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었다. 그런데
엥? 왜 안 왔지?
또다. 멍청한 나새끼가 결제를 하다 말았나 보다. 새벽에 짜잔-하고 와 있어야 할 식재료가 현관에 없다. 혹시나 하여 어플을 켜 확인하지만 결제가 되었다면 비어있어야 할 장바구니에 버젓이 숫자가 적혀있다.
아, 너희 아직 출발하지 못했구나.
연일 비소식이 계속되면서 멈추면 달리려고 틈을 보고 비오면 전을 부쳐 먹으려고 틈을 봤다. 부추전이나 감자전 말고 다른 건 없을까? 어디 보자, 지난번에 해물모둠을 사놓은 게 있으니... 쪽파를 사서 파전을 해 먹어야지. 남편과 무알콜 맥주를 먹을 때 안주로도 좋고, 해물을 좋아하는 큰딸도 좋아할 생각에 들떴다. 유튜브를 켜서 ‘해물파전’을 검색하니 영 이상한 게임화면 같은 것만 나왔다. 이게 뭐람. ‘해물파전 레시피’로 고쳐 검색했다. 재료와 반죽물을 따로 준비하여 반죽물부터 부어준 뒤 손질한 쪽파를 가지런히 올리고 해물을 듬성듬성 뿌리면 되는구나. 여분의 반죽과 계란을 톡 터뜨리면 저런 예쁜 파전이 나오는구나. 쓱 익히고는 재료를 손질했다.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을 꺼내 예열한 뒤, 타이머를 맞추고 기름을 찾았다. 그런데... 없다. 식용유가 없다. 아차차. 식용유를 샀어야 했는데 깜빡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식용유 뒤의 올리브유를 꺼낸다. 이것도 기름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개뿔. 예열이 잘 되었는지 반죽이 팬에 붙지는 않는데 지들끼리도 붙지를 않는다. 망.했.다. 찾아보니 올리브유는 발연점이 낮다고 했다. 영 좋지 않은 모양새로 오랜 시간에 걸쳐 익기는 익은 파전을 내놓았다. 파전을 내놓기 전 큰 잘못을 했던 첫째는 혼났기 때문인지 정말 맛있었는지 맛있다며 먹었지만 정작 입맛이 없어져 몇 입 먹다 말았다.
그렇게 며칠간 비소식이 없다가 비가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냉동실에 해물도 남아있겠다, 이젠 식용유도 있겠다, 다시 해물파전을 부쳐먹고 싶어졌다. 이번엔 전, 튀김요리에 적합한 식용유에 제대로 부쳐먹을 테다-하며, 쪽파를 샀다(파전해먹을 건데 매번 쪽파가 있어 해먹으려는게 아니라 다른 재료 때문에 파전을 떠올리고 주재료인 쪽파를 주문하는 것도 웃기다). 계란도 있고, 모든 준비가 되었다. 역시나 재료손질을 하고 반죽물을 만들었다. 그런데, 뇌보다 빠른 손이 반죽물을 그만 재료를 모아둔 데에 부어버렸다. 쪽파와 양파와 당근을 넣어둔 통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른손과 왼손이 작당모의를 하여 그만 해물도 반죽물도 넣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니 반죽이 꽤나 모자랐다. 그리고 예쁘기도 힘들겠지만 뭐 그건 뱃속에 들어가면 다 섞이니까(?) 넘어가기로 하고 반죽물을 더 만들려는데...
아뿔싸. 부침가루가 없었다. 함께 섞으면 전을 더욱 바삭하게 해 준다는 튀김가루도 없었다. 모양은 포기했을지언정 밀가루와 빵가루 등으로 시험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비 오는 날 저녁에 먹으려 했는데 또 포기를 하고 새벽배송에 도움을 청했다. 부침가루와 튀김가루를 장바구니에 챙겨 넣고 애매하게 떨어졌거나 새로운 반찬을 만들 때 필요한 식재료를 몇 개 골라 넣어 무료배송 가능 금액을 딱 맞췄다. 다음 날 아침 부침가루와 튀김가루가 사이좋게 집 앞에 도착하거든 한 컵씩 넣고 물과 함께 잘 섞어 고소한 전을 먹을 상상을 하며 잠들었다.
그런데 없었던 것이다. 그 두 가루가. 모든 재료가 준비되어 있는데 파전의 ‘전’을 담당하는 그 가루가 못 온 것이다. 이유는 결제단계에서 다시 장보기 어플로 들어가서 확인하는 단계를 하지 않아 세션이 만료되어 취소되었기 때문이었다. 아- 멍청한 나 같으니라고. 종일 비 오는 날 슈퍼에 사러 가지도 못하고 어플로 주문을 했다. 이른 시간에 주문하니 밤 9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도착할 수도 있다고 했다. 빨리 오면 좋지 뭐, 생각하며 하루를 더 기다렸다. 더 맛있게 해 먹어야지-하고.
다음날 아침, 도착한 부침가루와 튀김가루를 적당히 섞어 반죽을 만들어 해물파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모든 재료가 완벽했던 그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
*사진: 직접 찍은 ‘비 안 오는 날 먹은 해물파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