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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Jul 18. 2022

신혼여행이 5개월 이상이 되면 발생하는 문제

[우리들의 글루스] 매일 기록하기 01/10 

2월 말 결혼을 하고 7월 말이 되어 가고 있는 지금까지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 중이다. 여행지는 제주도, 수원, 그리고 조만간 미얀마가 될 것이다. 제주도까지는 '진짜' 신혼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이후 수원에서의 생활도 신혼여행지가 되겠느냐 싶겠지만, 그거야 우리가 정하기 나름 아닌가 싶다. 결혼을 하고 우린 일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가고 싶은 곳에 가며 둘이 꼭 붙어 딩가딩가 지내고 있으니 신혼여행이 아닐까. 


아무튼 우리는 여전히 신혼여행 중이다. 남편보다는 좀 더 외향적이고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약속이 있어 나갈 때가 아니면 우리는 24시간을 붙어 있다. 집 안에서도 다른 방에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내가 침실에 있으면 남편도 침실로 오고, 남편이 거실에 있으면 나도 거실로 나가 함께 있는다. 다행히도 둘 다 첫 번째 사랑의 언어가 스킨십이어서 같은 공간에서 다른 일을 해도 살 한 뼘은 맞대고 다리 한 짝은 걸치고 있다. 결혼하기 전엔 보통 엄마를 만지작 거렸는데 엄마는 날 귀찮아해도 남편은 날 안 귀찮아해 줘서 좋다. 


많은 신혼부부들이 결혼을 하면 너무 좋은데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연애 때처럼 재미있게 놀다가 이제 각자 집에 가야 하는데, 얘 왜 안 가지... 하는, 이제 혼자 있고 싶어지는 피로감이 몰려온다고. 정말 공감된다. 결혼하고 두 달까지는 더 그랬던 것 같다. 함께가 너무 행복하고 좋은데, 혼자 있고 싶고,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간절하고 오빠는 왜 집에 안 가지? 아 내가 가야 하는 건가? 싶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익숙하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여러 모로 독립성이 최대치가 되었을 때 갑자기 둘이 꼭 붙어 같이 살게 되었다. 당연히 결혼 전에 연애를 했고, 우린 주 4-6회 정도로 매우 자주 만났지만, 부부로서 '모든 일상'을 함께 보내는 것은 다르다. 동거는 해본 적 없지만 몇 번 들었던 동거 경험자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결혼은 동거와도 다르다고 했다. 동거도 일상을 함께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어느 정도 여백이 있기 때문일까. 뭐, 그건 모르겠다.


익숙한 것으로 회귀하려는 본능은 어쩔 도리가 없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어도 각자 바쁘고 성인이 되었으니 그 정도로 가깝게 지낼 필요가 없고, 최소한 내 방에 들어오면 나는 혼자가 되고 가장 편한 몸과 마음의 모습으로 쉼을 갖고 편하게 잠들고 일어날 수 있었다. 혼자 나가고 혼자 다니고... 심지어 나는 혼밥을 즐기고 혼영과 혼자 여행도 가능한 사람이다.(혼자 고기 구워 먹으러 간 적도 있다.) 아니 그런 혼자의 시간이 너무 필요한 사람이다. 이건 내 연인관계나 가족관계, 부부관계의 좋고 나쁨과 전혀 상관없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필요한 시간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함께 나가고 함께 다니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여행을 하고 함께 잠을 자고 함께  함께 함께... 행복한데 답답하고 벅찬 이 기분... 솔직히 신혼부부라면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나만 그런가..? 아 어쩌면 우리가 신혼여행 기간이 너무 길어서 그럴 수도...)


내 남편은 무척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나와 4살 차이가 나는 오빠이기도 한데, 그래서 그런지 내가 쓰레기봉투를 사러 잠깐 나가려고 한다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에 혼자 버스 타고 가려고 한다거나 하면 "혼자 갈 수 있겠어?"라고 걱정스레 묻는다. 연애 때 혼자 밥 먹는 것도 너무나 안타까워하며 "날 부르지. 다음엔 나를 꼭 불러줘 알았지?" 신신당부했다. 처음 29살 먹은 내게 혼자 슈퍼에 다녀올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왜 내가 못 다녀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렇게 질문하는 의도가 뭐야...?


