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웠어도 여전히 맥시멀리스트인 것은 안 비밀입니다만
31200원.
긴 겨울방학을 함께 한 아이가 등교한 첫 주의 마지막 날. 그동안 팔겠다는 생각으로 이고 지고 있던 옷과 책을 고물상과 알라딘에 팔아넘겼다. 옷이 27kg, 책이 45kg, 합이 31200원이었다.
반년 가까이 집안의 물건들을 야금야금 비워내며 당근, 차란, 알라딘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새 주인을 만나 떠나간 옷과 책을 비롯한 각종 물건들은 현금이 되어 나에게 돌아오며 한 마디씩 했다.
그 돈 주고 사더니, 이 돈에 팔려고 그랬니?
이 가격에라도 팔리는 것이 어디냐 변명하며 질문을 외면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말 멀쩡하고 너무 괜찮은 물건인데 팔리지 않을 때 발생했다. 모든 물건이 팔리면 좋겠지만 그럴 리 만무했다. 그런데 그냥 버리자니 자원낭비, 환경파괴를 하는 것 같고 누구를 주자니 적절한 주인이 떠오르지 않는다. 당근에 나눔을 몇 번 했더니 '당근거지'라는 말이 이래서 있구나 하고 깨우쳐주는 경험을 몇 차례 하게 된 뒤로는 나눔도 쉽지 않다 싶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방 한 구석 문 뒤쪽에 켜켜이 물건을 쌓아두었다. 자주 들어가지 않는 방이어서 청소할 때만 흐린 눈을 하면 문을 닫아 짐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있었다. 남편이 한 마디라도 할 참이면 알아서 치우겠다며 엄마의 잔소리에 대응하는 사춘기 딸마냥 쏘아붙여가며 말이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심지어 만물이 소생한다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3월이 오니 문득, 그냥 다 비우고 싶어졌다. 뭐가 중요한가 싶은 마음이 들면서 말이다. 저게 얼마에 언제 팔릴지 혹은 안 팔릴지 모르는데, 만약 내가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갑자기 아프거나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내가 아픈 걸로도 정신없을 텐데 저 쓰레기들까지 치워야 한다니 라는 생각이 별안간 들었기 때문이다.
계획적이지 못한 만큼 충동적으로 일을 실행하는 나는 힘도 참 세고 씩씩하므로 책을 수레 두 개에 나눠 담아 한번에 끌어다 엘리베이터에 싣고 옷을 꾹꾹 담은 이불가방 두 개도 한 번에 들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부피가 큰 이불가방부터 크지 않은 차 트렁크에 넣고 나서 노끈으로 적당량을 나눠 묶어둔 책을 차곡차곡 테트리스하듯 끼워 넣었다. 책도 옷도 서로를 지지대삼아 쓰러지지 않도록.
고물상은 전에 살던 동네 근처에 있던 곳으로 정했다. '고물상'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곳은 옷도 책도 함께 받는 게 확실하여 전화해 보니 무게 당 가격 또한 제일 높았다! 사실 거리가 좀 있는지라 배보다 배꼽이 커질까 봐 지금 사는 곳 근처를 찾아 전화해 보니 옷과 책을 함께 받는 곳이 없을뿐더러 두 군데로 나눠 가져갈까 싶은 마음이 무색하게 무게 당 가격이 너무 형편없었다. 거리만이 문제였는데 마침 전에 살던 동네에 볼일이 생겨 그 김에 홀랑 갖다 팔았다. 고물상 저울에 물건을 턱턱 옮겨놓고 시원한 마음 반, 뭔지 모르게 몽글거리는 마음 반을 담아 물건들에 안녕, 작별인사를 했다.
깨끗해진 방을 보며 마음이 개운해졌다. 물건과 바꿔온 31200원은 너무 소중하게 여겨졌다. 이참에 당근이며 알라딘이며 팔아 번 돈을 살펴보니 897760원이란다. 다 합치니 90만 원이 넘는 돈이다. 그런데 어라?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기분이 좋아 아파트 금요장에서 곱창볶음을 사 먹으니 현금으로 갖고 있던 31200원도 순삭이다. 비우고 남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일단 돈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비우고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비웠으니 비운 뒤에 남은 게 있다는 게 어쩌면 좀 이상한 말인 것 같은데 일단 비우고 나니 깨끗한 공간이 남는다. 쓰고 보니 공간(空間)이 남는다는 말도 어폐가 있는 것 같다. 공간이 생긴다. 인스타그램에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계정주가 어떤 사람이 빈 바닥을 밀대걸레로 쭉쭉 밀고 나가는 것을 보고 충격받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는 글이 생각났다. 나 또한 그 사람의 말을 보고 가진 것이 덜하면, 바닥에 놓인 것이 줄어들면 집안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시작한 것이었는데 짐이 사라진 방을 보며 이게 그거구나 싶었다(아 물론, 짐이 놓여있던 그 자리만 잠시 깨끗해졌을 뿐 다른 곳을 보며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다음으로는 마음이 개운해진다. 마치 지저분하게 방치되었던 공간이 곧 내 마음이었던 것처럼 하나하나 정리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뭐가 문제인지 몰라 복잡하고 복잡하니 어지럽고 짜증이 치밀어 오르던 그 마음이 고요해진다. 고요해진 마음으로 뭐가 문제인 것 같은지 생각하게 되고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해결하면 될 것 같은지 생각하게 된다. 나라는 사람은 뭘 하고 싶은 사람인지 돌아보게 되고 어떤 습관을 버리고 싶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 같은지 고민하게 된다. 어떤 물건을 아끼고 보관하고 싶은지 어떤 물건을 소유하고 싶고 어떤 물건은 정리하고 싶은지 물건을 하나하나 살피다가 좀 더 명징한 마음으로 나 자신을 살피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있는 공간, 그리고 나 자신에 조금 더 애착이 생겼다. 조금 더 좋아졌다. 아직도 정리할 것은 산더미고 비웠던 공간이 또 끄집어내 놓은 다른 짐들로 어질러져 있지만 이젠 안다. 시간이 조금 걸려도 팔리든 버려지든 정리되든 제 자리를 찾느라 그 과정에 있는 것임을.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나면 또 말끔해질 것임을 안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이 보여도 언제 그랬냐는 듯 예쁜 모습으로, 조금 더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임을 안다. 그러니 물건에, 문제에 압도되지 않고 내가 오늘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만이 내 할 일이라는 것도 안다.
아! 깔끔한 공간, 고요한 마음, 그리고 조금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내가 남았구나. 공간이, 마음이 엉망진창이 되어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내가 남았다. 나 자신을 좀 더 잘 다독이고 다듬고, 그래서 나와 잘 지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내가 남았다. 방을 재배치하겠다고 있는 힘껏 어질러놓고 마무리를 못 짓고 있는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기엔 아직 먼 맥시멀리스트지만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고 있다. 시간이 걸려도, 완벽하지 않아도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다 보면 더 나다운 내가 될 거다. 어설픈 비움이었지만 비운 뒤 남은 것은 이렇게나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