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브런치
어떻게 살려고
재수를 하며 미술을 또다시 할지 말지를 전라남도에 있는 외할머니댁 토방에서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고민하는 아이에게 외삼촌은 물으셨다. 살면서 어른들의 걱정을 산 적 없었던 아이는 무슨 상관이냐 언제부터 관심 있었냐 되물을 기운이 없이 주눅 들어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만 할 뿐.
감사합니다
재수 학원에 다녀오는 첫날, 늘 “청소년입니다”라는 소리로 찍혔던 버스 카드가 아이에게 감사의 말로 세상은 아이에게 더 이상 아이가 아님을 일깨워줬다. 그리고 우연히 뒷좌석에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한껏 꾸민 모습으로 대학생으로서의 첫날에 대해 상기된 얼굴로 말하며 어느 학교에 갔냐고 물을 때, "나 재수해"라고 답함으로써 스스로 깨달았다.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할 때 직업을 선택할 수 없는 그런 처지인 거구나.
미대 입시를 하는 통에 야간 자율학습을 해본 적이 없었던 재수생은 재수 학원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인간관계였지만 같은 처지에 있었기에 의지가 되었던 친구들, 언니 오빠들과 나름대로 즐거운 생활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은 미술을 그만둔 재수생은 계속 아팠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공부를 해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없어서였을까. 혹은 ‘공부를 못 해서 미술을 하는 게 아니라 미술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하므로 수학을 하지 않겠다’는 말에 대한 벌을 받듯 버려둔 수학 공부를 해야 해서였을까. 함께 재수생활을 했던 삼수생 오빠는 자기보다도 더 힘들어 보였노라고 회상했다.
언어, 사회탐구, 외국어 세 과목만 신청했던 첫 번째 수능과 다르게 두 번째 수능은 수 제2외리와 제2국어까지 신청하여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에서 치렀다. 어디에 원서를 써야 할지 알지 못했던 구)미대 입시생은 재수 학원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중 적당히 지원한 대학교에서 합격 문자를 받았다. 아무 감흥 없이 문자를 확인하고 마시던 술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마셨다.
합격의 기쁨을 몰랐던 구)재수생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미대 입시와 재수 생활에 대한 죄책감 혹은 부채감으로 인해 학비를 내며 다니진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사범대가 아닌 일반대였기 때문에 교직이수를 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 했던 구)재수생은 목마른 성취를 4년간 이루고 임용고시에 도전했지만 낙방했다. 몇 뽑지 않는 이때, 거짓말처럼 한 번에 붙으면 어떡하지 라는 헛된 상상은 뒤로 한 채 임용고시 재수생이 되었다.
임용고시 재수생의 두 번째 재수생활은 첫 번째보다 힘들었다. 전공과목은 존폐 위기에 놓여 있었고, 따라서 몇 명을 뽑을지, 뽑긴 뽑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날들. 그때 그 자리에 앉아 버티게 한 것은 친구와의 대화였다. 재수 학원에서 만났던 그 친구는 재수 전문가의 친구답게 재수하여 입학한 대학교에 만족하지 못하여 편입 시험을 준비했으나 떨어져 재수하는 상황이었다. 종목은 다르지만 두 번째 재수 생활을 했던 우리는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며 말했다. ‘재수 인생이므로 두 번째엔 된다. 이번엔 된다.’ 그렇게 우리는 원하는 것을 대입보다 기쁘게 얻으며, 두 번째 재수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브런치 작가에 도전할 때에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안 되면 어쩌지. 어쩌면 수능이나 임용고시와는 또 다른 것이지만 너무 오랜만에 무언가에 도전해보는 거라 겁이 났다. 지르고 생각했다. 아니야, 재수 인생이니까 두 번째엔 될 거야.
그런데 한 번에 되다니. 거짓말 안 하고 대입보다 기뻤다. 버티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간절히 찾던 때여서 그랬을까. 어떻게 써야 할지, 무엇을 써야 할지 매번 고민이고 부족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재수 없다, 브런치!
고맙다, 브런치
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