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의 세대] : 쑥이 된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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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외갓집에 갔다가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외갓집은 봉천동 언덕 제일 끝에 지은 2층 양옥집이었다.
은은한 달빛을 맞으며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하늘에 십자가가 떠다녔다.
오 주여-
내가 무슨 심령 체험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한 개도 아니고 두세 개가 하늘에 떠 다닌다.
눈을 비비고 자세히 바라보니
어둠 속 교회 첨탑에 밝게 빛나는 교회 십자가였다.
작은 봉천동 마을에 교회가 하나 둘 셋 넷...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 교회에 불이 꺼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일요일에 교회에 모이질 않는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헌금을 걷어 가고
돈 있는 사람들의 사교 장소와 그들만의 혼담이 오가던 소셜 클럽은 이제 문을 굳게 닫아 버렸다.
아쉬울 것 같지만 사람들은 빠르게 일상 속에 묻혀 지나가고 있다.
사찰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교회보다 더 부자였던 곳이 사찰이었다.
법정 스님이 무덤 속에서 벌쩍 일어나 "예끼, 이 썩은 놈들아" 하고 소리칠 것만 같았다.
아 이제 그 예수쟁이들 안 보이니 살만하다고 하는 사람부터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이데올로기를 들먹이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종교의 몰락을 바라보며 한 마디씩 거들고 있다.
정작 울상 짓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정부는 반정부 성향의 정치인들의 계좌를 추적해
이번 사건의 연루자로 기소했고
언론은 연일 그들의 부도덕성에 날 선 측면 지원 사격을 날리고 있다.
정부는 몰수된 종교 자금으로 텅 빈 나라 곳간의 급한 불을 진화하려는 모양이다.
교회와 사찰 주위의 상권은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다.
주말이면 문전성시를 이루던 대형 교회와 사찰 주위 상인들은 이제 살 길을 고민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교회 매물과 함께 교회 주변 상가의 폐업과 임대 광고도 유독 눈에 띈다.
더스틴 부부는 목요일 저녁 로버트가 사는 건물 지하 창고로 들어간다.
창고는 꽤 넓고 깨끗하다.
로버트가 모임 장소를 위해 깨끗이 치우고 단장을 해 두었다.
조명을 모두 켜니 환하고 한 편에는 탁구대도 놓여 있다.
하지만 전등은 하나만 켜 놓았다.
간이 의자를 펼쳐 놓고 앞에 조그만 탁자를 가져다 놓았다.
로버트 부부, 모건 부부, 더스틴 부부 그리고 주드와 줄리 남매 이렇게 8명이 전부다.
그들은 나직하게 성경을 낭독하고 함께 기도하고 짧은 예배를 마쳤다.
그리고 로버트 부인이 다과를 준비했다.
교회가 없어져도 우리는 여기 함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때?"
"아직, 아는 게 없어요."
"모임 장소도 다 비밀이에요."
"진(Jean)하고는 통화를 했나?"
"아직이요."
"교회는 정말 다 넘어가는 건가요?"
"아마 그럴 거예요."
"진은 괜찮겠지?"
"진이 정치인들하고 만난 건 아니니까 상관없을 거예요."
"다음 주까지 모두 무사하길 바라요."
주드가 말한다.
"다음 주에는 시험이 있어요.
중요한 시험이라서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줄리도 학교과제로 다음 주는 힘들어요."
"그래 둘 다 건강해야 해."
그들은 서로서로의 안부를 빌어 주고 그렇게 작은 모임을 마쳤다.
주드와 줄리는 그다음 모임에도, 그다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