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단 것없이도 달콤할 수 있을까

에세이 트레이닝 시즌4. 각설탕

by 시월

엄마가 오기 전에 턱이 높았던 뒷베란다 문지방에 엉덩이를 살짝 걸치고 앉았다. 아파트 출입구 앞 문구점에서 백원을 주고 산 신호등 사탕이 손에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빨간색 사탕을 입에 오물오물 몇 바퀴를 돌리며 굵은 소금보다 더 큰 설탕 알갱이를 이빨로 긁는다. 사탕은 금세 맨들맨들해진다. 쓰레기통에 '투-'하고 뱉는다. 엄마가 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얼른 다음, 녹색 사탕을 입에 넣는다. 같은 방식으로 파란색 사탕까지 클리어하고 '투-', '투-' 뱉어댄다. 세 알을 다 먹을 동안 엄마가 오지 않는다. 어디 간걸까 궁금함은 잠깐이다. 아무도 없는데도 뒷베란다 문을 누가 들을까 아주 살포시 닫은 다음 몸을 돌려 부엌 찬장을 연다. 설탕, 소금, 간장 등 조미료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색도 비슷하고 이름도 적혀있지 않지만 단 번에 설탕통을 알아볼 수 있다. 왜냐면 어제도 몰래 한 숟가락 퍼먹었으니까.






유치원생일 때였나,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였나. 그렇게 어린 시절의 엄마는 직장을 다니지 않았기에 늘상 집에 있거나 집 근처에 있었는데 단 것을 먹지 못하게 하는 엄마가 집에 없을 때면 저런 비행을 아주 쫄깃하게 즐겼다. 저것말고도 케찹에 밥 비벼먹기, 콩은 다 버리기 뭐 그런 것도 했던 것 같은데 유난히 신호등 사탕의 색이 마음 속에 선명하게, 설탕 덩어리처럼 알알이 박혀있다. 그랬던 내가 각설탕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감정은 충격과 신기함, 설레임이었다.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지만 집 안은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저 각진 덩어리가 설탕이라니, 너무 신기하다. 먹고 싶다. 갖고 싶다. 어떻게 하면 가져 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제대로 말하고 가져왔는지 몰래 가져왔는지도 모르겠고 집에서 까서 먹었는지 그 자리에서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 정육면체를 둘러 싼 종이를 조심스레 벗길 때 세상이 내 것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발을 동동 굴렀으며, 그 장면이 슬로모션으로 남아있다는 거다. 입안 가득 물어보니 신호등 사탕의 설탕과는 다르게 침을 죽죽 빨아가며 덩어리가 거칠어졌다가 사가각 부서지는데 설탕이 달아서인지 그 기억은 달콤하게만 기억되어 있다.








지금의 각설탕은 무엇일까. 온 세상이 '두쫀쿠'로 떠들썩해도 전혀 궁금하지가 않고 '버터런'이라던가 '버터떡'이라던가 다양하게 넘쳐나도 그 시절의 신호등 사탕만큼, 각설탕만큼 달콤하진 않다. 다 늦은 때에 친구가 추천해준 두바이스타일 찰떡파이는 맛있긴 했으나, 너무 달아 얼마 먹지 못했고, 이제는 모르는 사이 핫템이 되었는지 가격이 배로 올랐다. 그럴 때면 어떻게든 먹고 싶어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짜게 식어버린다.


각설탕 한 알에도 입도 마음도 꽉 차던 나는 어찌보면 재미가 없어진 듯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나를 괴롭히는 건 항상 과거의 나'라는 마인드로 살고 있는 나는 요새 일을 저지르는 재미에 빠졌다. 친구의 권유로 진로진학상담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가 진로교사가 되기가 생각보다 너무 어렵고, 무엇보다 가산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실의에 빠졌다가 오히려 요즘엔 수업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그래서 작년과 같은 학년을 가르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분이 자료를 만들어주겠다고 하셨는데도 미친듯이 수업을 구상하고 있다. 그 모든 건 대학원에서 배운 것, 작년에 한 연구회 활동이 기초가 되었다. 이왕 하는거 가산점도 받자며 관련 있는 지원단에 자원했고, 학교에서 하는 외부 공개수업에도 나섰다. 당장 연구보고서를 내야하는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미래의 나에게 많은 짐을 지우고 있다. 그걸 하나하나 클리어하며 짜릿함을 느끼고 있다.





더 이상 입으로 느끼는 달콤함은 없고, 이런 저런 일로 성대와 위장의 건강이 악화되어 조용히 커피도 멀리하는 무미건조해 보이는 삶이지만 이것들이 각설탕처럼 딱딱 각맞춰 쌓일 거라고 믿는다. 입안에 들어간 각설탕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르르 녹아 사라져 버린대도 그날의 황홀한 기억이 나에게 남듯 어떻게든 나에게 남을 거라는 것도. 다음은 어떤 사탕을 입에 넣어볼까나. 그건 또 한참 후의 나에게 어떤 기억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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