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나는 늘 듣는 편이다. 이야기를 하는 쪽보단, 듣는 편.
그리고 내 것을 보여주고 털어놓기보다는 많이 보고, 듣고, 읽는 쪽이다.
만약에 input vs output 간의 비율을 따질 수 있다면 인풋이 한 90, 아웃풋이 10 정도 되는 느낌.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하게 내 안에 풀어내지 못하고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이 너무 많이 쌓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브리즈번에서 혼자 지내면서 하루 종일 입 밖으로 말 한마디 내뱉지 않는 날들이 종종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이야기를 좀처럼 털어놓지 않는 건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이랑 함께 살았어도, 친구들을 만나서도,
그 시기에 가장 하고 싶었던 혹은 해야 했던 이야기들은 이상하게 입 밖으로 잘 꺼내지지가 않았다.
그 이유가 뭐였을까를 생각해보니
너무 좋은 일들은 얘기하면 없던 일이 될 것 같아서 무서웠고
힘든 일들은 얘기하면 스스로가 못 버틸 것 같아서 참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찾는 안식처는 '살아있지 않은 것'이 많았던 것 같다. 주로 혼자 하면서 혼자 마음을 일방적으로 털어놔도 되는 것들.
예를 들어
늦은 밤에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심야 영화를 본다던가,
참새가 방앗간 찾듯 서점으로 가서 내 마음에 도움이 될 법한 책들을 매일 찾는다던가,
가사든 멜로디든 마음에만 든다면 음악을 열심히 무한반복시켜놓는다던가,
드라마를 본다던가,
어딘가에 가서 가만히 앉아있는 것.
근데 이조차도 그 방향이 주로 '인풋을 넣는' 쪽이라 뭔가를 느낀다 한들 이걸 아웃풋으로 만들어낼 생각 같은 건 잘 안 해봤던 것 같다.
너무 긴 시간 동안 안에 담기만 해서 그런가? 내 안에서 밖으로 뭔가를 꺼내는 게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이걸 어떤 형태로 바깥에 내놓아야 하는지 그 방법 자체도 모르겠더라.
만들어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내가 처음으로 찾은 방법은 그냥 사진, 영상을 찍어두고 내 이야기를 글로 써두는 거였다.
가끔은 짧고,
가끔은 너무너무 길고,
또 어느 날은 분에 넘치게 행복한 상태로,
때로는 엉엉 울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는 마음으로.
나한테 위안이 되어주었던 모든 것들을 (살아있지 않은 안식처들) 그렇게 차곡차곡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그냥 좋았다.
무엇보다 어쩌다 한 번씩 내가 써뒀던 것들을 뒤적거리고 있으면 이상하게 지난날의 내가 더 어른스럽고 성숙한 느낌도 들고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이해시켜주고 토닥여주는 날도 생겼다.
그래서 어딘가에 털어놓을 구석이 있다는 건 사람을 정말로 안심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언제 어느 때라도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그 어떤 종류의 이야기나 감정도 털어놓을 수 있다는 무한한 안정감.
그리고 가끔은 내가 털어놓는 이야기들을 그 자체로 좋아하게도 됐다.
모두에게는 그 사람만의 이야기가 있고, 그 스토리는 없는 것보단 있는 쪽이 좋은 것 같다.
물론 항상 드라마틱하고 우여곡절이 넘치는 그런 하루하루들은 싫지만 나에게 인풋으로 들어오는 일들을 내 안에서 어떻게 소화를 해서 어떤 아웃풋으로 만들어낼지는 전적으로 나한테 달린 일이기도 하니까
그만큼 내 색깔이 묻어나는 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적어도 내 손에 닿았던 모든 일들은
내가 내 걸로 잘 맞이하고 만들어서
다시 잘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좋았던 이야기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았으면.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해도
나는 나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