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든 감추고 싶은 과거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상처가, 혹은 말하지 못한 아픔이 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Turbulence가 유난했던 경비행를기를 타고 광활한 기개를 자랑하는 안데스 산맥을 건넜다. Pucallpa에 도착하자 따가운 햇살과 습한 공기가 콧구멍을 타고 들어와 허파를 감싼다.
아, 정글이구나
이미지출처 : http://leslietaylor.net
Pucallpa 자체는 아주 작은 시티로 아마존강의 지류가 흐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1840년대 선교사들에 의해 발견되어 Shipibo-Conibo 라는 부족 그룹이 정착 하게 되면서 형성된 도시이다.
도시로 나가기 위해 타야했던 대중교통 motocar. 이들이 공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하기 때문에 금방 손님을 내려준 듯한 두어대의 motocar만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색하지만 쭈뼛거리면 안되는 드라이버와의 가격협상 후 Pucallpa로 가는 길, 그 땐 몰랐다 앞으로 내게 일어날 일들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도시.
이미 많이 지쳐있던 영혼을 끌고 갔던 곳이다.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인서울 4년제를 다니면서대기업에서 인턴을 했고 보기 좋게 취직에는 실패하였다. 걔는 인턴하더니 취직 됐대? 누군가 궁금해한다는 별거 아닌 사실까지도 나를 괴롭히던 시절이었다. 누구누구는 어디 취직했대, 마치 대학만 가면 다 될 것처럼 세뇌시켜놓고, 그것이 사실은 끝이 아니었다는 사실. 자꾸만 나를 누군가와 비교할 수 밖에 없으며 결국엔 꼭 어디 모자른 사람이 된 듯한 박탈감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바나나처럼 생긴 Plantains 들여오는 항구. Plantain chips 를 먹어보길 권한다.
끝내는 도망을 쳤다, 사람 수 보다 양들의 수가 더 많다는 공기 좋은 나라로.
일전에 여행했던 곳이라 그래도 익숙하게 해낼 수 있겠지, 하고 비자 조건이 덜 까다로운 나라를 택하게 된 것. 그런데,
여행일때는 낭만이었던 그 곳이, 현실이 되고보니 날카로웠다.
사방에 적 뿐인 것 같았다. 앞으로 내가 살 나라는 내 힘으로 바꿔 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도망을 쳤던 나는, 이곳에서 또 간절한 것이 있는 존재, 즉 약자였다. 일 부리기 좋고 뒤통수 치면 그만인 취급을 받으며 아득바득 버텼다. 살아남고 싶었다. 그러다 비자를 지원해주던 호텔의 Head Barista로 있던 중 일이 터졌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신체의 이상을 진단 받은 것. 내 몸이 내 마음이 마침내 보내는 신호였다.
좀 쉬고싶어
스스로에게 지워준 짐이 너무 무거웠다. 그렇게 휴식을 위해 잠시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은 곳으로 떠나야 했다.
내가 무슨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느나라 사람인지, 금발인지 흑발인지, 오늘이 며칠인지, 지금이 몇시인지,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너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
오직 그것만을 위해 존재하는 곳.
Our soul divides into two, and those souls are in turn transformed into two and so, within a few generations, we are scattered over a large part of the earth.
- Paulo Coelho, Brida
서로의 눈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그 사람의 우주를 내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관대함에 사로잡히고, 생전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부끄러운 과거가, 어두운 아픔이 생각지 못하게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어떠한 잣대도 들이대지 않는 그 자유로움에 숨통이 틔었다.
사람이 미웠다. 사람 때문에 내가 망가진 것만 같았는데, 사람이 주는 영향을 내가 잘못 받아먹어서 그리 된 것이더라. 배신감인지 박탈감인지 모를 당혹스러운 감정을 한동안 이고 살아가면서 내 마음은 곧잘 불만으로 가득차곤 했는데, 결국은 오래된 상처를 껴안고 여전히 울고있는 어린 자아의 작고 작은 생각이 생각을 낳아 스스로를 괴롭힌 몫도 컸다.
해가 뜨면 아침이려니, 해가 지면 잘 때가 되었으려니 하며 요가를 하고, 자연식을 먹으며 해먹에 누워 하늘을 쬐었고 충분한 마음의 휴식을 취했다. 꽃을 한가득 담은 물을 머리 위로 붓는 날엔 묶은 상처를 씻어내리기라도 한 듯한 홀가분함에 눈코입을 방실거렸다.
저마다의 상처가 하나쯤은 있는 사람들었다.
아마존 끝자락, 빗소리가 유난히 예뻤던 정글의 무한함 속에서 우리는 각자 같은 듯 다른 여정을 보내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법을,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Pucallpa에서 통통배를 타고 San Francisco 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을 들어가는 길
타닥타닥 모닥불 위에 구워진 생선과 플란타인, 아보카도와 몇몇의 야채가 Shipibo 부족 전통방식으로 바나나 나무 잎 위에 가지런히 차려지고 우리는 그들의 음악을 듣는다. 북소리가 나무를 타고 바람에 닿는다.
척박한 환경이라는 잣대도 결국은 내 마음이 만들어 낸 것 아닐까.
물을 마실 수 있음에 행복하고, 엄마 옆에서 걷는 것이 즐거운 아이의 모습.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불편해 보였지만, 결국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다정함이 참 좋았던 San Francisco.
공생의 아름다움.
Shipibo 부족에게서 배운 것은 내 마음 돌보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비가오면 반갑게 물을 마실 풀이, 나무가, 꽃이 생각나 흐뭇하고, 울창한 나무를 볼 때면 땅밑으로 거대하게 내린 뿌리가 이웃나무와 손잡고 함께 자라는 모습을 상상한다. 자연 앞에서 모든 것은 정직해질 수 밖에 없고, 혼자만이 만들어놓은 배틀에 스스로 지쳐 본인의 가치를 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