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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Nov 16. 2023

반대에 부딪혔다

맥시멀리스트 옆에 더 맥시멀리스트

버리고 팔고 나누기에 맛들려 불도저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밀어버렸다. 물론 완벽히 치우지 못하고 서재방에 가져다 꺼내놓고 시간을 두고 처분했지만. 어쨌든 그러다 눈에 띈 곳은 안방의 장롱 틈새. 지금 사는 집은 세 번째 집인데, 첫 번째 집의 안방에 맞춰 맞춘 붙박이장을 옮겨왔더니 30-40cm의 틈이 생겼다. 붙박이장을 다시 맞추기엔 비용도 부담이었고, 그렇게 하기엔 너무나 새것인 붙박이장을 처분하기에 아깝기도 해서 그대로 옮겨다 썼다. 그랬더니 그 틈엔 부지런히 물건이 쌓였다.



어디 두고 고정시키기 애매한 교자상, 의자 하나 사이즈의 전기방석부터 퀸 사이즈의 전기장판까지 무려 5개의 전기장판들, 첫째 때부터 여름마다 침대 위에 둘러 써온 동그랗게 말린 모기장, 그리고 운동 어플에서 무료랍시며 첫 결제 이후 보내준 운동기구 2개까지.







안 되겠다 싶어 주르륵 꺼냈다. 붙박이장 속 이불칸을 정리하여 일부 공간을 만들어 전기장판들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로 내어주어야겠다 싶어 이불을 주르륵 꺼낸다. 다행히 평소에 압축팩에 넣어 계절에 따라 종류에 따라 베개니까지 세트로 나누어 묶어두었더니 정리가 쉽다. 아기가 다리에 매달리지만 곧 안마기에 관심을 보이고는 한참을 서서 논다. 이때다 싶어 이불도 싹 갈아준다. 분명 붙박이장 옆구리만 긁어내려 했는데 일이 커졌다 싶다. 그래도 아기 컨디션이 좋으니 미루지 않고 일단 한다. 이불을 넣은 압축팩을 세로로 정리하면 더 편할 텐데 생각하지만 고정이 어려워 별 수 없이 관두고 전기장판들을 이사시켜 온다. 넣기 전 먼지를 털고 닦는 건 잊지 않는다. 코가 간질간질. 재채기가 나올랑 말랑 한다. 아기는 옆에서 엣취 엣취. 미안하다 아가야. 사과하며 이불칸 문을 닫는다.




다음은 모기장, 너는 잘 정리된, 팬트리는 아니지만 팬트리를 꿈꾸는 베란다 창고로 가렴. 이제 곧 날이 추워지니 내년에나 만나자꾸나 인사한다. 거실 베란다가 확장되어 있어 베란다 창고문은 손잡이를 돌려 여는 여닫이문이다. 그 뒤쪽에 살짝 놓으니 문을 열어도 보이지 않고 고정도 쉽다. 진작 여기로 모실 걸 그랬습니다. 너스레를 떨며 웃어본다.




남은 것은 교자상과 운동기구. 운동기구 중 하나는 다행히 아무도 관심이 없는데 바로폼이라고 불렸던 그것을 꺼내니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이 얼른 드러눕는다.



이거 좋다.



어깨가 쭉 펴지는 것이 좋다나. 그래, 거기(어플)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운동을 시켜주긴 했는데, 당신 그거 있는지도 몰랐잖아. 뭘 또 좋대, 버릴 건데. 속으로 중얼중얼하고 싶은 말들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머릿속에서 꼭꼭 씹어 삼켰다. 그런데 아뿔싸. 초 1 딸이 보더니, 움푹한 곳에 엉덩이를 넣고 불룩한 곳에 자기 물건을 쫙 진열한다.



엄마, 이건 내 본부야.




아무도 없을 때 얼른 내다 버렸어야 했는데 망했다. 저 둘이 보더니 서로 자기가 쓰겠단다. 그래서 어디다 둘 건데 하고 따지고 싶지만 참고 그냥 버리자 담백하게 말한다. 하지만 둘 다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내가 볼 땐 분명 저러다 다시 붙박이장 옆구리로 들어가 박혀버릴 것만 같은데. 그러면서 주저주저 한번 누워본다. 시원하긴 하다. 젠장.




안 되겠다. 교자상으로 시선을 옮긴다. 이거 버리거나 팔거나 해야 할 것 같아. 살짝 운을 띄운다.


그래? 교자상은 두면 분명 쓸 데가 있는데. 꼭 필요할 때가 있어.



남편이 또 반기를 든다. 지금 사는 집에 3년 전 이사 온 뒤, 6인용 식탁을 썼기에 교자상은 한 번도 편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게다가 남편은 어떻게 하면 8인용 식탁을 조금 더 싸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당근과 중고나라를 탐색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교자상이 필요하다고? 절대 아닐 것 같은데. 버리겠다고 하자 몇 개월 뒤 같은 동네로 이사 올 시어머니 집에 두자고 한다. 으. 버리고 싶다.








조용히 작은 운동기구 한 개만 가져다 버리고 끝났다. 오늘의 비우기는 맥시멀리스트 옆 더 맥시멀리스트인 사람 둘 때문에 실패다. 허락받지 않고 버릴 수 있는 용기를 키우겠다고 다짐하며, 더 모질게 버려보겠다고 다짐하며, 일단 넣어둔다. 교자상 너 창고에서 딱 기다려. 곧 이별이다. 각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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