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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h Oct 04. 2020

#28 5am의 일출과 5pm의 노을을 위해 살아요

골드코스트로 향하는 길

햇살이 좋은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어보니 바람이 선선하다.

브리즈번은 공기 중 습도가 낮아서인지, 녹지가 많아서인지. 이렇게 선선한 날엔 신기한 공기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바람이 약하게 불어올 때마다 풀 섞인 달달한 향이 나기도 하고 바삭거리는 햇빛을 닮은 모래 향이 강하게 나기도 하고. 그럼 가끔 이런 공기 냄새도 담아놓을 수 있는 기술이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한다.

예를 들어 그 공기를 담아 '2020년 10월 2일 6am 운동 가는 길', 이렇게 라벨링 해놓을 수 있으면 가끔 그 시간이 그리울 때마다 꺼내서 향을 맡아볼 수도 있을 텐데.

새벽에 일찍 나선 자의 특권!


그렇게 오늘은 이른 아침 평소보다 더 여유롭게 스튜디오로 향했다.

아침엔 확실히 몸이 더 뻣뻣하게 굳어있어서 잠이 덜 깼을 땐 간신히 걸어갈 때도 많지만 확실히 아침이 주는 에너지가 있기에 요리조리 움직이다 보면 몸 컨디션이 금방 좋아진다.

그것도 모르고 미적대다 오전 시간을 그냥 침대에서 보냈으면 아쉬웠을 뻔했다.


앞 타임은 barre 수업 중. 새벽에 이 격한 운동하는 거 정말 존경.


햇살이 비추는 브리즈번 이 동네는 정말 예쁘다. 해가 질 때도 예쁘지만 해가 뜰 때는 특유의 찬란함이 있다.

햇빛 비출 때마다 이 말을 생각한다.

Someone once told me to always live for the little things in life.

누군가 저에게 항상 작고 사소한 것들을 위해 살아가란 이야기를 했어요.

Live for 5am sunrises and 5pm sunsets.

새벽 5시의 일출과 오후 5시의 노을을 위해 살아요.

어렸을 땐 엄마 아빠가 동네에서 꽃구경 나무 구경하면 무한 줌인해서 사진으로 찍어두는 거 이해 잘 못했는데 점점 닮아간다.

계절감이나 초록 초록한 자연, 공기와 바람과 햇살, 달과 별. 

묘하게 이런 우주적인 것들에 끌린다. 나이 들었나 봐.

오늘도 잘 부탁해.



여기 온 이후에 나중에 꼭 이런 요가 스튜디오를 차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간절해졌다.

그래서 동네 산책하거나 여행할 때마다 요가 스튜디오는 꼭 밖에서라도 유심히 구경하곤 하는데 언젠가는 그런 기회들을 차곡차곡 만들어나가고 싶다.


내가 겪었던,

내가 받은,

좋은 것들만 고르고 골라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운동 끝난 후 플렌티(Plenty) 카페로 왔다.


열심히 운동했으니까 집에 가기 전에 카페에 들러서 소이 라테 한 잔.

그리고 잊지 않고 지난번에 봐 뒀던 스테인리스 빨대를 드디어 샀다.

사실 스테인리스 빨대를 파는 곳은 많았지만 이왕이면 내가 좋아했던 가게에서 사고 싶다. 

자주 쓰는 물건들은 추억이 담겨있는 게 좋아서.

집 청소도 끝.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던 이유가 있다. 곧 골드코스트(Gold coast)로 이동하기 때문. 

혼자 머무르고 있다 보니 일정에 대한 짜여진 계획 같은 게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짧지 않은 여행이 될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골드코스트는 2가지 이미지가 강하다.

하나는 바다가 금빛으로 빛나는 휴양지,

다른 하나는 서퍼들의 천국.

내가 이 집에서 제일 많이 서성대던 곳.


나는 딱히 휴양지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수영을 못하기 때문에 물속에 들어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즉 굳이 골드코스트에 뭔가를 기대하고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단 이름이 예뻤고, Burleigh heads라는 곳이 예쁘다는 말을 브리즈번 처음 왔을 때 너무 자주 들어서 나중에 꼭 가봐야겠단 생각을 했었다.

계획하고 기대하고 가지 않는 여행도 좋다.

Gold Coast행 기차


캐리어를 이고 지고 기차역으로 갔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다.

거의 캐리어랑 싸우는 지경으로 계단을 올라가는데 출근 중으로 보이는 정장 입은 여자분이 치마 입고 힐 신고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첫 번째 인사.

표를 사서 플랫폼에 서 있는데 워낙 기차가 많이 들어와서 가까이에 서있는 역무원에게 물어봤더니 

한 3번을 알려주고도 기차가 들어오니까 멀리서 또 와서 지금 타라며 짐까지 올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두 번째 인사.

뜻밖의 친절은 늘 달콤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한 숨 돌리고 기차에서 다운로드한 영화 '어바웃 타임' 보는 중.


운 좋게도 여행 다닐 때마다 낯선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은 기억이 너무 많아서 이렇게 예상치 못한 친절을 경험하고 나면 나는 꼭 어디에든 적어둔다.

그리고 이렇게 내가 받은 친절을 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비슷한 형태로 전해주려고 노력한다.

이런 종류의 다정함은 아무것도 못 이긴다. 오래오래 남는다.

브리즈번 출발 - 골드코스트 도착.


그렇게 도착한 골드코스트. 


처음은 언제나 낯설고 또 낯설지만 또 이 안에서 나의 마음에 위안이 되어주는 것들을 

열심히, 우연히 찾아낼 거다.

며칠 전에 읽었던 책에 쓰여있던 말.

어떤 사람도 널 사랑한 것처럼 사랑할 순 없을 거야.

그런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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