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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h Sep 29. 2020

#27 항상 이야기를 듣던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나는 늘 듣는 편이다. 이야기를 하는 쪽보단, 듣는 편.


그리고 내 것을 보여주고 털어놓기보다는 많이 보고, 듣고, 읽는 쪽이다.

만약에 input vs output 간의 비율을 따질 수 있다면 인풋이 한 90, 아웃풋이 10 정도 되는 느낌.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하게 내 안에 풀어내지 못하고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이 너무 많이 쌓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오늘의 행선지는 도심 속에 숨어있는 Bean cafe.


물론 브리즈번에서 혼자 지내면서 하루 종일 입 밖으로 말 한마디 내뱉지 않는 날들이 종종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이야기를 좀처럼 털어놓지 않는 건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이랑 함께 살았어도, 친구들을 만나서도, 

그 시기에 가장 하고 싶었던 혹은 해야 했던 이야기들은 이상하게 입 밖으로 잘 꺼내지지가 않았다. 

그 이유가 뭐였을까를 생각해보니

너무 좋은 일들은 얘기하면 없던 일이 될 것 같아서 무서웠고 

힘든 일들은 얘기하면 스스로가 못 버틸 것 같아서 참았다.

표지판을 잘 보고 들어가야 하는 숨어있는 카페.


그러다 보니 내가 찾는 안식처는 '살아있지 않은 것'이 많았던 것 같다. 주로 혼자 하면서 혼자 마음을 일방적으로 털어놔도 되는 것들.


예를 들어

늦은 밤에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심야 영화를 본다던가,

참새가 방앗간 찾듯 서점으로 가서 내 마음에 도움이 될 법한 책들을 매일 찾는다던가,

가사든 멜로디든 마음에만 든다면 음악을 열심히 무한반복시켜놓는다던가,

드라마를 본다던가, 

어딘가에 가서 가만히 앉아있는 것.


빌딩 뒷골목에 있는 bean. 카페 입구. 빈티지하다.


근데 이조차도 그 방향이 주로 '인풋을 넣는' 쪽이라 뭔가를 느낀다 한들 이걸 아웃풋으로 만들어낼 생각 같은 건 잘 안 해봤던 것 같다.


너무 긴 시간 동안 안에 담기만 해서 그런가? 내 안에서 밖으로 뭔가를 꺼내는 게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이걸 어떤 형태로 바깥에 내놓아야 하는지 그 방법 자체도 모르겠더라. 

반지하에 있어서 1층에서 계단을 걸어 내려가야 카페가 나온다.


만들어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내가 처음으로 찾은 방법은 그냥 사진, 영상을 찍어두고 내 이야기를 글로 써두는 거였다. 


가끔은 짧고, 

가끔은 너무너무 길고,

또 어느 날은 분에 넘치게 행복한 상태로, 

때로는 엉엉 울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는 마음으로.

오늘따라 신기하게 카페에 혼자서 뭔가를 끄적이는 사람들이 많다.


나한테 위안이 되어주었던 모든 것들을 (살아있지 않은 안식처들) 그렇게 차곡차곡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그냥 좋았다.


무엇보다 어쩌다 한 번씩 내가 써뒀던 것들을 뒤적거리고 있으면 이상하게 지난날의 내가 더 어른스럽고 성숙한 느낌도 들고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이해시켜주고 토닥여주는 날도 생겼다. 

컵이 꽤 큰 편이어서 그런지 커피 양이 정말 많다.


그래서 어딘가에 털어놓을 구석이 있다는 건 사람을 정말로 안심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언제 어느 때라도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그 어떤 종류의 이야기나 감정도 털어놓을 수 있다는 무한한 안정감.

머리색은 점점 밝아지고 눈썹은 점점 진해졌다.


그리고 가끔은 내가 털어놓는 이야기들을 그 자체로 좋아하게도 됐다.

모두에게는 그 사람만의 이야기가 있고, 그 스토리는 없는 것보단 있는 쪽이 좋은 것 같다.


물론 항상 드라마틱하고 우여곡절이 넘치는 그런 하루하루들은 싫지만 나에게 인풋으로 들어오는 일들을 내 안에서 어떻게 소화를 해서 어떤 아웃풋으로 만들어낼지는 전적으로 나한테 달린 일이기도 하니까 


그만큼 내 색깔이 묻어나는 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아늑하고 안전한 지하 공간. (화장실은 무서운 곳에 동떨어져있다.)                                          


그러니까 적어도 내 손에 닿았던 모든 일들은 

내가 내 걸로 잘 맞이하고 만들어서 

다시 잘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좋았던 이야기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았으면.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해도

나는 나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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