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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Dec 09. 2022

재수 없다, 브런치(1)

재수 인생의 재수 없는 이야기

2022년 11월 28일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손목에서 알람이 연달아 울렸다. 카톡이 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내가?      


진짜인가 의심하고 좋다고 느낄 겨를 없이 든 생각,



재수 없네?   




이렇게 한 번에 되다니(운도 좋지!). 그도 그럴 것이, 스스로를 재수 인생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것은 사실이면서 하나의 암시였다. 처음엔 안 되어도 두 번째엔 될 거라는 희망의 표현이었다.      




시작은 대입이었다. 교육열이라고는 1도 없는 집에서 자랐다. 공부하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고, 오히려 공부하면 욕 아닌 욕을 먹었다. “공부 그깟 놈의 거, 해서 뭐하려고 하냐, 그렇게 해봤자 남들한테 대체되는 부품이 될 뿐이다.” 기술자인 아빠는 말씀하셨다. 학교에서 모범생으로서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이 좋았던 아이는 부모님 말을 안 듣고(?) 공부를 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할 만했다. 공부가 싫었던 적은 없었다. 아무도 공부하라고 하지 않아서 그랬나.      


고입을 앞두고 엄마는 마음이 분주했나 보다. 느닷없이 학원 근처에 가본 적 없는 아이를 종합반에 쑤셔 넣었다. 다른 애들은 학원 가서 쉬운 요령을 배워 오는 듯했는데, 드디어 학원이라는 곳에 가보는구나 싶어 기대되었다. 웬걸, 공장이었다. 국영수사과를 매일 한 시간씩 다섯 시간이나 주르르륵 가르쳐대는 곳이었다.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했던 아이는 선행학습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며 뭘 배웠는지, 소화가 되어 내 것이 되었는지 헷갈려만 하다가 3개월 만에 나가떨어졌다.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학원의 국어 선생님(뭘 배웠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선생님의 여동생이 머리를 박박 밀고 들어왔다는 얘기를 했던 것만은 명확히 기억난다)께서 말씀하셨다.


너 여기서 그만두면 커서 뭐 되려고 그러니?




뭐가 되려고 그랬을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꽤 잘한다고 생각했던 아이는 중학교 3년 내내 미술부 활동을 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것을 눈치 채신 미술 선생님께서는 붓과 팔레트를 선물해주셨다. 그 안에 수채화 물감과 알록달록한 꿈도 불어넣어 주셨다. 가난한 아이의 꿈을 위해 방과 후 활동을 개설해서 저렴하게 미술 수업을 듣게 해 주시고 수업료가 저렴하고 실력이 좋은 미술학원을 알아봐 주셨다. 학원에서는 조금 일찍 왔으면 예고에도 갈 수 있었을 거라고 하셨지만 이미 입시가 끝난 뒤였다. 아이는 별 생각이 없었다. 예고는 서울에 미술대회에 참가하러 갈 때나 가본 곳이었기에.      


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 별안간 입시미술을 시작했다. 공부를 열심히 했고 꽤 잘했고, 학교에서는 전교 임원도 맡아하던 아이였기에 선생님들과 부모님 모두 말렸다. 그러나 말 안 듣고 공부했을 때처럼 말 안 듣고 미술을 했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의 말에 따르면 ‘미술을 해야 행복해’라고 했다고.


고등학교 3학년, 성적은 전교 10등. 인생에서 가장 높이까지 올라갔던 기억이다. 학년부장이었던 수학선생님께서 따로 부르셨다. 수학만 좀 하자고. 조금 해서 될 점수는 아니었다. 60점대였던가. 2학년 때 이후 포기한 수학 점수가 좋을 리 만무했다(그런데 1년 넘게 안 한 것 치고 60점 대면 잘한 것 같기도 하다). 수학선생님께 답했다.


 “선생님, 저는 공부를 못해서 미술을 하는 게 아니에요. 미술을 하려고 공부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미대 입시에 수학은 필요 없어요.”


미술 학원에서도 기대가 대단했다. 이만큼 그리는데 성적이 이 정도라니. 홍대 회화과를 따 놓은 당상이라고 했다. ‘월간 미대 입시’에 작품이 실렸고, 학원에도 전시되었다. 뭐라도 된 것 같아 4시간 그림-점심-4시간 그림-저녁 4시간 그림의 수순을 받는 특강도 재미있기만 했다.      




거기까지였다. 호기롭게 지원한 가, 나, 다 군 모두 떨어졌다. 홍대 수시 모집에 떨어지고부터 그야말로 멘털이 박살 났다. 성적이 낮았지만 그림 실력이 훨씬 우수했던 친구는 같은 학교 조치원 캠퍼스에 지원, 합격했다는 사실에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면서 불안감에 잠식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학원에선 괜찮다고 했다. 모의고사보다 낮게 나온 수능 점수였지만 쓰고 싶은 학교를 다 지원할 수 있다고 정시를 잘 보자고 했다. 괜찮지 않았다. 잘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튀어나와 그림을 망쳤다. 가 군에 이어 나 군 실기를 보고 나니 6킬로가 빠져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다 군 실기를 봤다. 우습게도 다 군만이 가망 없이 큰 수의 대기자 번호를 주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재수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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