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ah Oct 16. 2020

#29 달콤한 그늘

골드코스트 랜선 집들이

바다를 옆에 끼고 있어서인지,

점점 날씨가 풀려가는 계절 덕인지,

골드코스트의 햇살이 브리즈번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그 빛이 뜨거워질수록 

그늘은 점점 달콤해지는 법. 


오랜 시간 앓은 덕분에 

나는 골드코스트에서 머무는 집과 

친해지는 시간을 듬뿍 가졌고,

이 안전한 그늘 속에서 달콤함을 마음껏 누렸다.

열쇠로 문을 열면 보이는 부엌.


골드코스트에서 머무는 아파트먼트는 Chevron Island에 위치해있다.

처음 숙소를 정할 때 해변가를 따라 워낙 고층 빌딩 아파트도 많고, 유명한 휴양지인만큼 동네마다 각각의 상권들이 잘 발달해있어서 그만큼 선택권이 많아 정하느라 시간을 많이 썼다.


그래도 숙소를 고를 때 일단 내 마음의 기준점으로 삼았던 건

1. 너무 관광지 가까이가 아니라 적당히 사람 사는 한적한 동네일 것 

2. 가까이에 요가 스튜디오가 있을 것

3. 깨끗하고 안전할 것

이거였다. 


그런 점에서 골드코스트의 Chevron Island는 

1. 다리 하나만 건너면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가 나오는 좋은 위치인 데다가

2. 걸어서 5분 거리에 미리 봐 둔 요가 스튜디오가 있고, 

3. 숙소가 최근에 리모델링을 마친 곳이라 

나에겐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다. 

혼자 쓰기엔 너무 넓은 식탁이었지만 나는 식탁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까 여러모로 좋았다.                                



사람마다 여행하는 스타일이 다 다른데, 

나는 여행할 때 미리 일정이나 계획을 세워야 마음이 안정되는 스타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때 더 안심이 된다. 물론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최대한 상대방 성향에 맞추지만.


그래서 여행 가기 전날 비행기표를 사거나, 

여행 중에도 당일 새벽에 일어나서 그 날 갈 곳, 할 일을 정하거나, 

그때 그때 직접 여행하면서 일정을 세워나가는 일이 익숙하다. 


더군다나 이렇게 혼자 있다 보니 더욱더 내 맘대로 움직이게 됐는데, 

혹시라도 숙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적당히 옮겨야지 싶었는데 

지금까지 모든 숙소들이 내 맘에 꼭 들어서 그게 너무 다행이고 고마웠다. 

부엌의 창문을 통해 바깥 테라스를 볼 수 있고, 커피머신도 있다.


물론 아파트먼트인지, 빌라인지, 주택인지 등 숙소의 기본적인 형태와 그 위치에 따라 

장점과 단점은 나뉘기 마련이지만 


한 번 내가 머물기로 정한 곳에서는 

별다른 불평이나 불만이 잘 생기지 않는다. 


사람도 공간도 

장점과 단점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좋은 점을 더 많이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공간들도 스스로 느낄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내 안에 머무르고 있는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역시 그냥 나만 잘하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함부로 대하지 말고 아껴줘야지.

최근에 리모델링을 마쳐서 부엌 상판 대리석도, 오븐도, 주방도구도 다 깨끗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친절하게 다가가면 

지금까지의 경험상

웬만해서 이런 공간이 나를 배신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마음을 잘 여는 만큼 

더 따뜻하게 환영해줬고, 품어줬고, 더 많이 내어줬다.

베드룸. 햇살이 너무 강렬해서 암막 커튼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다.



그래서 무엇이든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가

많은 것들을 결정 지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날들이었다. 

제일 마음에 드는 베쓰룸.



집에서 제일 심혈을 기울여 리모델링한 것 같은 곳은 바로 베쓰룸.

비록 내 키보다 세면대가 좀 높아서 세수할 때마다 까치발 좀 들었지만 

너무 마음에 드는 회색톤의 공간이었다. 


어렸을 때는 거실이나 안방이 더 눈에 들어왔는데 

나이가 들수록 부엌이랑 화장실에 꽂히게 된다. 왜 그렇지?

샤워 부스 안에는 사우나처럼 앉을 공간이 있다.                                



지금까지 샤워 부스 안에 이런 앉는 공간이 있는 건 처음 봤는데 

씻다 보니까 너무너무 편하다. 

나처럼 씻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은 정말 좋아할 아이디어.

나중에 집 화장실 공사하면 무조건 앉을 공간 하나는 만들어둬야겠다.

여기서의 날들도 잘 부탁해.



I've lost everything 

as I breathe in your shade. 


여기 머무는 동안

골드코스트가 나에게 내어주는 

햇살과 그늘 속에서 마음껏 숨 쉬어야지.

이 그늘에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한다.

작가의 이전글 #28 5am의 일출과 5pm의 노을을 위해 살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