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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Jul 22. 2023

출근길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시어머니가 우셨다.

아이들은 한 명일 때보다는 꼭 둘일 때 사고를 친다. 그만큼 둘이서 아주 재미나게 논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너무 흥분하여 놀다가 누구 한 명이 다치기라도 하면 속상한 마음이 화로 둔갑하여 아이들을 향하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말괄량이 녀석들이 도무지 진정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저녁. 아마 할머니의 방문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평소에 재미없게 엄마 아빠랑만 있었는데, 한없이 자상한 할머니가 오셨으니 얼마나 신이 났을까.


침대에서 그 아래에 매트리스 같은 걸 깔고 뛰어내리는 놀이를 하는 것 같던데 둘이서 와하하 하고 방에서 놀다가 어른들이 있는 거실로 나오고 들어가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방으로 다시 다다다 뛰어 들어간 둘째의 개구진 웃음소리가 울음으로 바뀌는 데에는 5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이 방에 먼저 간 남편의 놀란 반응에 나 역시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 붙들고 방으로 갔는데 얼굴이 발갛게 올라 자지러지게 우는 둘째. 울음이 터져 나오는 아이의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순간 아이의 얼굴을 닦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이 앞에 주저앉아 터질 듯한 발간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는 힘차게 우느라 열린 입 안을 살폈다.


치아는 괜찮은지, 어딘가가 많이 찢어진 것이 아니길, 오만가지 생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동안 어머니는 휴지를 챙겨 주셨고, 남편은 이런 일이 생길까 봐 아까 진정하라고 한 거 아니냐며 첫째에게 언성을 높였다.


아빠의 나무람에 첫째도 울기 시작했고 중간중간 어머님이 남편에게 살살 말하라고 사인을 보내시는 것 같았지만,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나는 겨우 둘째의 얼굴을 닦고서는 마치 아이의 상처를 가만히 응시하면 피가 멈추기라도 할 듯, 감히 피의 근원지인 것 같은 치아를 만져보지 못한 채 그대로 작은 혼돈 속에서 굳어 있었다.


첫째의 울음도, 남편의 나무람도, 어머니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남편은 아마 속상한 마음에 언성을 높였으리라. 어머님은 그런 본인의 아들에게 다른 말씀을 하시기보다는 작게 말하라는 정도로 말리시다가 거실로 나가셨다.


아이들도 울음을 멈추고 상황이 정리가 되어 먼저 거실로 나온 나는, 거실 테이블에서 우두커니 속상한 듯 앉아계시는 어머니를 보았다.


다음날, 모처럼만에 홀로 나선 출근길. 강아지 산책 후 돌아오시던 어머니와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다.  


어제 H(남편)가 한 행동에 대해서 둘이 이야기를 좀 해보았니?


어머님의 말씀에 의하면 둘째가 다치던 순간 첫째는 거실에서 어머님과 함께 있었는데, 왜 첫째에게 그렇게 언성을 높여야 했는지 본인 아들이 너무했다는 것이다. 첫째는 이미 장난을 멈추었는데, 둘째가 다쳤다는 이유로 그렇게 혼나야 했는지, 애 아빠가 도를 넘었다, 그 sweet 한 아이에게 너무 불공평하다 하시면서..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신다.


출근하려는 사람들로 복작이는 버스 정류장에서 어머니를 안아드리며 나는 출근이고 뭐고, 화충격에 휩싸인. 


연애 초기부터 알았다. 어머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는 걸. 그래서 종종 남편에게도 물었다.


당신은 혼나보긴 했어? 어머님은 안 때리셨지? 당신은 어머님이 맨날 다 잘한다고 해주셨어?어머님은 매번 저리 다정하셨어?


남편이 어렸을 때 욕을 했는데 그걸 본 어머님은 세면대로 데려가 입을 씻겨주시며 그런 나쁜 말은 더러운 말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아이들이 잘못하여 화가 나시면 아프지도 않았다던 궁디팡팡.


몸뚱이로 날아오던 발길질, 윽박이나 비하, 다음날 머리통이 얼얼하도록 머리채를 잡히고 뜯기는 일들에 비하면 어머님의 훈육은 낭만적일 지경이었다.


누군가에게 선택지 없이 주어진 삶이, 누군가에게는 상상 밖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남편의 자존감은 참 높은가 싶었다. 스스로를 믿고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중심 같은 것이 그에게는 있었다. 덕분에 나도 봄날의 햇살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드는 식물처럼 그의 옆에서  조금씩 기지개를 켜어왔다.


당신은 뭐든 할 수 있어.

당신은 뭐든 될 수 있어.


그는 본인이 자라면서 엄마에게 들었을 법한 말을 줄곧 내게 해주었다. 니까짓게 라는 익숙한 말이 두려워 끊임없이 증명하는 데에 애쓰느라 마르고 갈라진 내게서 마치 언젠가 꽃이라도 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심어주, 격려라는 물을 이따금 뿌려주었다.


속상한 마음에 아이에게 버럭 한 남편이지만, 20대 중반 모든 것이 불안하던 아득한 곳에서 나를 잡아 주었듯 나의 아이들의 멘털을 책임져줄 사람이 그이라 감사하다. 내 아이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대변해 울어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어 (비록 어머니께는 무척 속상하신 일로 기억에 남았겠지만) 감사했고, 아이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충만하신 분이, 내 아이의 할머니라 감사하다.


사랑을 느끼고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이었으면 한다.

자기 자신으로 충분하고 괜찮다는 가장 기본적인 진실을, 아이들이 마음속 보석처럼 단단히 지니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만 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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