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 (沈默)

[증언의 세대] 중에서

by 아반


31번 구역 출입구


더스틴이 31번 구역에서 어느 정도 정착할 무렵,

그는 바깥 지역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폐쇄 지역의 입구까지 내려간 적이 있었다.


로버트 부부는 어떻게 됐을까?

그 검은 차에게 따라 잡혀 어딘가로 끌려간 것은 아닐까?


모건은 정말 저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걸까?

모건이 그날 그 수용소에 간 것이 확실한가?

아니라면 모건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폐쇄 구역 바깥의 상황은 나아졌을까?

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이 해제되고 모든 것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을까?

나만 여기서 6.25 때 동막골처럼 고립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기상대 숙소 안에 있는 라디오와 TV에는 오래된 노래와 드라마만 이따금씩 수신되었고

그 마저도 전기를 아끼기 위해 잠깐씩 틀어보다 중단했다.


폐쇄 구역으로 진입하는 도로 입구에는 녹슨 철책과 설치된 울타리 문이 삐걱되며 흔들리고 있었다.

입구 바깥쪽에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는데 지금은 일부가 넘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누런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더스틴은 본능적으로 폐쇄 구역 안쪽 길 옆 수풀에 몸을 숨겼다.


흙먼지가 가까워질수록 형체가 또렷해진다.

군용 지프차와 그 뒤를 수송 트럭이 따라오고 있다.

차량이 폐쇄 구역 입구에서 멈추더니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눈을 가린 사람들을 군인들이 트럭에서 내리고 있다.

모두가 앙상하게 말라 보였고 저항할 힘조차 없어 보였다.


군용 지프에서 선글라스를 낀 두툼한 사내가 내려서 손짓을 하면서 뭐라고 고함을 치는 것 같다.

그가 모든 상황을 지휘하고 있는 듯 보인다.


수송 트럭에서 내린 눈을 가린 사람들은 대략 10명 남짓으로 보인다.

군인들의 숫자는 그보다 많다.


군인들은 눈을 가린 앙상한 사람들을 일렬로 세우더니 그 위에서 조금 떨어져 일렬로 정렬한다.

그러더니 눈을 가린 사람들의 등 뒤에 선 군인들이 총을 들어 앞에 서있는 사람들을 겨냥한다.


선글라스를 낀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손짓을 하자.

일제히 사격을 실시한다.


"타 다당탕 탕, 탕"

군인들은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의 뒤에서 머리를 조준 사격했다.


총에 맞은 사람들이 픽픽 쓰러졌다.


총탄의 속도는 의식을 느끼는 신경전달의 속도보다 빠르다.

머리를 관통한 총탄은 미처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사람의 의식을 잃게 한다.

도축하는 소의 고통을 줄이고 가장 인도적인 방식으로 도축하기 위해 두정부 타격법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군인들은 미리 파놓은 얕은 구덩이에 시체들을 던져 넣더니

그 위에 대충 흙과 자루를 흔들어 하얀 가루를 흩뜨려 뿌린다.

바람이 불자 하얀 가루가 연기처럼 흩날렸다.

망자의 비명처럼 떠돌던 흰 가루는 얼마간 그곳에 머물렀다.


모든 것을 다 마치고 차에 올라타기까지 불과 30여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부대의 중간 간부가 지휘관 남자에게 뭐라고 하자

지휘관 남자는 침을 "캭 퉤~ "하고 바닥에 뱉었다.

그리고 다시 손을 까딱까딱 흔드니 남아 있던 간부급으로 보이는 군인들도 차에 탑승했다


모든 군인이 다 차에 탑승하자 마지막으로

지휘관 남자는 뒤돌아 잠시 시체들을 바라보다가 선글라스를 벗고 주위를 둘러보다

더스틴 쪽을 응시하듯 바라본다.


더스틴은 깜짝 놀라 뒤로 움츠러들었다.

숨이 멎을 것만 같다.

잠시 공포에 질려 그는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하지만 지휘관 남자는 이내 뒤돌아 서버린다.

더스틴은 그 남자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안소니 대령이었다.


안소니는 31번 폐쇄 구역 전체를 바라보지만 어두운 수풀 속에 숨어 있는 더스틴을 보지는 못하였다.

그는 흡족한 듯한 표정으로 다시 선글라스를 끼고 군용 지프에 탑승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흙먼지를 일으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죽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정부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사들일까?

아니면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일까?


더스틴은 아직까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그날의 끔찍한 장면은 두고두고 더스틴의 뇌리에서 잊히질 않았다.

더스틴은 아내에게 간략하게만 그날의 사건을 알리고 절대 31번 구역 출입구 밖으로 나가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하였다.


그들에게 31번 구역 출입구는 지옥으로 향하는 입구였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흐르고 다시 더스틴의 낙원은 평온을 되찾았다.