혼자 미얀마 시골에서 살아남기도 했던 억척스러운 나에게 그깟 집 앞 슈퍼 가는 것도 "혼자 갈 수 있겠니" 묻는 남편의 물음에 처음엔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인상 찌푸렸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그걸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능력을 묻는 질문이 아니라 '네가 원하면 함께해줄 수 있어'라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말이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뭐만 하면 날 애 취급하는구먼 싶어서 나는 그런 의존적인 사람이 아냐! 하는 생각으로 내가 얼마나 스스로 내 삶을 잘 개척해왔고 도전하고 모험하며 살아왔는지, 내가 얼마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인지 온갖 썰을 풀어가며 증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미 나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대화가 끊이지 않는 부부고, 만난 기간은 짧아도 그 밀도가 엄청난 커플이기에(연애 때 주 4-6회 만남, 결혼 후 5개월째 신혼여행) 서로 뭐를 혼자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서로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려 애쓰기보다는 '주관적 정보'를 주기 위해 애써야 하는 때고, 이는 앞으로 부부로서의 관계가 익숙해질수록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마음이나 의도 같은 것 말이다. 

'혼자 갈 수 있겠어?'라는 물음에 담긴 남편의 사랑과 보살펴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아채야 할 것이고, '혼자 가고 싶어'라는 대답에 담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나의 마음을 알아줘야 하는, 높은 수준까지 우리는 도달한 것이다! 심지어 싸움이 될 것 같은 순간에 '지금 그냥 나랑 싸우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이걸 해결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하고 직설적으로 묻기도 한다. 그럼 '그냥 기분이 나빠서 싸우고 싶어'라고 솔직하게 답하는 것이 인지상정...


결혼한 지 3-4개월쯤 되자 이제 이 것들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함께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이제 남편에게 나의 가장 편한 몸과 마음의 모습을 보여주어도 부끄럽지 않아 한결 편해지면서, '오, 우리 정말 가족이 되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결혼 5개월째가 거의 다 되어 가는 지금, 어쩌면 맞벌이 부부의 3년 치 주말을 연속으로 함께 보내고 있는 지금, 좀 더 혼란스러워졌다. (읭?)

이젠 진짜 남편 없이 혼자 어딘가 가고 남편 없이 혼자 뭔갈 한다는 게 이상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서도 거뜬하고 함께라면 더 행복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혼자인 게 당황스럽고 허전하다니... (물론 거뜬한 건 여전하다.) 


'나'라는 정체성 위에 '우리'라는 정체성이 한 뼘 더해지고 있다. 29년 동안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으로만 살아왔고 그것을 견고하게 만드는 것을 정체성 확립, 나만의 색과 개성이라 여겼는데, 이제는 좋든 싫든 내 평생의 동반자에게 나를 허물 권리이자 의무를 주었고, 나는 그를 허물 권리이자 의무를 받았다. 


단 한 번도 이 정도로 타인과 가까웠던 적이 없다. 심지어 부모와도. 너무 가까우면 부딪히고 부딪힌 부분은 허물어진다. 다른 관계라면 다치기 전에 거리를 두겠지만 남편은 다르다. 허물어지지 않으려고 이를 꽉 깨물면 쓸데없이 비싼 이만 부서지고 몸에 힘만 들어간다는 사실을 나름 대학시절 가장 열심히 공부한 가족학 과목들과 내 부모님, 그리고 주위 귀감이 되는 부부들을 보며 알고 있었다. 물-론 아는 것과 그렇게 사는 건 다른 차원이다. 

우리는 평생의 동반자라며!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난할 때나 부할 때나 함께하는 또 다른 나라며! 둘이 하나 되는 거라며! 그럼 서로를 허물고 하나가 되어야지!... 하지만 5개월 정도 붙어살며 내린 결론은 '1+1=1는 불가능하다.'이다.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1+1=1.5 정도를 목표로 두면 괜찮을 것 같다. 


우리가 만약 보통의 커플처럼 주 한 두 번 보는 연애를 하고, 보통의 부부들처럼 일주일 정도 화끈한 신혼여행 후 일상으로 복귀해서 각자 직장을 다녔더라면 지금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좀 달랐을까 싶기도 하다. 고작 결혼 5개월 차이지만 그동안 느끼고 배운 바가 많다.(앞으론 어떨까!) 


얼마 전 남편과 함께 나를 꽤 잘 알고 있는 언니를 만났다. 남편과 함께 있는 나를 보더니 '살쾡이 같았는데 아기 고양이가 됐네'하며 웃었다. 내가 그렇게 살쾡이 같이 살았나?... 싶다가 어쨌든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내 지금 모습이 아기 고양이 같이 순하고 귀여워졌다는 뜻이니(일단 내 맘대로 해석^^) 그 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혼자 너무 힘주며, 쫓기며 살다가 남편을 만나 힘을 빼고 유연하게 사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함께하며 나를 허물어야 하는 순간은 꽤나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나를 더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안다.


부부가 함께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한 없이 나약해지고 참으로 아름답고 복잡 미묘하며 나도 몰랐던 나를 알고 너도 몰랐던 너를 알며, 세상에 없었던 '우리'를 만들어 가며 진짜로 강해지는 것이다. 


이제 고작 5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우리의 결혼과 긴 신혼여행이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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