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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Apr 11. 2023

그때 정말 재미있었어

그렇게 말해주어 고마워


엄마, 그때 정말 재미있었어. 유치원 끝나고 피아노 학원 가기 전에 물놀이 갔었잖아. 나 그때 유치원에서 계속 ‘물놀이 물놀이’ 그랬어. 정말 재미있었어.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 나의 기쁨이 내게 말했다. 이를 닦으려다 말고 갑자기.




지난여름, 지금은 태어난 지 두 달된 둘째가 뱃속에 생긴 지 두 달이 좀 넘었을 때였다. 자신의 존재감을 입덧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날은 덥고 몸무게가 6킬로가량 줄어들 정도로 힘들었다. 그러나 5년 전 두 번째 임신을 했을 때 학기말 업무과중과 학부모 민원전화로 입덧이 한창이던 8주 차에 아이를 잃어봤기에 감사하게 느껴지던 입덧이었다.  입덧을 하며 생각했다. 이 아이는 건강하게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에 큰 아이와 단 둘이 보내는 마지막 여름이다. 재밌게 놀아주어야겠다고.



이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손은 주변 물놀이장을 싹 훑었다. 코로나로 운영 중지였던 물놀이장이 다행히 운영을 재개한다는 글을 찾아보고는 운영 요일, 시간 등을 파악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4시-4시 반 하원, 월수금 5시에 피아노학원 한 시간. 안 되겠다. 아이를 빨리 빼와야겠다(?). 일하는 엄마와 있느라 늘 늦은 시간까지 방과후를 했던 아이를 엄마 방학을 핑계로 빨리 하원시켜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바로 실행.


“선생님 안녕하세요? 기쁨이 엄마입니다. 기쁨이 오늘 2시에 하원하겠습니다.”


임산부의 체력과 이후 쉬는 시간 확보를 위해 수요일 2시 아이를 데려다 동네 물놀이장에 데려다 놨다. 매점에서 먹고 싶어 하는 간식을 두 가지 고르게 하고 공원 내 화장실에서 래시가드로 갈아입히고 입으로 얼른 풍선을 불었다(너무 덥고 토할 것 같았다!). 아이는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물놀이장 어디야? 언제 도착해?” 나는 대답했다. “엄마도 처음 가봐서 잘 모르고 엄마가 길을 잘 못 찾아. 근데 일단 가보자. 그리고 저분에게 여쭤보자.” 공원에서 쓰레기를 줍고 계신 어르신께 위치를 물어 도착한 곳에 준비해 온 돗자리를 펴고 말했다.


놀아!



아이는 혼자 왔기에 신난 마음과는 달리 약간은 쭈뼛쭈뼛해하며 햇빛이 비춰 반짝거리는 물속에 발을 담갔다. 그런 아이를 흘깃거리며 관찰하며 짐을 대충 돗자리 위에 정돈해 놓고는 얼른 아이에게 갔다. 손으로 물도 튀기고 미끄럼틀을 타는 아이를 살피고 폭포수 아래에 신난 아이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알록달록한 땡땡이 무늬가 있는 노란 래시가드를 입은 아이 얼굴이 햇빛보다 찬란하게 빛났다. 무지개보다 더 다채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도망가면 아이를 쫓기도 하고 물을 뿌리면 맞기도 하고 또 같이 뿌리기도 했다. 사온 간식을 타는 듯한 햇빛 아래에 파라솔 옆 살짝 놓아둔 돗자리에서 너 한입, 나 한입 하며 정답게 나눠 먹었다. 참깨스틱과 웨하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는 이내 다른 아이들 속으로 들어갔다. 멀리서 지켜보니 다들 삼삼오오 동행이 있는데 우리 아이만 혼자였다. 걱정과 미안함, 그리고 그래도 해 봐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엄마 보란 듯이 아이는 또래를 찾아 ”같이 놀래? “하고 물었다. 친구와 온 아이들 속에 섞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고 아이도 조금 속상해했지만 물놀이가 그걸 다 이겨냈다. 안개처럼 물을 분사해 주는 터널 밑을 지나며 우리는 아주 큰 소리로 웃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만 바짝 놀리고서는 아이에게 선글라스를 씌우고 가운을 입혀 차에 싣고 집에 와 샤워를 시킨 뒤 피아노학원에 보냈다. 그날 차로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은 여름 내내 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물놀이를 했다. 어제는 이 공원, 오늘은 저 분수대, 다음은 근교에 수영장이 있는 카페. 그리고 엄마친구가 사는 동네의 계곡, 그저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문자를 자주 보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기쁨이 엄마입니다. 오늘과 내일 양일간 유치원 쉬고 다음 주 월요일에 등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났다. 외동에서 첫째가 되어버린 기쁨이는 그땐 뱃속에 있었던, 지금은 세상에 나온 럭키를 정말 예뻐한다. 안아주고 귀여워해주고. 그러다 가끔 심술을 부린다. “럭키가 정말 미워. 못 생겼어. 싫어.” 지난주에는 둘째 럭키에게 가서 계속 “아이 못생겼다. 정말 싫어요~”라고 하다가 결국 한 마디 들었다.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느낌을 갖는지 엄마에게 얘기를 해주면 다 들어주지만 그걸 아기에게 계속 가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기쁨이에게 그러지 말아야지 해놓고 내심 실망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아이가 오늘, 반년 전의 여름을 기억해 낸 것이다.


아, 기쁨아 너는 그때가 정말 좋았구나. 엄마는 네가 그 기억을 해주고 있고 즐거웠다고 해줘서 정말 고마워.


하고 답했다. 진짜다. 사실 그때 조금 힘들었지만 정말 많이 행복했다. 그 기억을 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도 남아 힘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진짜 고마웠다.



엄마는 생각한다. 더 놀아줘야겠다고. 일하는, 그리고 계획적이지 못한 엄마 밑에 자라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던 우리 아이에게 기억에 남을만한 즐거운 추억을 더 만들어줘야겠다고. 올해 목표인 체험학습 다 쓰기를 좀 실행에 옮겨봐야겠다고.


“선생님, 안녕하세요? 기쁨이 엄마입니다. 아이 편에 체험학습신청서 넣어 보냅니다.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참, 기쁨이에게 잊지 말고 말해야겠다.


보고서는 네가 쓰렴.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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