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지은 사람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난 서울에 산 적이 없고 서울에 가본 적이 별로 없다. 게다가 엄청난 길치다. 서울을 모른다는 말이다. 얼마나 모르냐면 임용고시 준비 중에 만난, 울산 사는 언니가 시험이 끝나면 서울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했을 정도로 서울을 모른다. 아, 노량진은 조금 익숙하다. 지금은 변했겠지만. 아무튼 어릴 적엔 그나마 기회가 되면 나가보려 했으나 지금은 귀찮다. 서울은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멀고 차로 가기엔 차댈 데가 없거나 비싸다. 그리고 가면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런 내가 이제는 보신각과 을지로가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의도에 갈 땐 어떤 도로를 타고 가야 쉬이 가는지 알게 되었다. 지하철역에서 역으로 걸어갈 때 얼마나 걸리는지, 주차는 어디에 어떻게 해야 저렴하게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서울에, 지난 7월 22일부터 거의 매주 가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갈 때는 책 한 권을 배낭에 넣어 지하철을 타고서는 여행처럼 다녀온다. 친구와 갈 때는 친구차를 얻어 타고 간다. 아이들과 갈 때는 내 차를 타고 간다. 뙤약볕에 살이 타는 듯할 때면 팔토시를 챙기고 비가 오면 우비를 챙겨서 그렇게 간다. 혼자 갈 때는 얼음물 한병, 친구랑 가거나 아이들과 갈 때는 얼음물 두병을 챙긴다. 깔개는 꼭 두 개를 챙긴다. 하나는 내 것, 하나는 친구나 아이의 것이다. 그렇게 간 곳에는 미안하고 슬픈 사람들이 화를 꾹꾹 누르고 모여있다.
미안하고 슬픈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싱긋,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싱그럽게 웃어 보인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할 때면 내 가방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방을 채가듯 받아 깔개를 꺼내 깔아준다. 둘째가 울 땐 기꺼이 튤립 장난감을 내어 흔들어준다. 함께 온 첫째를 기특해하며, 마치 자기 반의 아이인 듯 반겨주며 한라봉을 쥐어준다.
이런 사람들이 미안해한다. 슬퍼한다. 먼저 겪었는데 나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넘어가서 미안하다고. 먼저 겪었는데 고치지 않고 피해서 당신이 그렇게 가게 만든 것 같다고 미안해한다. 운다. 슬픔으로 넘실거린다. 슬픔에 누군가 지나가며 외친다. '선생님, 화이팅!' 지나가던 행인이다. 다들 와- 감사합니다 하고 환호를 보낸다.
그런 사람들이다. 정교사인지 기간제인지, 고경력교사인지 저경력교사인지 그런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의 부재의 문제다. 관리자의 책임 부재의 문제다. 교사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고 희망이 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사랑으로 가르치면 그 마음이 전달될 거라 믿는 사람들이다. 월급이 적어도 수당이 오르지 않아도 바보처럼 이상을 좇으며 사명감으로 기꺼이 많은 것들을 해내는 사람들이다. 믿어주면 믿어주는 만큼, 아니 그 이상을 하려는, 최선을 다하는 게 습관인 사람들이다. 책임감이 높은 사람들이다. 아이를 중심으로 학부모와 같은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더 이상 동료를 앞세우고 아파하지 않기를, 지은 죄가 없는데도 미안해하고 슬퍼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