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글을 씁니다
다시 두근거렸다. 무언가에 기쁨을 느껴 두근거렸으면 좋았으련만. 그게 아니라 숨이 달렸다. 임신을 해서 그런가. 그렇다기엔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왔다.
스트레스가 심했다. 특히 담임업무가 너무 힘들었다. 교사의 의사보다는 학교에 의해 담임 여부가 결정이 된다. 담임이 되고 나면 뽑기 운에 의해 학급이 결정되고 그 학급에 어떤 아이(그리고 학부모)가 있는지에 따라 학급 운영 강도 및 삶의 질이 달라진다. 학급에 있는 공격적인 아이와 무관심-어쩌면 무책임-한 학부모로 인해 매일이 긴장되고 겁이 났다. 그즈음 학교 곳곳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터졌다. 내 코가 석자라 잘 몰랐던 다른 학급의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 증상이 악화되었다. 도움을 요청하기도 받기에도 어려울 만큼 혼자 오롯이 다 견뎌내야 하는 민원, 책임 속에서 우리는 각자 알아서 홀로 버티고 있구나. 무력감이 들며 숨이 콱 막혀왔다.
신경정신과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을 쉬어야 할 것 같다고. 3년간 공황장애 약을 먹다 줄이고 있던 약을 임신을 이유로 중단했는데. 이젠 약을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무탈하게 6개월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버티기 힘들었다.
이미 뱃속에서 한창 자란 아이였지만 지난날 잃은 그 아이처럼 유산이 또 될까 봐 두려웠다. 우리 학급의 일은 우리 학급의 일, 학교 내 다른 일은 다른 일 아무리 구분 지으려 해도 한번 시작된 비합리적 사고는 그 고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살아야 한다고 되뇌었다. 각자 아무런 연결고리 없이 우연히 발생한 일일 뿐이라고, 잘못 연관 지어 생각하는 거라고, 이렇게까지 불안해할 필요 없다고.
그런데 이전엔 남아서 어떻게든 버텨내어 얻어낼 게 있었다면, 이번엔 아니었다. 오히려 잃을 것은 없었던 지난날과 다르게 이번엔 잃어서는 안 될,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었다. 나만이 지킬 수 있는,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이 있었다.
이건 아니다
결국 진단서를 제출하고 일을 쉬기로 하였다. 이것으로 당장의 자극은 줄였지만 이것으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것,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내야겠다고 생각(만)했다. 고민과는 달리 무료하게-혹은 무력하게- SNS 게시물을 넘기던 차에 한 작가님의 ’브런치 프로젝트‘라는 게시물을 보고 글을 써보기로, 우연한 기회에 마음을 먹었다. 시작은 쉽지만 끝맺음이 어려운 스스로인 것을 알면서도 뭐든 일단 시작해보자, 혼자는 밍기적거릴테니 함께 갈 사람을 만들어 해보자고 생각했다. 브런치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으면서 용감하게 브런치 작가가 되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쓰레기 같은 글을 쓰더라도 아팠던 때를 기억하며 그때 참 아팠지, 스스로 얘기해주고 만져주기 위해서.
그렇게 브런치 작가에 도전, 생각보다 빨리 이뤄냈다. 이런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잘할 수 있다고 말해주기 위해 재수생활까지 들먹이며 작가가 되었노라고 몇 번이고 말해대고 있다. 지난 10년간 해놓은 것이 없어서, 내세울 게 딱히 없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잘 살고 싶고 잘 살아야 한다. 엄마니까. 교사니까. 그래서 쓴다. 아팠던 얘기를, 잊고 싶은 기억을. 그러다 보면 고름이 가득 찬 이 상처를 갈라 고름을 짜내듯 글을 써내고 어루만지다 보면 분명 새살이 돋겠지.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자극에 덜 흔들리는, 천천히 호흡할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겠지.
Photo by Aniket Bhattachary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