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픽업 가야 해서
오늘 회식 참석 못해요.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Director는 이해한다는 눈빛을 보낸다. 아 그래요? It makes sense. 깔끔하다. 더 이상은 미안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데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마저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한다. 그리고는 오후 4시에 잡힌 팀 회식, 이라 쓰고 사실은 오후에 술 한잔씩 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회식이 있으면 꼭 참석하여 한 잔 정도는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 회식은 수요일. 남편도, 나도 회사로 출근하는 날이다. 서로 번갈아가며 재택을 하는 다른 날과는 달리 남편과 내가 방과 후 교실과, 어린이집에 맡겨져 있는 아이 하나씩을 맡아 픽업하여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야 한다.
회식이 오후 4시부터이니 퇴근시간인 5시까지는 참석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끝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딱 4시에 회식 장소에 모이기 어렵기도 할 뿐만 아니라, 이동 시간까지 합하다 보면 어영부영 4시 반, 5시는 금방이다.
가자마자 자리를 뜨느니, 아예 가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고, 고맙게도 팀원 모두 이해해 주었다. 술 좀 마시겠다고, 아이들 픽업이 뒷전이 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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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양가 부모님 도움 없이 아이 둘을 여태껏 키울 수 있던 일등 공신이 있다. 바로 [가족이 있는 삶]을 이해해 주는 회사 구조.
아이를 픽업해야 해서, 아이가 아파서, 혹은 학교/어린이집에서 하는 엄마의 날 행사로, 아빠의 날 행사로 출근을 좀 늦게 하게 되거나, 퇴근을 좀 이르게 해야 했을 때. 회사는 우리가 아이를 돌보며 일하는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우리는 샐러리맨으로 살면서도 감사하게 [가족]을 가장 우선순위에 둘 수 있었다.
아이 학교에서 해마다 하는 엄마의 날 오전 미사에 아이와 함께 참여하는 날은, 저녁에 집에서 일을 더 하기도 하고, 다른 날 또 분명 조금 더 일하는 날들의 시간으로 자연스레 메꿔진다.
꼭 오늘 빠진 2시간을 오늘 밤, 혹은 이번 주에 채워야 한다고 누가 시간표 들고 체크하는 빡빡한 매니지먼트도 아니고, 해야 할 일을 마친다는 책임감을, 회사에서는 자율성으로 보답해 준다(vice versa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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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독립군으로 아직 살아남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조력자로는 저녁 6시까지 여는 어린이집과 방과 후 교실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학교도 일부러 집에서 회사 가는 길에 위치한 학교로 정해서 보냈다. 살고 있는 집 주소에 배정된 공립학교는 회사 가는 길 반대방향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 보통 학교에서 사설기관을 고용하여 운영하는 방과 후 교실도 학교 내에서 하는지 확실치 않았다.
현재 보내는 아이 학교는, 공립은 아니지만 회사 가는 길에 위치해 있고, 방과 후 교실도 학교 내에서 진행된다. 출근길, 퇴근길에 드롭오프하고 픽업하기 훨씬 수월해야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우리에게는, 무교에 가까운 우리 부부의 종교와 상관없이 아이를 가톨릭 학교로 보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오후 5시만 되면 시티에서 버스를 타고 동네로 와 아이 하나씩을 데리고 집으로 모인다. 아침에도 둘씩 찢어졌다가, 저녁에 둘씩 모이는, 이른바 헤쳐 모여가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는 날인 셈이다.
2021년도에 한 리서치 기관에서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에 대해 17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적이 있다 (https://www.pewresearch.org/global/2021/11/18/what-makes-life-meaningful-views-from-17-advanced-economies/).
이 중, [가족]을 뽑았던 대부분의 다른 나라와 달리, 유일하게 한국이 [물질적 풍요]를 1위로 꼽았다. [가족]은 3위를 차지했다.
왜 한국은 [가족]보다 [물질적 풍요]를 우선시할까. 무턱대고 [물질 만능주의]라고 단정 짓기 전에 생각해 볼 것이 있다.
혹시.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고 회사에 나가는데, 그놈의 회사가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그래서 [물질적 풍요]를 우선순위에 두지는 않았는지. [물질적 풍요]가 있어야, 상사 눈치나 보며 새벽같이 출근하여 밤늦게 퇴근하지 않을 수 있고, 비로소 내가 원하는 [가족]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결국 내 마음속 1위인 [가족]을 위해 이루어야 할 것들을 말한다는 것이, [물질적 풍요] 1위라는 사실 뒤에 숨어 있던 진짜 마음은 아니었는지.
In South Korea, it even emerges as the top source of meaning. Still, the lifestyle elements respondents cite run the gamut from “food on the table” and “a roof over my head” to “a decent income to support my family” and “no debt” to “enough money” to enjoy riding motorcycles or other activities like travel.
실제로 응답자들이 언급한 [물질적 풍요]의 요소에는 "식탁 위의 음식", "머리 위 지붕"부터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충분한 소득", "빚 없는 것"이 있다. 이 외에도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충분한 돈"까지, 리스트는 다양했다.
그런데 읽을 때마다 "식탁 위의 음식(= 우리 가족이 먹을 음식)", "머리 위의 지붕(=우리 가족을 보호할 집)" ,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충분한 소득 (=우리 가족을 충분히 서포트할 수 있는 돈)"이라고 읽힌다.
자꾸만 [가족을 위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을 만큼]이라는 부사절이 들리는 건 기분 탓인가.
아무리 가족이 있는 삶을 이해해 주는 회사에 다닌다고 해도, 여전히 크고 작은 순간에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치 않아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로또라도 되면 좋겠다는 허무맹랑한 꿈을 꾸곤 하는데.
무조건 [일]이 중요하다는 회사에서, 시간을 팔아 돈으로 환산하는 동안 점점 공허해지는 마음은 [가족을 위한 일]이라는 진심으로 다잡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부모의 부족한 시간을, 부모의 커다란 마음으로라도 채우고 있다고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결국 물질이었는지도 모르고.
늦은 퇴근시간 축 처진 어깨가, 길어지는 회식에 술로 찌든 얼굴이, [물질적 풍요]라는 단어 위로 떠올랐다 사라진다.
유독 길었던 하루를 마치고, 지금쯤 잠들었을 아이들을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들어가는 저벅저벅한 걸음걸이가, 엄마의 동동거리는 발걸음이 온통 가족을 향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