라서 더 정보가 없다고… 내가 먹고 있는 약은 스테로이드 같은데 오래 복용하면 좋지 않지만 지금 처방받은 만큼은 괜찮을 것 같다고 많이 아프면 먹으라고 했다.


이렇게 나는 거의 5개월 동안 관절염을 앓았다. 스테로이드를 오래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서 (물론 오래의 기준도 몰랐지만) 약을 안 먹고 이 꽉 깨물며 버텼는데, 다시 문의를 하니 약을 먹는 게 낫다고, 고통도 오래되면 뇌에서 이 정도 고통을 정상 값이라고 인지해서 계속 이 정도를 유지하게 될 수도 있다는 뭐 그런 진짜 기가 차는 답변을 받았다.


이 이야기가 왜 장마와 연관이 되느냐 하면, 이때가 미얀마의 우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7,8월은 집 안에 앉아 창가를 보면 지금 내가 집에 있는지 세차장에 있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비가 많이 온다.


내가 살았던 집은 그래도 괜찮은 컨디션의 돌집이었는데, 다른 옆 건물들에 비해 층 수가 높아 비바람이 곧장 내 집을 후려쳤다. 미얀마는 집을 대체 어떻게 짓는 건지… 비가 많이 오면 창문 틈으로, 문 틈으로 물이 줄줄줄 새어 들어왔다. 자고 일어나 방에서 나오면 거실과 부엌 바닥이 흥건해서 걸어 다닐 때마다 찰팍찰팍 소리가 났다. 나는 4층에 살았는데 침수가 있었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물이 계속 차자 나무로 된 바닥이 들뜨기 시작했고, 그 틈 사이로 곰팡이가 생겼다. 심지어 두꺼비집 쪽에 물이 새서 전기가 계속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전기가 나가면 물도 쓰기가 어려운 집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내가 살았던 지역에는 당시까지만 해도 자동차나 툭툭 택시보다는 오토바이 택시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비가 얼마나 오든 상관없이 나는 큰 우비를 입고 오토바이 뒷 좌석에 앉아 가야 했다. 관절이 아픈 사람이 오토바이 뒷자리에 걸쳐 앉아 세차장 같은 비를 맞으며 달려간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래도 우기여서 내가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몸이 아파서 날씨가 더 힘들게 다가오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다 어느 날 나의 미얀마어 과외 선생님께서 비에 대해 이야기하시며 ‘비가 오면 더 아파’라고 하셨다. 아?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닌가 싶을 수 있지만, 왜인지 그때의 나는 차마 몰랐다.


당시 나는 고통 일기를 썼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손을 쥐어보며 손가락 붓기와 통증을 측정했고, 손목 발목을 돌려보고 몸을 조심스레 돌려보며 오늘의 고통 정도를 체크했다. 사실 매일이 맥시멈이었다. 어쩌다 무의식적으로 했던 행동이 큰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예를 들면 걷기나 의자에 앉기), 오 좀 오늘은 괜찮네! 했다. 아프다고 누워만 있는 것도 한계가 왔다. 누워 있을 때면 서럽고 서러웠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 병에 걸려 누워 있어야 하는 건지 울분이 올라와서 혼자 소리를 지르며 울어댄 적도 있다.


그래도 어찌어찌 사람은 산다. 아픈 것에 집중해서 누워만 있기에는 나는 너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고, 혈기왕성했다. 이 정도 아픈 것이 당연해지니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며 일을 했다. 일주일 만에 유치원에 출근했을 때, 선생님들은 내가 어디 놀러 갔다 온 줄 알고 “잘 다녀왔어?” “즐거웠어?” 물었다. 반나절쯤 유치원에 있다 보니 열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풍토병으로 면역력이 최악이 되어버린 외국인에게 꼬질꼬질한 현지 아이들 200명이 바글바글한 유치원은 늘 감염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무서운 곳이었다.


정말 비가 오면 더 아팠다. 무슨 움직임이든 관절들은 너무 아팠고 에어컨이 없는 밖으로 나가면 내 몸은 젖은 솜이불을 턱- 하고 던져 붙인 것 같이 휘청거렸다. 몸을 정상적으로 안 움직이니 다른 문제들도 생겼다. 다리 근육이 심하게 결려 바지를 입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양곤에 계신 한의사를 찾아 일주일 동안 치료를 받고 왔는데,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오니 내 집은 곰팡이의 집이 되어 있었다.


모든 바닥 나무 틈새, 침대 틀, 책상, 책, 옷 등 모든 사람 손이 닿았거나 물이 스며들었던 곳에 형광 주황색 곰팡이가 바글바글했다. 나는 일주일간의 집중 치료를 받아 조금 나아진 몸으로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무릎을 꿇고 앉아 손가락에 물티슈를 말아 끼워 곰팡이들을 긁어내야 했다.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아픈 무릎을 억지로 꿇려 바닥 틈새 하나하나 곰팡이를 닦고 있으니 눈물이 그렇게 났다. 눈물이 뚝뚝 나서 바닥에 떨어질 때 내가 했던 생각은 ‘힘들다’ ‘서럽다’ 보다는 ‘눈물은 살균효과 없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


미얀마에 살며 많은 일을 겪었지만 눈물이 났던 적은 몇 번 없었는데, 그 몇 번이 다 이 맘 때인 것 같다. 닦아도 닦아도 계속 자라는 곰팡이와 계속 끊기는 전기, 줄줄 흐르는 빗물과 아픈 내 관절들. 2019년 우기 때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덮쳤다.


이 이후로 한동안 나는 아침이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몸 붓기와 관절 아픈 정도를 체크했고, 하늘에 흩뿌려진 구름만 봐도 곰팡이 생각이 나고 집에 들어가면 코를 킁킁 거리는 곰팡이 포비아가 생겼으며, 비만 오면 이 모든 순간들을 피부 세포 하나하나가 소환하듯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물론 지금 몸은 완전히 나았다. 한국에 와서도 가끔 손가락은 좀 아팠지만, 이제는 아프지 않다. 내 몸이 드디어 치쿤구니아 바이러스를 완전히 이겼나 보다. 오예! 하지만 곰팡이는 여전히 무섭고, 곰팡이 냄새에 예민하다. 그리고 한국 우기, 장마가 되면 몸이 천근만근 쳐지며 그때 생각이 난다.


‘장마 우울증’이라는 말도 있다. 습도가 높고 일조량이 낮은 장마철에 잠이 많아지고 무기력하며 식욕이 느는 자연스러운 증상이라고 한다. 객관적인 환경에 나의 몸이 정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정리하자, 사연으로 마음 한 켠 자리 잡았던 나의 끔찍했던 미얀마 우기 경험이 스토리로 풀려갔다. 그때 참 고생했지, 그래도 난 잘 이겨냈고 한국에 있었더라면 겪어보지 못할 일들을 나는 겪어봤으니 얼마나 대단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는 사서 고생이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도 살아봤고 저렇게도 살아봤다 말할  있는 스펙트럼이 조금  넓어졌음에 뿌듯하다. 다시 미얀마에 가면 우기를    겪겠지. 우기 때마다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할지도 모른다.(보통 남편이 들어줘야할 것이다.)

그 때마다  어떤 스펙터클한 이야기들이 생길지.  인생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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