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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Jul 19. 2022

우리, 이민 가는 거야.

[우리들의 글루스] 매일 기록하기 02/10

출국이 열흘도 남지 않았다.

드디어 간다. 물론 최근 몇 개월간 한 치 앞을 예상하는 것이 사치인 삶을 살아온지라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현지에 도착해야만 '드디어 왔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간다.

병원을 다녀오고 비자를 받고 비행기표를 사고 가기 전 만나야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짐을 싸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코로나는 또 극성인 건지, 아주 대단한 녀석임을 다시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친정집에서 이민가방을 가져왔다. 코이카라고 커다랗게 쓰여있지만 가방 퀄리티가 좋아서 그냥 계속 쓸 예정이다. 친정에서 이미 짐을 많이 가져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한 짐을 더 얹어 가져왔다. 남편이 '이거 다 가져가는 거야?' 하며 곁눈질로 내 가방을 본다. 가져갈 것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민가방에 커다란 케리어에 기내용 케리어에 짐 몇 개는 더 들고 가게 될 것 같다.


'아냐 짐 별로 없는뎅...'

내 짐을 향한 남편의 눈길에 괜히 유난스러워 보이나 싶어 민망해졌다. 그러다 문득, 내가 저번에 미얀마 갈 때는 짐을 어떻게 챙겼었더라? 하고 생각해보니 이 것 보다 더 챙겼었던 것 같다. 그때는 방 한편에 캐리어랑 이민가방을 다 열어두고 한 달 동안 짐을 쌌었다. 물론 우리는 반년마다 한 번씩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라 그때 필요한 것을 더 챙겨도 되고, 정 급하면 다른 분들이 입국하실 때 부탁드려도 된다. 그래도 우리 여행이 아니라 살러 가는 건데 이 정도 짐을 많다고 한다고!?



'이민 가는 것도 아니고,... 아 우리 이민 가는 건가?'

그래 우리 이민 가는 거다. 이민이 정확히 뭐지 싶어서 찾아보니(익숙한 단어 정의 찾아보는 걸 좋아한다.) "다른 나라에서 해당 나라로 임시 혹은 영구히 이주 오거나 가는 것을 말한다. 유엔에서는 1년 이상 타국에 머무는 것을 이민으로 규정하고 있다."라고 한다. 지금 우리는 10~20년가량 미얀마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민이 맞다. 하지만 10~20년이라는 기간에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사람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니... 일단 가서 하루하루를 살아볼 뿐... 어쩌다가 이렇게 하루살이 같은 마음가짐이 되었는지 살짝 서글플 뻔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본래 특성 중 아닌가. 뭐든 진리는 빨리 인정하고 받아들일수록 이득이라 믿는다.


내가 미얀마에 가서 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미국도 아니고 미얀마에. 간혹 낯선 사람에게 우리가 해외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럼 사람들은 꼭 '어디로 가세요?'하고 묻는다. 우리가 '미얀마요.'라고 대답하면 정말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으로 '미얀마요오~???'하고 되묻는다. 그리고 꼭 따라오는 질문 한 가지 더. '지금 거기 괜찮아요?'


그건 알 수가 없다. 뭐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도 사실 안 괜찮은 건데 우리는 한국이 제일 괜찮은 줄 알고 뿌리내리며 살고 있지 않은가. 세상엔 괜찮은 곳이 없다! 그곳이 괜찮은지 보다 그곳을 향한 내 마음이 괜찮은지, 내가 가진 자원과 능력이 괜찮은지를 살피는 것이 맞다.

다들 그렇듯, 우리도 일이 있어 그곳에 간다. 남편의 직장이 미얀마에 있고, 나는 남편을 따라간다. 졸졸졸. 또 많은 사람들이 묻는 것이 '너는 가서 뭐할 거야?'다. 그 전에 미얀마에서 했던 일들을 다시 하러 가는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글쎄... 날 무얼 할까.(이건 다음에 좀 더 기록해보아야겠다.)


미얀마는 내가 2년 넘게 살았던 나라이기도하고, 원래는 올해 4월에 갈 계획이었는데 지금까지 미뤄진 것이니 이쯤 미얀마에 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지만 막상 가려고 하니 마음이 뒤숭숭하다. 한국을 떠나는 것이 아쉽고 미얀마가 낯설다. '이민'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더 그런 마음과 감정이 솟구쳤다.

내가 이미 세 번, 총 2년의 시간을 그곳에서 잘~ 보냈었다는 것을 아는 내 지인들은 아무도 나를 걱정해 주지 않는다. '왠지 너는 걱정이 안 돼. 가면 제일 잘 살 거면서!'라고 너스레 떠는 지인들에게 처음엔 '힝 너무해. 나도 걱정해줘!' 했는데, 이젠 그만큼 내가 어디에서나 잘 살아갈 강한 사람이라고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라 여기며 '고마워!' 한다. 


지금 그곳에서의 생활을 이럴 거야 저럴 거야,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하는 것이 얼마나 소용없는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막상 현실이 되면 걱정했던 것들은 생각보다 좋을 것이고, 좋을 것이라 했던 것들은 생각보다 별로일 것이다... 으하하

지금까지 내가 천방지축 부딪혔던 미얀마 생활과 전혀 다른 미얀마 생활이 될 것이다. 미얀마를 떠난 지 2년이 훌쩍 넘어 다시 미얀마로 돌아가는 날을 앞둔 지금, 오만 감정과 생각이 휘몰아치지만 그것들을 부를 때 "기대된다!"라고 외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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