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Past Lives를 보았다. 이제는 아이 둘을 낳은 아줌마가 되어서일까. 어느덧 로맨스 영화에는 시들해져 있었는데,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각본상 노미네이트가 되었다고도 하고, '인연'이란 단어를 영어로 설명하고 있는 영화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결국 나는 다른 사람과 결혼도 한 나영이, 한때 마음이 깊었던 해성이 잠시 나영을 보러 뉴욕에 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는데 왜 울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혹시 놓친 부분이 있었나, 다시 돌려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대신 마지막에 사로잡힌 대사가 있었다.
[넌 너이기 때문에 떠났어야 했어.
그리고 내가 널 좋아한 이유는, 네가 너이기 때문이야.]
넌 누구냐면, 떠나는 사람인 거야.
난데없이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워지고, 지금 당장 보러 갈 수 없는 물리적 거리가 아득해지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때가 있다. 그런 순간들이면, 왜 나는 여기에 있는지. 어쩌자고 가족도, 친구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여기까지 혼자 와서 자리를 잡았을까.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어떤 날은 잘 한 선택이었다고, 내게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는가 하면, 어떤 날은 정말 이게 맞는가 싶은 날들도 있다.
가정도 꾸리고, 대기업에 자리 잡고 억대 연봉받으며 무난하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이면에서는 한국이었다면, 혹은 모국어를 사용했다면 느껴도 되지 않을 일들을 예민한 내가 놓칠 리가 없었다. Past Lives 영화 속 주인공들의 "만약 그때 내가 한국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참 부질없다 생각했던 주제에, 나 역시 "만약 내가 지금 한국이었다면 -"이라는 상황을 종종 떠올리는 것이다.
다행인 건 요즘은 어느 나라든 이민자가 많다. 다양한 인종이 함께 어우러져 살면서, 나의 케이스가 그리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는 데에서 위안을 얻곤 한다.
마치 [넌 떠나는 사람인 거야]라는, 한 문장의 대사에서 큰 위안을 받은 것처럼. 별나서, 성격이 지랄 맞아서, 한국을 버티지 못하고 떠난 게 아니라(사실은 이게 맞긴 하지만). [떠나는 사람]이라는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종류의 사람들은, 한국에 두고 온 것들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여기와 거기 사이에서,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에서 분주하게 살아가는 특징을 가졌을 뿐이라는 것.
그러니 가슴이 답답한 순간은, 떠나기로 한 선택에 대한 값을 치르는 무거운 일이 아니라, 그저 이 무리의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니, 체념할 것도, 거스를 것도 없이 받아들이면 된다고. 그리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더 편해졌다.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인 아주 어렸을 적. 그러니까 어른들이 "외국, 외국"이라고 하는 걸 듣고는 [한국]처럼 [외국]이라는 이름을 한 나라가 있는 줄 알았을 때에. 가보지도 않은 이국적 풍경 속 널찍한 광장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의 생김새를 어렴풋이 그려보며 언젠가는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친척이 호주에서 1년 살던 때,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나는 여름방학 때 한 달 만이라도 가고 싶다고 부모님께 졸랐다. 형편이 어려워 보내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에는, 호주에서 살고 있는 또래 친척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언젠가는 나도 꼭 갈 것이라고. 여름방학 내내 다짐을 했다.
중학교 때 알던 아이가 방학 때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마치 발목 잡힌 사람처럼 한국에 살다가, 대학까지 졸업하고 결국은 나와놓고는. 이제 와 한국이 그리울 때가 있다는 건 설명할 길이 없다. 이건, 떠나올 때 계산 속에 넣지 않았다.
도망치듯 나와 돌아볼 일은 없을거라고 확신했는데. 자라온 뿌리를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시간이 흐를수록 실감한다.
[떠나온 사람]이 되고서야, 비로소 애틋해졌다.
호주에서 사는 이야기를 1주일에 한 편씩 10회 연재하였다. 사실 이전에 쓰던 글들도 이방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기록이라 굳이 따로 이렇게 연재를 하는 게 맞나 싶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약속한 날짜에 글을 써내야 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여 시도해보고 싶었다.
아이 둘 낳은 아줌마이지만, 아직 해보고 싶은 게 많다. 계속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글쎄. 누가 궁금해하기는 할까. 마케팅하기에는 적합한가. 그러다 이 길은 아니겠다 자기 검열을 하는 와중에 멀리서 참 많이도 주절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다 떠는 기분이라 좋았다. 이방인으로 살면서 찌질하게 주눅들던 마음을, 혹은 아주 오랜만에 떡볶이를 사 먹다가 당황스럽게 올라오던 그리운 마음을 인정하고 써 내려가는 시간이 스스로에게 힘이 되기도 했다.
이후 쓰게 되는 글들도 여전히 '이방인 일지'가 되겠지만, 여기서 일단 [이방인 일지] 브런치북 10번의 연재를 마친다.
그동안 [이방인 일지]를 통해 저의 브런치에 놀러 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