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days 에세이트레이닝_10일차
그 애가 좋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갈색 머리칼과 다른, 무엇인가를 가져다 대면 그것이 그대로 비춰질 것 같은 하얀 피부에 까맣게 광이 나는 머리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전학을 온 친구여서 궁금해서였을까. 10살은 그 애에게 쉬지 않고 말을 걸었고, 우리집에 놀러가자고 졸라댔던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동네도 달랐는데 매번 집에 가서 그림그리며 놀자고, 퀴즈내고 놀자고 하여 집에 데리고 가곤 했다. 놀다보면 그림은 내가 좀 더 나았는데 퀴즈는 수준이 달랐다. 삼남매 중 둘째인 그 애는 스스로를 '찬 밥도 아니고 얼음밥'이라고 했다. 첫째이자 오빠는 장남이라 따뜻한 밥이고, 아직 미취학 어린 동생은 막내라 미지근한 밥인데 둘째 딸인 자신은 찬밥도 아니라 얼음밥이라고. 그래서 책을 많이 읽었던 걸까. 그 애는 아는 것이 참 많았다. 그래서 퀴즈를 내도, 나처럼 최불암 시리즈 같은 것에서 본 퀴즈를 내는 것이 아니라 '국제통화기금을 영어로 하면 무엇일까'와 같은 퀴즈를 냈다. 당연히 풀 수 없었다.
그 애의 집엔 오빠 방에 컴퓨터가 있었다. 그 애의 오빠가 오기 전에 몰래 컴퓨터를 했는데 그 애처럼 뽀얀 그 애의 오빠가 오자마자 그 애를 침대에서 밟았다. 얼음밥이란 이런 걸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딸 둘 중에 큰 딸로만 살아오는 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가끔 오빠가 게임을 시켜주긴 한다던 그 애는 5학년 때 우리 아파트 라인에서 제일 먼저 샀던 586 컴퓨터로 타자연습만 하던 나에게 스타 크래프트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러다 왜인지 모르게 하드가 나가 목돈이 들었는데 그건 내 돈이 아니라 엄마돈으로 고쳐서 그런가 그래도 그 애가 좋았다.
3학년 때부터 내리 3년간 같은 반이었던 우리는 3년 내내 일기쓰기의 라이벌이었다. 지금과 다르게 선생님은 매일 일기쓰기를 숙제로 내주고 검사 후 별을 1개부터 5개까지 표시한 뒤 별 개수에 따라 사탕을 주셨다. 반 전체의 일기쓰기 현황을 보여주는 스티커판도 있었다. 늘 선두를 달리던 우리 둘.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애가 깜빡하고 일기장을 집에 두고 온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만 별을 주셨고 일기쓰기 현황판의 스티커 1위의 주인공은 내가 되었다. 속상해 책상에 엎드려 우는 그 친구를 손으로는 토닥이며 위로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솔직히 조금 기뻤다. 그래서였을까.
6학년 때 다른 반이 된 뒤로, 함께 집에서 노는 일은 굉장히 드문 일이 되었다. 졸업 후, 같은 중학교에 간 뒤 가끔 만나 시험공부를 하면서도 은근히 수행평가와 지필평가 점수를 비교하곤 하다가 고등학교에 가서는 연락이 거의 끊겼다. 더더욱 가끔 대입을 응원하는 연락을 주고 받다가 목표로 한 대학보다도 더 좋은 대학에 간 그 친구와 다르게 난 재수를 하게 되어서 그런 걸까. 대입 이후엔 아주 연락이 끊겼다. 만족스럽지 못하게 들어간 나의 학교에, 프랑스 시험을 망친 그날 우연히 놀러온 그 애는 너무 예뻤다. 당시 유행하던 웨지힐을 신고 하얀 피부를 빛내며 긴 속눈썹이 달린 쌍커풀이 진한 눈을 깜빡이는 그 애를 시험 공부를 하느라 유난히 꼬질꼬질하고 마음에 안 드는 옷을 입은 상태에서 만났다. 반가웠지만 어색했고,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그 애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마음에 안드는 레벨의 대학 때문이었을까.
카카오톡에 문득 뜬 프로필을 눌러 수 년만에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은 없었다. 그 뒤로는 연락을 시도하지 않았고 그 흔한 SNS 주소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벌어진 틈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 틈이 영원이 되어 그 틈을 메우는 것은 의미도 없고 불가능하다는 것, 그것만은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