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강아지 그리고

에세이트레이닝 시즌4. 고양이

by 시월

P의 고양이는 문이 위아래로 달린, 연식이 좀 되었는지 약간은 누렇게 변한 냉장고 위에서, 하얀 자태를 뽐내며 K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K는 고양이를 싫어했다. 그런데 도도한 고양이는 느닷없이 냉장고에서 사뿐 뛰어 내려 K의 다리에 얼굴을 부볐다. K는 옷에 고양이털이 묻는 것이 찝찝하기도 하고 실은 고양이가 조금 무섭기도 했다. 고양이털 알러지가 있다는 것을, 검사 전이라 몰랐음에도 본능적으로 경계했던 것일까. 그러나, 고양이가 K의 무릎에 내려 앉았을 때 K는 고양이를 싫어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는 것처럼, 고양이털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K는 집에 있는 강아지가 생각났다. 그 강이지 '몽실'은 이 색도 저 색도 아닌 회색의 강아지였다. K의 아버지가 운명이 참 기구한 그 강아지를 계획도 없이 그의 사업장에 데려다 키우며 '몽실'이라 불렀다. 그 강아지도 참 안된 것이, 원래 주인이 떠나며 친척인지 인척인지에게 맡기고 그들은 또 그들의 아는 사람에게 넘기고 그렇게 세 번째 거처를 옮긴 곳이 보신탕집이었다고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요리감은 아니었으나 이래저래 강아지가 살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몸보신을 하러 보신탕집을 찾았던 K의 아버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강아지가 안쓰러워 집에 데리고 가려다 그의 아내의 강경한 태도에 그 강아지처럼 움츠리고는 자신의 사업장에 데려다 놓았던 것이다.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몽실'은 세콤(secom)이 무엇인지 알 리가 만무했고, 불이 꺼진 사업장에 혼자 남아 울부짖다 그만 움직임이 감지되어 세콤 직원분들이 호출되기 일쑤였다. K의 아버지는 이를 핑계로 '몽실'을 집에 퇴근길에 데리고 오기에 이르렀고, K는 강아지가 싫어 눈을 세모나게 뜨고 강아지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저 못생기고 더러운 게


그 못생기고 더러운 개를 K의 이모와 K보다 더 겁많던 K의 여동생이 씻겼다. 구정물이 충분히 우러나오면 흰색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별개로, '몽실'은 때탄 것이 아니라 회색의 강아지였다. K는 여전히 그 강아지를 이유도 의미도 없이 노려보았고, 강아지는 K의 이모와 여동생 사이에서 행복해보였다. 여느날과 같이 출근했다 돌아온 '몽실'은 그녀들은 없고 K만 있는 집으로 퇴근을 하게 되었는데 그놈의 강아지는 그래도 전날 봤다고 K에게 달려나가 그 무릎에 쏙 안기고 말았다. 그리고 K는 그 강아지에게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그 강아지처럼 P의 고양이는 K의 무릎을 파고들어와 마음을 열어버렸다. P는 말했다.


이 고양이가 다른 사람 무릎에 들어간 건 K, 네가 처음이야.



아무래도 P의 고양이는 P를 닮았던 건 아니었을까. 사실 K와 P는 그들 사이에 있는 Y의 소개로 만난지 두번만에 급속도로 친해져 집에까지 놀러가게 된 그런 사이였으니까. P는 K가 결혼 소식을 알렸을 때 지방에서 올라와 결혼식에도 와주고, 종종 생일 선물도 보내주는 그런 아이였으니까. 모종의 이유로 K는 원래 친구였던 Y와만 연락하고 지내지만, 그때 그렇게 마음을 열어준 P도, 그녀의 고양이도, 고양이의 이름은 잊었지만 P의 이름과 고양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아직 잊지 않고 있다. 단숨에 식구가 되어 1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하다 무지개 다리를 건너버린 강아지 '몽실'도 그랬듯이 느닷없이 K의 속에 누구든, 무엇이든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K는 안다. 그리고 누구든, 무엇이든 함부로 들어왔다 나가는 시기는 제각각이며, 나갈 때는 어떤 형태이든지 생채기를 내고 나가지만 함께 했던 그 시간만큼은 털달린 그들이 K의 무릎을 파고들었던 그때만큼이다 보드랍고 따뜻하다는 것도.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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